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그날 '캠프 데이비드'는 섬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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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캠프 데이비드=뉴시스] 전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의 일정을 마친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3.08.19.
#캠프 데이비드는 시원했다. 울창한 숲속 길로 들어서자 여름 한낮 불볕더위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 대통령의 전용별장이라니 나무 한 그루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그곳은 아름다웠다.

미군을 비롯한 보안요원들도 상냥했다. 검측 과정에서 가방을 일일이 열어보고 차량 밑에까지 들어가 샅샅이 살피지만 친절했다. 미국인이 아닌 이를 대하는 특유의 고압적 태도는 없었다. 기자들도 역사적 순간을 즐겼다. 한국어와 영어, 일어가 교차하는 임시 프레스센터에는 활기가 넘쳤다. 티셔츠 등 기념품을 늘어놓은 간이 판매대에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현장에서 들린 표현대로 사상 첫 한미일 정상회의는 그 자체로 어메이징했다.

#정상들의 얼굴도 밝았다. 시종일관 분위기는 부드러웠고 종종 환한 미소도 보였다. 산책로를 오가는 친근하고 여유로운 세 정상의 발걸음은 '강력한 원 팀'의 탄생을 세계에 과시하려 듯했다.

실제 한미일 협력체의 탄생은 외신들이 이미 평가한 대로 그 역사적 의미가 엄청나다. '인태지역의 지정학을 바꾼 8시간'(조태용 국가안보실장) '어느덧 세상의 맨 앞'(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과 같은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선 한국이 불과 70년 만에 최정상 나라들과 함께 글로벌 안보 질서의 한 축을 담당케 된 상징적 사건이다.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다. 한반도의 복잡한 지정학적 리스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예전에 없던 한미일 협력체가, 그것도 긴박하게 꾸려졌다. 우리를 둘러싼 국제질서가 이전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뜻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글로벌 안보 지형은 급변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를 지탱해왔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중심의 질서, 즉 얄타체제는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직접 영토전쟁을 일으킴으로써 강대국 간에 암묵적 협조를 전제로 했던 기존 틀에는 빠르게 균열이 갔다.

냉전의 룰이 흔들리면서 열전(熱戰)이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 국내에서 일찍이 우크라이나와 대만, 한반도의 연쇄 안보 위기를 경고해온 백승욱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이제는 세계적인 카오스가 기다리고 있다.

#캠프 데이비드를 떠나는데 섬뜩했다.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상공에서 전술핵이 터진다면? 북한은 작년에 핵 선제공격을 법제화했다. 전술핵 소형화에 사활을 걸어왔다. 북핵은 이미 협상용 카드가 아니라 공격용이라는 게 안보전문가들 사이에선 상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정부 차원의 첫 북핵 대응훈련을 시작하면서 "북한이 핵 사용도 불사할 것"이라고 말한 것 역시 국민을 겁주자는 게 아니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바깥세상에는 눈과 귀를 닫고 정쟁에 매몰된 정치권의 모습은 절망적이다. 죽고 사는 문제에 여야가 있을 수 없고 진영논리가 끼어들 틈이 없다. 친일 프레임은 또 어떠한가. 일본과 준군사동맹을 맺은 셈이란 비판이 나오는데, 일본이나 동맹보다 국민의 안전에 초점을 맞추면 어떨까. 상황의 엄중함을 제대로 알리고 국민적 역량과 지혜를 모을 때다. 지금 우리에게 걸린 건 자존심이 아니라 생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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