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절반 틀려도 서울대 간다"...불수능의 비극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서울대학교 졸업생들이 24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정문 앞에서 2023년 서울대학교 제77회 학위수여식을 앞두고 기념촬영을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2023.02.24.

#1. 누구나 자신이 경험한 대학 입시가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역사상 가장 어려웠던 시험을 꼽으라면 이론의 여지가 없다. 1996년 11월22일 치러진 1997학년도 시험이 역대 최악의 '불수능'이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400점 만점에 전국 평균 점수가 170.7점이었다. 만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만점은 언감생심, 당시 전국 수석의 점수가 373점이었다. 400점 만점에 330점만 넘으면 서울대 의대나 법대에 갈 수 있었다.

특히 수학에 해당하는 수리탐구I의 난이도가 극악이었다. 80점 만점에 평균 점수가 22.9점이었다. 오타가 아니다. 심지어 반타작인 40점만 맞아도 서울대에 갈 수 있었다.

2교시 수리탐구I에서 지옥의 난이도를 경험한 수많은 수험생들이 멘탈 붕괴와 함께 이후 3·4교시를 망쳤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재수를 선택했다.

초고난도 문제에 익숙하거나 멘탈이 강한 일부 학생들만 원하는 대학에 가고, 나머지는 좌절을 맛봐야 했다. 극소수 최상위권 학생들의 변별력 확보를 위해 대다수 학생들이 자존감에 상처를 입거나 인생의 스텝이 꼬였다. 다신 없어야 할 최악의 난이도 조절 실패 사례다.

(부다페스트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11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에서 크레인 클라크 아담호가 침몰 13일만에 허블레아니호를 들어올린 뒤 바지선으로 의사당을 지나 이동하고 있다. ? AFP=뉴스1

#2. '헝가리 현상'이란 게 있다. 1880∼1920년 헝가리에서만 노벨상 수상자 7명이 집중적으로 태어난 기현상을 말한다.

비록 노벨상은 못 받았지만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불리는 존 폰 노이만도 이 시기 헝가리 출신이다. 참고로 폰 노이만은 오늘날 컴퓨터의 구조를 만든 사람이다.

왜 이렇게 특정 시기, 특정 장소에서 세계적인 천재들이 쏟아져 나왔을까. 물론 이들 가운데 대다수가 유대인이란 점에서 이유를 찾는 이들도 있다.

독일 등 동유럽의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기본적으로 평균 지능이 높다. 오랜 기간 핍박을 받았고 고리대금업에 주로 종사했으며 문맹률이 낮다는 점 등 문화적 이유 뿐 아니라 테이-삭스병 등 유전적 이유도 있다.

그러나 그 시대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이 헝가리에만 산 건 아니다. 굳이 따지면 러시아나 독일에 더 많이 살았다. 그런데도 유독 헝가리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덴 다른 이유가 있을 터다. 학자들이 찾아낸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첫째, 그 당시 헝가리 수학학회가 매년 개최한 '에트뵈스' 수학 경시대회가 헝가리 유대인 중산층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수학 붐'을 일으켰다. 수 많은 학생들이 이 대회 출전을 준비하면서 초고난도 수학 문제를 공부했다.

둘째, 이 즈음 발행된 '쾨말'이란 수학 월간지가 학생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학생들은 그 잡지에 실린 초고난도 문제를 서로 먼저 풀려고 경쟁했다. 문제가 얼마나 어려웠던지 며칠씩 고도의 몰입을 거쳐야만 겨우 풀 수 있었다고 한다.

예상했겠지만 당대 헝가리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들 상당수가 쾨말로 공부하고 에트뵈스 수학 경시대회에서 수상한 이들이다. 초고난도 문제로 단련된 사고력의 결과다.

이런 헝가리의 엘리트 수학 교육 시스템을 배워가 적용한 나라가 일본이다. 과거 도쿄대 수학 본고사에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도 문제가 나온 배경이다. 일본이 자연과학 분야에서만 20명 이상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게 이와 무관할까.

#3. '사교육 카르텔'만 배불리는 수능의 '킬러문항'은 없애야 마땅하다.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으로 어려운 문제를 내는 것 만큼 불공정한 게 있을까.

동시에 고민해야 할 게 수능의 변별력 확보와 학생들의 사고력 함양이다. 고도의 몰입적 사고를 통해서만 풀 수 있는 문제가 수능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면 어떤 학생이 그런 문제로 공부를 할까. 그렇게 길러진 아이들만 대학을 졸업할 때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누가 이끌어 갈까.

킬러문항은 없애되 높은 사고력이 요구되는 준 킬러문항 몇 개는 꼭 남겨뒀으면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문한 변별력 확보를 위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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