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보다 더 심해" 극단적 선택 부르는 '이 질환', 막을 방법은

[MT리포트-자살 막는 나라⑥]

편집자주코로나19(COVID-19) 팬데믹 3년 간 코로나로 숨진 이들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이 더 많은 곳이 대한민국이다. 과거 자살로 악명이 높았던 일본은 국가가 직접 자살을 막기 위해 나서 자살률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인간이 자신에게 가하는 최악의 비극을 막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뭘까.
1만3426명. 안타깝게도 2021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국인 수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떨쳐내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10만 명당 26명(2021년 기준)이던 자살률을 2027년까지 18.2명으로 30% 줄이겠다는 목표로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을 수행하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사회안전망에 더 투자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정신질환, 특히 우울증을 적극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분위기를 함께 조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자살자의 45~70%가 우울증 환자였고, 우울증 환자 3명 중 2명이 자살을 생각하며, 20%가 실제로 자살을 실행한다는 보고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우울증은 자살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강승걸 교수는 "의학적으로 우울증의 주요 증상은 자살 생각, 자살 시도가 꼽힌다"며 "자살자 또는 자살시도자에게 정신질환이 동반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16~2018년 정신질환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한 후 30일 안에 자살한 환자 수를 분석했더니 일반 인구집단에서 자살한 사람보다 66.8배나 더 많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자살 시도자 90%, 우울증 등 정신질환 동반


자살 시도자의 90% 이상에서 정신질환이 발견된다. 극단적 선택을 부르는 정신질환에는 우울증, 조울증(양극성 정동장애), 조현병이나 알코올·약물 사용 장애가 포함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게 '우울증'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10~2018년 정신질환으로 입원한 15세 이상 환자 157만 명의 '퇴원 후 30일 내 자살률'을 비교·분석했더니 우울증 환자의 퇴원 후 30일 내 자살률은 10만 명당 364.4명으로 가장 높았다. 이어 조현병(167.8명), 조울증(158명) 순으로 나타났다. 자살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울증을 예방·치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울증은 생각의 내용, 사고 과정, 동기, 의욕, 관심, 행동, 수면, 신체 활동 등 전반적인 정신 기능이 계속 떨어져 일상에 악영향을 미치는 상태를 가리킨다. 우울증 환자 5명 중 4명은 수면 장애를 호소한다. 특히 아침까지 충분히 잠을 못 이루고 일찍 깨거나 밤사이 자주 깨는 증상을 보인다. 많은 환자가 식욕 감소와 체중 저하를 보인다. 반대로 일부 환자는 식욕이 증가하고 수면이 길어지는 비전형적 양상이 나타난다. 불안 증상은 환자 90%에서 나타나는 흔한 증상이다. 성욕 감퇴, 집중력 저하를 경험하기도 한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우울증 여부를 감별해야 한다. 우울증으로 진단받았다면 약물 치료, 정신 치료(심리 요법), 전기경련요법 등으로 치료해야 한다. 현재 사용되는 항우울제는 투여 2~3주 후에 효과가 나타난다. 약물 치료를 받은 우울증 환자 3명 중 2명에서 눈에 띄는 개선 효과가 나타난다. 단, 약물로 증상이 호전돼도 6개월 정도는 약물 치료를 계속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정신 치료는 우울증을 유발한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능력을 향상해 현재 증상을 조절하는 치료법이다. 우울증이 재발하지 않도록 개입하는 효과도 있다. 전기 경련 요법은 자살 위험성이 높거나 신체 쇠약이 심해 빠른 치료가 필요한 경우, 항우울제에 반응이 없는 경우에 실시하는데 치료 효과가 빨라 수일에서 1~2주면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합병증이 나타날 확률도 낮다.



노인 우울증, 치매로 오인해 방치하기 쉬워


그런데 우울증 진단이 더딘 연령층이 있다. 바로 만 65세 이상 노인층이다. 강 교수는 "우울증 환자 가운데 노인층은 우울증을 노화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겨 방치하는 경우가 적잖다"고 경고했다. 노인 우울증은 급증하는 노인 자살의 주원인으로 꼽힌다. 국내 10만 명당 자살률은 20대가 10명대인데, 80대 이상은 120명대에 달한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에선 노인의 약 20%에서 '노인 우울증'이 나타난다"며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늘면서 노인 우울증 환자도 덩달아 늘고 있다"고 말했다.

노인 우울증은 일반 우울증과 달리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 기능이 저하되거나 만사에 흥미·재미가 없고 모든 일에 시큰둥하거나 감동을 받지 않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중 기억력 저하 증상은 노화로 당연한 거겠거니 하고 여기거나 치매로 오인해 노인 우울증 진단이 늦어지는 이유로 작용한다. 노인 우울증 환자의 뇌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 생성량이 증가하는데, 이는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를 망가뜨려 기억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또 뇌에서 코르티솔 분비가 많아지면 전두엽의 피질도 손상돼 인지 기능을 떨어뜨린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지은 교수는 "노년기에 생겨난 우울증이 치매와 관련 없는 단순 우울증인지, 치매의 전조 증상인지 감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인의 혈관 질환이 우울증을 부르기도 한다. 뇌의 미세한 혈관이 장기간 망가져 이른바 '혈관성 우울증'을 유발하는 것이다.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도훈 교수는 "뇌 속 미세한 혈관이 하나둘씩 좁아지고 막히면 혈관성 우울증을 유발할 위험을 높인다"며 "평소 혈당·혈압·콜레스테롤을 관리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혈관성 우울증을 방치하면 자살 충동뿐 아니라 혈관성 치매로 진행할 위험을 높이므로 방치해선 안 된다.

우울증을 미리 막는 '입증된' 방법은 아직 없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조절하고,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주변 사람에게서 지지받는 게 도움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우울증이 악화하기 전에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 음주, 흡연, 불법적 약물 투여 등은 우울 증상을 악화하므로 피해야 한다. 신체적 활동과 운동이 우울 증상을 줄이는 것으로 보고된다. 걷기·조깅·수영 등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을 하는 게 권장된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앱,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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