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위의 시행령', 세월호·관피아 낳았다

[the300] ['시행령 공화국' 탐사리포트 ①]세월호 두달···시행령 등 법령 무력화 '하극상' 국가 근간 위협

해당 기사는 2014-06-20 런치리포트에 포함된 기사입니다 PDF 런치리포트 뷰어

(인천=뉴스1) 허경 기자= 지난 4월28일 인천 중구 한국해운조합 인천지부 사무실에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 정확히 두달 전 침몰한 '세월호'. 이 배에 운항 허가를 내줬던 한국해운조합의 이인수 전 이사장은 해양수산부에서 본부장까지 지냈다. 공직자윤리법은 원칙적으로 퇴직 공무원이 관련 분야의 이익·협력 단체에 취업하는 것을 2년간 금지하고 있다. 업계와 정부의 과도한 '유착'을 막기 위함이다.

그러나 하위법령인 시행령은 이같은 법률의 취지를 전면 무력화시켰다. 

시행령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협회'에는 취업을 허용한다고 쓰여 있다. 갓 퇴직한 '해피아'(해수부+마피아)가 해운조합 이사장 자리를 꿰찰 수 있었던 이유다. '관피아'(관료+마피아)들의 유착과 '봐주기'식 관리가 불러온 '세월호'의 비극은 그렇게 잉태됐다.

시행령, 고시, 지침 등 정부의 '행정입법'이 상위법령인 '법률'을 배반하는 이른바 '법령의 하극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근로기준법이 '주당 40시간'으로 규정한 근로시간은 고용노동부의 행정지침 하나로 68시간까지 늘어났다. 또 화장품법이 화장품 포장에 가격을 표시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고 있음에도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시는 "곤란한 경우 표시하지 않아도 된다"고 법률을 뒤엎고 있다.

국민에 의해 입법권을 부여받은 국회의 법률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행정부에 의해 번번이 무력화 또는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노회한 관료들은 시행령 등 '행정입법'에 대한 정부의 재량권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다. 우리나라를 두고 '시행령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픽= 이승현 디자이너

◇ "법률 위배되는 행정입법, 무력화"

이에 국회가 '반격'에 나섰다. 법률의 취지에 맞지 않는 시행령 등에 대해 국회가 수정을 요구하거나 무력화시킬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국회에서 추진되고 있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 행정입법에 대해 소관 상임위원회의 의결로 해당 부처 장관에게 3개월 내 시정과 처리경과 보고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 운영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이 법안은 또 시행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않는 경우 본회의에서 그 효력을 상실토록 할 수 있는 내용도 담고 있다. 행정입법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재량권'을 견제하기 위함이다.

현행 국회법 제98조2항에 따르면 정부는 법률에서 위임한 시행령, 훈령, 고시 등을 제·개정할 때에는 반드시 10일내 국회 해당 상임위에 보고해야 한다. 상임위는 만약 이 행정입법들이 법률의 취지나 내용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이를 정부에 통보할 수 있다. 이 경우 정부는 이에 대한 처리 계획을 지체없이 해당 상임위에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이 같은 처리 의무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국회로서는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지금은 없다. 헌법 107조는 명령 또는 규칙이 헌법 또는 법률에 위배되는지 대법원이 최종 심사할 수 있지만, 이는 위헌 또는 위법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되는 경우에 한정된다. 법률에 배치되는 시행령 등 행정입법에 대해 재판 이전에 사전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셈이다.

◇ 의원들 "시행령 견제 전폭 지지" vs "신중해야"

이처럼 시행령 등 행정입법을 국회가 견제할 수 있게 하는 법안에 대해 야당 지도부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반면 여당 지도부는 다소 신중한 모습이다.

19대 국회 후반기 운영위 소속인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원내수석부대표는 "실제로 말도 안되는 시행령이 나와서 '대응입법'을 2~3차례나 직접 낸적이 있다"며 "이런 행정입법에 대해 해당 상임위가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한 법안의 취지를 전폭 지지한다"고 밝혔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다소 신중한 입장이다.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일단 운영위가 열리면 문제점을 파악해 보겠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법률이 너무 구체적이면 현실과 부딪힐 수 있기 때문에 시행령 등은 현실을 고려해 마련하도록 정부에 재량권을 준 것"이라며 "시행령 등 정부의 고유한 행정입법까지 국회가 견제한다면 권한이 국회로 과도하게 쏠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은 연방의회가 행정부의 행정입법에 대해 거부권을 갖고 있다. 행정부는 시행 60일 전에 의회에 행정입법안을 제출해야 하며 만약 의회가 거부하면 시행할 수 없다. 독일은 연방의회가 행정입법에 대해 동의권 뿐 아니라 수정권과 폐지권까지 갖고 있다. 영국은 일부 행정입법에 대해 반드시 의회의 승인을 거치도록 하고 있으며 의회가 행정입법을 무효로 만들 수 있는 권한도 있다.

19대 국회 후반기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인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은 "입법부가 국민들의 뜻에 따라 입법을 했는데 정부가 그에 반해 시행하는 것은 반드시 시정해야 할 사항"이라면서도 "의원들 스스로 정부의 시행령 입법예고 등에 관심을 갖고 행정입법들을 더 열심히 챙길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 이승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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