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인사들이) 공천권을 휘두르고 싶어하지만 나는 계속 오픈프라이머리(국민경선)를 한다고 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8일 밤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압박하고 있는 친박계의 공세가 총선 공천권 때문이라는 해석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국회법 개정안과 이어진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사퇴 논란이 여권내 계파간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내년 총선 공천권 문제가 수면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번 갈등이 외견상 당청 관계가 핵심으로 보이지만 본질은 내년 총선의 공천을 앞두고 벌어지는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친 박근혜)계, 김무성 대표 등 비박(비 박근혜)계 간의 힘겨루기라는 시각이다.

친박계의 '지도부 흔들기'가 성공할 경우 박 대통령의 당 장악력이 다시 확인되면서 김 대표 주도로 추진하고 있는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공천제)의 추진력이 약해질 수 밖에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비박계 핵심 관계자는 29일 "박 대통령이 의원들이 뽑은 원내대표를 교체하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셈이지만 끝까지 밀어부칠 경우 유 원내대표가 버티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박 대통령은 내년 총선에서 실질적인 공천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비친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비박계 중진 의원도 "유 원내대표를 이렇게 쫓아내는 건 말이 안된다"면서 "결과적으로 대통령이 공천권 행사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을 당청간의 주도권 다툼을 넘어 내년 총선 공천을 앞둔 파워 게임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이 나오는 것은 박 대통령의 당내 영향력이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박계 지도부는 '대통령에 이길 수 없다'는 현실론으로 다시 한번 박 대통령의 뜻을 받아들일 분위기다. 공청권은 당 대표에게 있지만 김 대표가 공고한 지지율을 가진 박 대통령에게 맞서기 쉽지 않은 것을 확인하게 된 이상 공천 국면에서도 박 대통령과 친박계의 요구를 무시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

내년 총선에서 친박계가 최소한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구도를 흔들 필요가 있었고 국회법 개정안 논란을 그 기회로 삼았다는 풀이다. 지난 1년여간 국회의장, 당 대표, 원내대표 등 잇따른 당내 선거에서 비박계가 연승하면서 자연스럽게 당 주도권이 비박계로 넘어간 상황이었다.

유 원내대표가 사임하고 친박계 원내지도부가 구성되거나, 친박 최고위원 등의 집단 사퇴로 지도부가 재구성될 경우 공천작업을 직접 박 대통령이 주도하게될 가능성도 있다. 당장 공천 실무를 담당할 차기 사무총장 인선 과정에도 청와대측의 특정인 요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 주변에서 '유 원내대표 사퇴 불가피론'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공천권 다툼이 본격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친박계와 이에 동조하는 최고위원들이 집단 사퇴할 경우 조기 전당 대회 등으로 김 대표 자신을 포함한 비박계 지도부의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친박계의 강공이 먹혀 들어 비박계 지도부가 흔들릴 경우 김 대표가 강조해온 오픈프라이머리도 추진력이 떨어질 수 있다. 오픈프라이머리는 특정인이나 특정세력의 공천권 행사를 막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현역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정치신인들의 진출이 어려워지는 등 단점도 있다. 김 대표 주도로 당론으로 추인이 이뤄진 상황이지만 야당이 도입에 반대하고 있고, 당내에서도 여전히 우려가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과 친박계가 공천에 일정정도 영향력을 행사하려 나설 경우 오픈프라이머리의 취지를 살려내기가 어렵게 된다. 박 대통령이 국회법 거부권을 행사한 국무회의에서 '정치권 물갈이'를 강조한 발언들을 쏟아낸 것도 김 대표가 추진하는 오픈프라이머리와 배치되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 등을 언급하면서 "새로운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만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국민들께서 선거에서 잘 선택해 주셔야 새로운 정치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박계의 한 관계자는 "공천권은 당 대표가 갖게 되지만 박 대통령의 당 장악력이 확인되고 검찰 등 사정 권한도 대통령에게 있다고 보면 실질적인 공천권을 누가 행사하게 될지 알 수가 없다"면서 "친박계는 이번 논란 과정에서 이런 여지를 최대한 높이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각자가 가진 1표를 행사해 우리 동네 행정을 책임지는 구청장·군수부터 행정수반이자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까지 선출한다. 그리고 이 선출직에는 1표를 행사할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 후보로 나설 수 있다.

각각의 직책별로 일정 수준의 나이 제한은 있지만 누구나 조건 없이 후보 등록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선출직 후보들은 선거철만 되면 여당이 됐든 야당이 됐든 정당 공천에 목을 맨다.

겉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정당의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선거 운동이 당선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저에는 정당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이어지는 함수 관계가 존재한다.

정당이 특정 지역의 민심을 대변하는 정치적 토대가 여전한 대한민국에서 후보들이 정당 공천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계파 힘에 좌지우지 된 공천…현 제도 바꾸기는 쉽지 않아

한국 정당사에 등장하는 공천의 과정들은 투명하고 공정하지 못했다. 어느 계파 보스의 목소리가 더 힘이 있느냐에 따라 공천 결과가 좌우됐고 공천권을 가진 사람과 이를 따내려는 사람 간의 권력관계도 형성됐다.  

그 권력을 따내려는 정당 내의 힘 싸움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고 계파의 결집력은 더욱 사생결단의 양상으로 나타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현재와 같은 하향식 공천제도로 인한 당권 경쟁과 계파정치가 우리 정치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의견에 여야 모두 동의하면서도 선뜻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공천 관행을 바꾸기도 쉽지 않은 분위기다.

