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민주화 후 길 잃은 韓 정치...정치인 평가 시스템 만들자"

[the300][머투초대석]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의 시선은 미래를 향해 있다. '노무현의 오른팔'로서 1988년 정치에 발을 디딘 36년차 정치인이지만, '구태'보다 '혁신'이란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

국회 최초로 자율주행 로보셔틀을 도입한 그는 데이터에 기반해 정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공지능(AI) 국회'를 만들겠단 포부를 밝혔다. 정책감사나 기업인을 옥죄는 배임죄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파격적으로 들린다. "수성만 해선 대한민국을 지킬 수 없다"는 게 '탐험가'를 자처하는 이 사무총장의 지론이다.

22일 취임 1년을 맞는 이 사무총장은 18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인터뷰에서 "산업화·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는 길을 잃었다"며 "다시 한 번 대규모 새로운 에너지가 우리 사회와 정치권에 수혈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공한 국가, 위기의 국민'이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철저히 데이터에 기반한 정치인 평가 시스템을 만들어 대한민국 정치권을 '격투기장'에서 '기록경기장'으로 탈바꿈시키자고 그는 주문했다.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다음은 이 사무총장과의 일문일답.

-미래 기술과 혁신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국력은 경제력이고 경제력은 결국 기술력이다. 글로벌 패권 전쟁의 핵심도 기술력 아닌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 방한하자마자 찾은 곳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다. 우리에게 반도체 같은 산업이 10개 있다면 그것이 곧 우리의 경제력, 안보력, 외교력이 될 것이다. 국회가 이달부터 첫 자율주행 로보셔틀 운행을 시작했는데 이를 위해 국회를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했다. 향후 서비스 지역을 여의도 전체로 넓히려고 한다. 국회가 첨단산업시대를 상징하는 장소로 거듭나야 한다. 야간 경비를 서는 로봇 도입도 연구 중이다. 1976년 입법 고시 실시 이후 처음으로 과학기술직류를 추가했다.

-지난해 취임사에서 '일류 국회가 돼야 일류 국가를 만든다'고 했다. 이를 위해 국회가 노력해야 할 점이 있다면
▶제일 중요한 것은 현재의 갈등을 해결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여는 것이다. 그러려면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첫번째다. 두번째는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적 정책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자신이 속한 정당의 눈으로만 볼 게 아니라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해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모든 지식 데이터를 가지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환경, 즉 'AI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올해 국회 정보화전략계획(ISP) 수립에 예산 10억원을 반영했다. 한국은행, 통계청, 재정정보원 등과 업무협약(MOU)을 맺어 빅데이터 서비스를 추진 중이다. 지식 문서를 한 번에 볼 수 있고 국회가 몇 십 년간 토론해온 내용을 한번에 분석해 볼 수 있도록 해 의원들이 데이터를 갖고 더 수준 높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게 꿈이다.

각 의원실이 직접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고 송출할 수 있도록 국회에 '이실직고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열심히 공부하는 의원들의 정책과 토론이 국민들에게 잘 전달됐으면 해서다. 국회에서 1년에 약 1400개의 세미나가 열리는데 이를 실시간 유튜브로 중계하면 국민들과 이해관계인들은 법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이 지난 18일 국회 의원회관 내 새로 마련된 '이실직고 스튜디오'에 대해 소개하는 모습/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현재 우리 국회의 입법 역량은 어떤 수준이라고 보나
▶2017~2022년 연평균 기준으로 한국 국회에선 6025건의 법안이 제출돼 1673개가 통과(가격률 27.8%)되는데 비해 영국에선 234개 중 36건(15.2%)이, 프랑스에선 695건 중 48건(6.9%)이 통과된다. 반면 회의 수는 다른 국가가 월등히 많다. 연평균 총회의(본회의, 상임위, 소위 및 청문회·공청회 등) 횟수가 한국은 605건인데 비해 미국 상원은 2068회, 하원은 3234회, 영국은 2395회, 프랑스는 1053회다. 선진국들은 각종 청문회와 공청회를 통해 사회 갈등을 줄이는 데 더 많은 힘을 쏟는다. 영국 킹스칼리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갈등지수가 매우 높은 나라로 나타났다. 갈등을 10%만 줄여도 국내총생산(GDP)이 약 2%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규제입법정책처'를 제안하고 민주당에서도 비슷한 법안들을 발의중이다. 이걸 통과시키면 국회가 보다 생산적인 입법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기간 정치를 하면서 느낀 게 있다면
▶대한민국에서 3가지 대못을 빼야 하고, 1가지 대못을 박아야 한다. 빼야할 3가지 대못은 공직사회를 마비시키는 감사원의 정책감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감사를 해서 공무원들이 감옥에 가는 일이 발생하면 공직사회는 무력화되고 중요한 결정은 못한다.

