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행사…2년 반 임기 걸고 '승부수' 띄운 朴

[the 300]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와 이에 따른 후폭풍은 어는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강도가 더욱 셌다. 정치권에 대한 박 대통령의 불신과 이를 비판하는 수위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잔여 임기 2년 반 여를 걸고 여야 정치권과 정면충돌도 불사하겠다며 승부수를 띄웠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모두 발언 16분 중 10분 이상을 할애해 민생 및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은 처리해주지 않고, 위헌 요소가 내포된 국회법 개정안을 졸속 통과시키며 정쟁에만 몰두하는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했다. ‘저의’ ‘비통’ ‘가짜 민생법안’ ‘구태 배신정치’ 등의 격한 단어를 써가며 거부권 행사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박 대통령이 이처럼 초강수를 둔 것은 국회법 개정안이 명백한 위헌이라는 명분을 확신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국회법 개정안은 헌법의 중요한 원리인 3권 분립의 기본 정신과 행정부의 시행령 제정 권한을 국회가 강제로 조정하겠다는 것이라는게 청와대의 기본 입장이다. 박 대통령은 “정부의 행정을 국회가 일일이 간섭 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헌법 수호의무를 지닌 대통령 입장에서 어떻게 위헌성이 있는 법안을 받아들일 수 있겠냐”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나아가 이를 '여야가 야합’을 통해 국민적 신뢰를 저버린 "배신의 정치"의 결과물로 인식했다. “개정안에 대한 충분한 논의 과정도 없이, 그것도 아무런 연관도 없는 공무원연금법 처리와 연계해서 하룻밤 사이에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고 말했다.

특히 “위헌성 문제가 커지자 법안을 수정하면서 '요구'를 '요청'으로 한 단어만 바꿨는데, '요청'과 '요구'는 사실 국회법 등에서 같은 내용으로 혼용해서 사용되고 있다”며 “또한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는 부분을 ‘검토하여 처리 결과를 보고하여야 한다’로 완화하는 것은 바꾸지도 않았고, 야당에서도 여전히 강제성을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것은 다른 의도로 보면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충분한 검토 없이 서둘러 여야가 합의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며 중재안을 낸 정 의장을 포함한 여야 모두를 싸잡아 비난했다.

거부권 행사 방침을 확실히 한 뒤에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특별법, 영유아보육법의 연계 처리 합의, 관광진흥법과 최저임금법 처리 연계 합의 등을 일일이 거론하며 “기가 막힌 사유들로 국회에서 처리 못한 법안들을 열거하는 것이 어느덧 국무회의의 주요 의제가 된 현실 정치가 난감할 따름”이라고 허탈해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꼭 필요한 법안은 당리당략으로 묶어놓고 있으면서 본인들이 추구하는 당략적인 것은 빅딜을 하고 통과시키는 난센스적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그러면서도 언제나 정치권은 정부의 책임만 묻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같은 발언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이에 따른 국정 혼란의 근본 원인이 민생을 외면한 구태 정치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사안이 '정쟁 대 경제 살리기'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국민여론에 호소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특히 “과거 정부에서도 통과시키지 못한 개정안을 다시 시도하는 저의를 이해할 수 없다”고도 했다. 박 대통령은 여야의 대립으로 경제 살리기 법안 등 중요 국정과제 추진에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음을 수없이 토로해왔다. 각종 회의석상에서 국회에 협조 요청을 했지만, 변화가 없던 터에 국회법 개정안의 정부 이송을 계기로 쌓였던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보였다.

각종 법안이 국회 장기 계류하면서 정부는 시행령 등을 통해 정책을 간접적으로 추진해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런 처지에 국회법 개정안까지 통과시키려는 것은 남은 임기 손발을 묶어 버리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정치권 비판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겨냥하며 정점을 찍었다. "정치는 국민들의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고 국민들의 대변자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유 원내대표를 벼랑으로 몰았다. 자신의 정치적 논리에 따라 민의에 반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냈다는 거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