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에 도전한 매튜 산토스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 소위 '스펙'이 모자랐다. 부통령 또는 주지사를 지낸 경쟁자와 달리 산토스의 이력엔 고작 휴스턴 시장, 하원의원만 적혀 있었다. 라틴계였던 점도 표 확장을 방해했다. 선거 동안 젊고 개혁적인 이미지로 상승세를 이어갔지만 기껏해야 '페이스메이커'라는 평을 받았다.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원로들은 그에게 사퇴를 제안한다. "이쯤해도 잘했어", "더 이상의 분열은 대선 패배를 낳는다"며 차기를 노리라는 것. 하지만 그는 연단에 올라 마지막 연설을 했다. 본체만체하던 당 선거인단은 연설이 끝나자 "산토스"를 연호하며 그를 민주당 대선 후보로 뽑았다. 산토스의 연설 전문을 아래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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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출마한 매튜 산토스 후보 연설 장면/'웨스트윙' 화면 캡쳐

경쟁 상대였던 베이커 주지사는 전당대회 도중 아내의 우울증이 도마에 올라 자격 시비 논란을 겪었다. 백악관 안주인이 될 사람의 정보는 모두 공개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산토스 캠프 역시 '우울증' 제보를 받고 폭로를 고민했지만 산토스는 협박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이의 질병까지 선거에 이용할 만큼 위선적인 이는 바로 자신과 우리라고 반성한다.

산토스는 또 공직을 대가로 지지를 호소하고 승리를 위해서라면 당의 주인인 당원들을 외면하는 행동도 되돌아봤다. 연설 전, 핵심 참모가 자원봉사자나 기부자까지도 과연 순수한 마음으로 돕겠냐고 반박했지만 산토스는 특혜가 아닌 가치를 놓고 투표할 것을 강조했다. 아울러 당원 개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며 자신의 편으로 끌어 모았다.

산토스의 연설은 '반성'이 갖는 힘을 보여준다. 정치인에게 있어 '반성'은 꺼내기 힘든 카드다. 정치 공학으로 보면 '반성'의 대상은 주로 같은 편이라 내부 분란을 야기할 수 있다. 정치인 개인으로서도 '반성'은 노선 수정을 의미해 고민과 성찰을 동반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그런 만큼 과거를 되새김질한 정치인은 진솔하고 비전을 갖춘 정치인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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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전북 전주시 한국전통문화의 전당에서 열린 '2015 정의당 전국동시당직선거 합동유세'에서 당대표에 출마한 조성주 정치발전소 대표가 유세 연설을 하고 있다.2015.6.2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근 우리 정치에서도 울림이 컸던 두 사람의 연설문이 있었다. 지난 6월 정의당 당 대표 선거에 나왔던 조성주 후보의 '출마의 변', 지난 4월 국회 본회의에서 진행된 유승민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연설문'을 뜯어보면 산토스의 '반성'이 떠오른다.

'2세대 진보정치'를 강조했던 조 후보는 진보정당의 과거를 반성했다. 그는 진보 진영 내부에서 쉽사리 제기하지 못했던 노동운동 중심, 의회 밖 정치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 후보는 진보정당이 담지 못했던 계층을 대변해야 한다며 노선 수정을 강조했다. 그의 정치 철학에 대해 "진보의 미래를 봤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유 전 원내대표 연설 역시 기저에는 보수 정치에 대한 반성이 깔려 있었다. 당시 그는 '어제의 새누리당은 경제성장과 자유시장경제에 치우친 정당'이라며 전통 보수 노선에서 탈피할 것을 밝혔다. 유 전 원내대표의 '반성'에 많은 언론은 대서특필하며 관심을 보였었다.

정치인의 '반성'은 책임이 뒤따를 때 더욱 파괴력을 지닌다. 명연설로 민주당 대선 후보를 거머쥔 산토스는 이후 대통령에 당선됐다. 자신이 '반성'했던 정치 문화, 기존 민주당 노선을 실제로 변화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승리를 가져간 산토스와 달리 조 후보와 유 전 원내대표는 낙선과 사퇴로 '패배'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들이 당장의 패배에 낙담하기보다 자신들의 '반성'을 잊지 않고 어떻게 실천하느냐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