두 번째는 기업을 위축시키는 배임죄다. 잘못된 행동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면 횡령죄 등으로 처벌하거나 주주들이 민사소송으로 대응하면 된다. 배임죄라는 명목으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으로 기업인을 옥죄는 방식은 사라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족을 파괴하는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제도이다. 부모가 번 돈은 부모가 처분하는 게 맞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때가 되면 자녀의 것이 된다는 생각이 많다. 부모님이 기부한 것도 나중에 소송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래서는 기부문화가 생기기 어렵다.

반면 박아야 할 대못은 정치인 평가 시스템이다. 국민들이 선거 때마다 대부분 여론조사나 정서를 기반으로 결정한다. 그런데 손흥민같은 세계적 선수들의 연봉 협상은 경기 데이터에 기반하지 않나. 또 회사 사장들도 1년에 한 번 주주총회를 통해 성과를 따지지 않나. 대통령부터 전국 지방자치단체장까지 1년에 한 번씩 평가를 받고 등수를 매긴다면 대한민국 정치는 격투기장에서 기록경기의 장으로 변할 거다. 이런 평가 기준을 만드는 것이 정치 개혁이다.

-정치인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전세계 지수들을 분석한 결과, 공통적으로 물질적인 면에선 △일자리 △소득 △주거 △보육·교육 △의료·건강 △연금·노후생활 △문화적 혜택 등 일곱 가지다. △계층 이동성 유무 △빈부격차 정도 △갈등지수의 정도 등 사회통합지수 등을 본다. 시도지사 평가를 위해서는 지역내총생산(GRDP)도 따져야 한다. 실제 한국은행, 통계청 등에서도 이런 지수들을 연구 중이다.

어떤 지표를 평가항목으로 쓸 지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할텐데 그 과정이 곧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느냐를 가리킬 것이다. 지향점은 국가와 국민이 모두 부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이런 지표에 근거해 매년 정치인을 평가한다면 정치인들도 일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예산도 필요한 곳에 쓰일 것이다.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시대가 원하는 정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대한민국 정치는 산업화·민주화 이후 길을 잃었다. 빛나는 성과를 만들어서 오늘날 세계 10위권대 국가를 만들었지만 항상 정점에 있을 때 위기가 온다. 이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지도자와 국민이 하나의 목표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각 정당은 뚜렷한 목표를 제시해야 하고 정부도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연금개혁 방향이 무엇인지, 교육개혁은 무엇이 핵심인지에 대해 프로그램도 없고 문서로 존재하는 것도 없다. 독일 연정합의문은 100페이지가 넘어서 모든 것을 세세하게 기록한다. 반면 한국 정치인들의 협상문은 A4 1~2매에 불과해 해석을 놓고 논쟁이 붙을 수밖에 없다.

최근 광화문을 갔을 때 진보와 보수 지지자들이 나뉘어 격렬하게 시위하고 있는 장면을 봤다. 달리 생각하면 열정이 넘치니까 거리로 나오는 것이다. 이 열정을 하나로만 모으면 대단한 나라가 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산업화, 민주화 이후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지에 대해 정치인과 국민들이 합의하고 그 방향으로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대규모의 새로운 에너지가 우리 정치권에 수혈돼야 한다. 미중 갈등을 극복하고 디지털 시대를 선도하며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고 수명 100세 시대의 삶의 길을 열 수 있는, 새 역량을 가진 유능한 사람들이 정치권에 들어와야 우리나라가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국회도 현재 연금, 저출생, 교육개혁, 외교문제, 기술혁신 등을 주제로 대토론회를 진행중이다. 이 주제를 갖고 빅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어떤 해법을 갖고 있는지 비교 분석하는 좋은 보고서가 나오게 되면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이 훨씬 더 좋은 결정을 내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 내년 정도에 더 심도 있는 세계적인 보고서를 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세계적인 결정을 하고 세계적인 나라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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