◇제3대 총선서 최초 도입…정당정치 기틀 마련

고치기 쉽지 않은, 알면서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가 힘든 현재 우리나라의 정당 공천 제도는 이승만 대통령 시절인 제3대 총선(1954년)에서 집권당인 자유당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자유당은 당시 203개의 의석에서 181명의 공인 후보자를 선정해 발표했다. 오늘날의 정당 공천으로 당 차원의 전폭적인 선거지원 하에 114명을 당선시켰다. 무소속이 67명, 야당인 민주민국당이 15명을 당선시킨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결과다.

여야가 각각 24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키는데 그치고 무소속 의원만 126명을 배출했던 제2대 총선과 비교해 봐도 당시 자유당의 공인 후보 개념은 정당 공천의 당선 가능성과 조직의 중요성을 확인시켜 줬다.

정당의 공천제도는 이후 무수히 많은 선거를 거치며 유명무실한 군소정당들을 정비하는 역할을 했고 정당 정치의 기틀을 마련하는 초석이 됐다.

◇공천 파동…8대 총선 신민당 '진산파동' 대표적

정당 공천은 대한민국의 현대 정치사를 명확히 했다는 밝은 면만큼 그림자도 확연한 제도였다.

제8대 총선(1971년)에서 야당인 신민당에 발생한 이른바 '진산파동'이 대표적이다. 공천권을 가진 신민당 당수 유진산이 후보 등록 마감 3분 전에 당초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영등포구 갑구 출마를 포기하고 전국구(현 비례대표) 기호 1번 후보로 본인을 등록하며 당권을 둘러싼 내홍을 촉발했다. 

이에 항의하는 당원들에게 유진산 당수는 정계은퇴, 당수직 사퇴, 전국구 후보 사퇴 중 한 가지를 선택하겠다고 약속만 하고 일본으로 출국해 버린다. 이에 신민당 대선 후보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은 유 당수를 당에서 제명하고 당수 권한대행을 맡는다.

그러나 당시 라이벌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 등이 당헌에 따라 운영위원회 부의장에게 당수 권한대행을 맡길 것을 제안하는 등 당 내 분란을 야기하는 시발점이 됐다. 결과적으로 신민당은 총선 기간에 유세 계획조차 세우지 못했고 선거에서도 여당인 민주공화당에 패배했다.

◇18대 총선 한나라당, 19대 총선 민주통합당…공천 갈등 노출

가까운 시기에 나타난 공천 파동으로는 제18대 총선(2008년)에서 여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불거진 '친박(친 박근혜)계' 학살을 들 수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 한 이후 당권까지 거머쥔 '친이(친 이명박)계'가 당내 대선 경선 경쟁자였던 박근혜 당시 의원 측근들을 공천에서 대거 배제한 사건이다.

현역의원 128명 중 50명이 공천에서 탈락하면서 18대 총선에서의 한나라당의 현역의원 교체율은 39%로 역대 최고였다. 공천을 받지 못한 '친박계' 인사들은 한나라당을 탈당한 서청원 의원과 홍사덕 전 의원 등을 중심으로 '친박연대'를 구성하고 총 14석의 의석을 확보했다.

그러나 19대 총선에서는 역으로 당권을 잡은 '친박계'가 '친이계' 출신 다수를 공천에서 탈락시켜 계파 갈등의 골을 키웠다. 

새정치민주연합(당시 민주통합당)의 19대 총선 양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명숙 대표의 취임으로 당권을 잡은 '친노(친 노무현)계'는 이명박 대통령이 실정을 하고 있어 총선승리가 확실하다는 판단 아래 이미 공천을 받은 후보를 배제하고 다른 후보를 공천하는 등의 무리수를 여러 차례 둬 계파 갈등을 노출, 패배의 빌미를 자초했다. 

#지난해 5월 국회의장 선거. 비박(非朴)인 정의화 의장은 새누리당 의원 147명이 표결에 참여한 가운데 101표를 획득했다. 친박(親朴) 진영의 지원을 받은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46표를 받는데 그쳤다.

#지난 2월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유 원내대표는 정무위원까지 모두 표결에 참여하며 친박계가 표를 몰아준 이주영 의원을 꺾었다. 당원들까지 투표에 참여한 지난해 7월 전당대회에서도 김무성 대표가 친박 좌장인 서청원 의원을 꺾고 당대표에 당선됐다.

최근 당내 굵직한 경선에서 알 수 있듯 친박계는 당내 소수파로 전락했다. 정치권에서는 156명의 새누리당 의원 가운데 확실한 친박은 30명 안팎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이후 친박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친박 의원들은 다수 언론과의 인터뷰와 방송출연 등을 통해 "유 원내대표 퇴진"을 거듭 주장하고 있다. 최고위원 사퇴 등 단체행동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당내 갈등, 비박계 총선에 '치명적'

반면 다수인 비박계 의원들은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29일 20명의 재선 의원들이 " 의회민주주의와 당내민주주의는 결코 훼손돼서는 안된다"며 당 최고위원회에서 유 원내대표 거취를 결정해서는 안된다는 공동성명을 낸 정도다.

"당 지도부의 '공천 기득권 내려놓기'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 중이다. 특히 지도부의 대리인으로 공천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사무총장을 공천과 관련한 모든 기구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6월 25일, 김상곤 새정치연합 혁신위원장 기자회견 중)

"우리 당의 혁신과제 중 가장 중요하고 당면한 과제는 공천 혁신일 것입니다. 공천 혁신의 핵심은, 대표의 공천권 내려놓기에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6월 29일,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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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야당이 내놓은 공천개혁의 기본 골격은 '오픈프라이머리 일률 적용 반대, 전략공천 양성화'로 집약된다. 오픈프라이머리 부분 실시로 공천 투명성을 확보하고 전략공천으로 현역의원 프리미엄을 제한하겠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