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문재인 총리, 정치는 꿈꿀 수 있나

[the300][웨스트윙으로 읽는 한국 정치 ①]

박경담 기자 | 입력 : 2014.08.15 17:54
편집자주웨스트윙은 지난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방영된 미국 정치 드라마다. 가상의 민주당 대통령 제드 바틀렛 집권기 8년과 정권 재창출까지 다룬다. 생생한 정치 현장, 가치 논쟁을 다루는 이 드라마를 통해 한국 정치를 엿보고자 한다.

민주당 산토스 후보(왼쪽)와 공화당 비닉 후보(오른쪽)=웨스트윙 방송화면 캡처
정치는 싸우는 게 일이다. 정치권력 획득을 위한 경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 다퉈야 한다. 관전자인 국민에게 외면당하지 않으려면 정당은 고급스런 싸움의 기술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잘 싸워 생긴 미운 정은 상대편과 화해하고 서로 힘도 합치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웨스트윙 시즌7은 민주당 산토스 후보와 공화당 비닉 후보의 대선 레이스를 다룬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인격을 깎아내리는 저열한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환경·세금·노동·이주·외교·안보 등을 논하며 보수와 진보의 급소를 품격 있게 노린다.

대선 승리는 산토스가 거머쥔다. 비닉은 사실상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 워싱턴 거리를 쓸쓸히 걷다 산토스의 연락을 받는다. 산토스는 자신과 난타전을 벌인 비닉에게 내각 서열 1위 국무장관 직을 제의한다. 비닉은 툴툴거렸지만 결국 제안을 받아들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18대 대선 후 문재인 후보를 국무총리에 올리는 격이다.

드라마라 가능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정적과의 연대는 실제로 있다. 가장 가까운 예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자신의 재선에 있어 당 내 가장 큰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기용했다. 공화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남북 전쟁을 앞두고 자신을 '팔 긴 원숭이'이라며 무시했던 민주당 출신 에드윈 스탠턴을 전쟁부장관에 임명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지난해 말 대연정에 합의하며 3선 총리에 올랐다. 보수당인 기독교민주당·기독교사회당 연합을 이끌며 중도좌파인 사회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한 것. 그는 보수·진보 간 통 큰 정책연대를 도출해내며 독일 역사상 위대한 정치가의 반열에 올랐다.


5일 수원 경기도의회에서 새누리당 이승철-새정치민주연합 김현삼 대표의원 등이 20개 항목이 담긴 ‘경기도 연합정치 실현을 위한 정책협의회 합의문’ 발표 후 남경필 도지사가 정책실현을 다짐하고 있다. 2014.8.5/뉴스1
우리 정치에서 정적과의 연대, 대연정은 사실 실현되기 어렵다. 거대 양당제 하에서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와 고질적인 지역주의는 정당이 가치연대를 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당장 눈앞에 담보된 승리의 전리품을 나눠 가질 정치인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이후 힘의 균형이 보수 쪽에 쏠리자 보수·진보 간 여러 쟁점에서 대화와 타협 대신 '강 대 강'의 대결로 흐르는 경우가 잦았다. 당장 세월호특별법을 둘러싼 여야대치 상황만 봐도 그렇다. 또 야당끼리 힘을 합치는 경우도 정책연대보다는 야권연대라는 정치공학 구도로 사고하기 일쑤였다.

많지 않지만 우리나라도 대연정 사례가 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5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대연정을 제안한 바 있다. 또 최근에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아이디어에 그치지 않고 야당에 부지사직을 넘긴 뒤 정책 연대에 착수했다. 노 전 대통령의 제안이 정치에 상상력을 더해 꿈을 꾸게 했다면 남 지사는 '꿈 깨'라는 지적에 '꿈은 이뤄진다'며 한 방 날린 셈이다.


남 지사는 대연정을 발표하며 "내 적은 야당이 아니고 보수의 적이 진보는 아니다"고 말했다. 여야가 아군과 적군으로 나눠 제로섬 전쟁을 치르기보다는 점진적이지만 함께 발전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남 지사의 정치실험 결과는 예단할 수 없지만 우리 정치사에 획을 그은 것은 분명하다. 웨스트윙에서 그려지지 않은 산토스와 비닉 간의 공존기가 남경필판 에필로그로 마무리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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