국회는 1991년 도입된 섀도보팅 제도를 2015년부터 폐지하는 내용으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지난해 상반기 통과시켰다. 지난해 국회 정무위원회 속기록과 법안심사보고서 등을 종합하면 섀도보팅은 폐지 명분이 뚜렷했다.

섀도보팅 덕에 주주들이 꼭 주총에 참여할 필요가 없으므로 주총 활성화에 걸림돌이 됐다. 대주주가 소액주주를 무시하고 손쉽게 특정 안건에 찬성표를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 인터넷과 전자결제기술 발달로 전자투표도 가능해졌다. 그런만큼 섀도보팅을 존치할 이유가 줄었다. 금융위원회, 심지어 거래소 상장회사들을 대변하는 상장사협의회도 폐지 자체에는 공감했다.

하지만 상장사들은 주총 결의규정 등 다른 제도를 그대로 둔 채 섀도보팅만 없앨 경우 주총장에 일대 혼란이 벌어질 것으로 우려했다.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입수한 상장협 보고서에 따르면 올 봄 정기주주총회를 연 기업 917곳 중 절반이 넘는 497곳(54.2%)이 섀도 보팅을 요청했다. 이들 상장사의 내년 주총 출석률을 올해와 똑같이 놓으면 주총 결의에 심각한 지장이 초래된다는 것이다.

업계는 그 대안으로 대주주 의결권 3% 룰 폐지를 강력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감사선임에 대주주 전횡을 막기 위해 의결권을 제한한 반면, 섀도보팅으로 주총 성립을 원활하게 만들었다. 두 제도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한 셈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원래 섀도보팅과 3% 룰이 상호보완 관계로 존재했는데 둘 중 하나만 먼저 없애다 보니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개정시 마련된 대안은 서면투표와 전자투표 활성화 등이다. 업계는 서면투표 이용률이 매우 낮고 전자투표는 주주 신원확인 등 절차가 까다로워 시행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인력과 시스템에서 대형 상장사보다 열세인 중소업체는 부담이 더 크다. 기업 입장에선 전자투표로 과연 주주들이 얼마나 많이 참여할지, 이를 통한 의결권주식은 실제 주총에 불참한 비율을 상쇄하고도 남을지 불확실성도 높다. 따라서 섀도보팅 폐지 취지엔 공감했지만 적절한 대안이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상장사들의 요구가 업계 편의만 중시한다는 반론도 있다. 내년 주총 파행을 우려할 정도라면 지난해 법개정 때 충분히 의견을 밝히고 토론을 이어갔어야 했다. 바뀐 제도에 따른 주총을 한 번 시행하지도 않고 추가 법개정부터 요구하는 것은 애초 섀도보팅 폐지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올해 정기국회에서 관련법이 개정될지 불투명하다. 연내 상법 개정안 등이 발의돼 논의 테이블에 오를 수는 있지만 상법을 관장하는 법무부는 즉각적인 3% 룰 폐지에 난색을 보여왔다. 당장 내년엔 시행령 개정 등 금융위 차원의 추가대안만 적용하고, 해가 바뀌어 주총을 치른 후 필요한 대안을 다시 논의하는 단계적 접근도 가능하다. 해외사례처럼 의결권 위임권유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Shareholder Service Company) 가 탄생할 수도 있다.

일각에선 전자투표를 실시하는 기업에 섀도보팅을 허용하는 방안도 제기됐지만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미 폐지된 섀도보팅을 부분적으로 부활, 지난해 법개정을 번복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제도변화에 따른 심각한 문제가 증명되지 않는 한 정부와 국회가 수긍하기 어려워보인다. 장기보유한 주식에 더많은 의결권을 주는 차등의결권 종류주식 도입도 한 방법이지만 많은 논란을 일으킬 수 있어 신중히 접근할 과제다.

어떤 경우든 주주들의 주총 참여를 다각도로 독려하는 기업들의 노력은 필수다. 그 바탕 위에 다른 대안을 도입해 시너지를 내야 한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주총참여를 적극 권유하고 전자투표를 도입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보고 그래도 문제가 있다면 개선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6월 토론회 찬반 치열(6월19일,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불스홀)

▶김복만 풍산 이사 "최근 기관투자자조차 의결권행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대로 내년 주총에서 감사를 선임 못한 회사는 관리종목 지정, 심지어 상장폐지될 위험도 있다. 주총장 '총회꾼'같이 실질적 어려움에 대한 근본적 해결도 필요하다."

▶김경섭 국도화학 이사 "소액주주 주총 참석이 저조해 금년 주총에서 감사선임시 섀도보팅 제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부실기업 대주주 또는 경영진이 소수 주주의 눈을 가리기 위해 섀도보팅을 악용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건전한) 기업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폐지할 것이라면 3% 룰도 함께 폐지해야 한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기업정책실장 "정부에선 장기투자자의 참여를 높이자는 취지에서 폐지한 것 아닐까 하는데 현실적으로 단기성향 개인투자자가 많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섀도보팅 부활은 신중해야 한다. 개정법이 시행되지도 않았고 특정일 주총 집중(슈퍼 주총데이)도 해소되지 못했다."

▶채희만 법무부 상사법무과 검사 "기존 섀도보팅도 감사선임시 (대주주는) 3%까지만 행사가 가능했다. 폐지로 인한 문제를 다른 노력으로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주주들이 주총에 참석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주주 보호책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명순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장 "전자투표 활용기업은 유관기관과 협동해 지원하겠다. 의결권대리행사권유 전자적 교부(전자위임장)를 필요로 한다면 관련법령을 검토하겠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난해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직접방문하거나 우편을 이용하는 방식외에 이메일과 팩스를 통해 권유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여전히 위임장 확보가 여의치않다는 지적이 있었다"면서 "전자위임장 권유 제도는 소액주주가 예탁원 등의 특정 홈페이지를 방문해 본인인증뒤 위임장을 수령하고 권유자의 설명에 따라 위임을 결정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의결정족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온 상장사들에게 섀도우보팅 폐지 이후 손쉬운 의결정족수 확보도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전자위임장 권유제도가 도입되면 경영진에 우호적인 주주들의 위임장을 확보할 수 있어 주총안건 통과에 유리할 것"이라면서도 "전자적 방식인 만큼 보안문제 등은 확실히 마련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전자투표제의 경우 상법 소관으로 기업들의 비용부담이 있는데다 이사회 결의가 필요하다"면서 "전자투표 의무화 법안이 지난해 발의됐지만 기업들의 반대로 논의가 중단된 상태로 안다"고 덧붙였다.

 

법무부는 섀도보팅이 폐지돼도 주주총회에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섀도보팅 때문에 기존에 사용되지 않았던 제도들을 활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23일 "상법은 주주가 총회에 출석하지 않더라도 전자적 방법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런 제도들은 사실상 섀도보팅 때문에 사용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섀도보팅이라는 편한 방법이 있어 기업에서 이런 제도들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섀도보팅 폐지로 감사 선임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기존 섀도보팅 제도도 감사선임 시 대주주는 3%까지만 의결권 행사가 가능했다"며 "섀도보팅 때문에 감사선임이 아예 안될 것이라는 우려는 과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기업 입장에서 (섀도보팅을 적용했던) 그만큼의 주주를 더 주주총회에 참석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지만 섀도보팅이 갖는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일단 섀도보팅 폐지 이후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섀도보팅 폐지 이후 주주총회 양상 등을 보며 문제점이 있다면 고쳐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