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값 1조 내라"?…트럼프의 '불완전판매' 깨는 법

[the300]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트럼프의 '사드 비용 요구' 발언은 '앵커링' 전략…BATNA(최고의 대안) 확보해야 협상서 안 밀려


"한국이 THAAD(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비용을 내는 게 적절하다고 한국 측에 통보했다. 그건 10억달러(1조1400억원) 짜리다." (4월27일 로이터통신)

"사드는 한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왜 우리가 그 돈을 왜 내야 하는가?" (4월28일 워싱턴타임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우리나라에 사드 비용 부담을 요구했다. 시점이 묘하다. 미군이 경북 성주 골프장에 사드 장비를 배치한 직후다. 애당초 공짜로 주겠다더니 물건을 넘기자 마자 돈 내라고 큰 소리 치는 셈이다. 당초 미군은 우리가 부지와 기반시설만 제공하면 사드의 운영·유지 비용은 자신들이 부담하겠다고 했다.

미국이 약속을 뒤집은 셈이다. 금융상품으로 치면 '불완전판매'에 해당한다. 불완전판매는 고객이 부담할 비용이나 위험 등에 대해 충분히 알리지 않고 상품을 파는 것을 말한다. 굳이 따지면 '사기'나 다름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많은 중소기업들을 도산 위기로 몰아넣은 키코(KIKO·녹인-녹아웃 통화옵션상품) 사태가 대표적인 은행의 불완전판매 사례다.

현행 SOFA(주한미군지위협정) 규정을 봐도 한국에 배치되는 모든 미군 전력의 운영·유지 비용은 미국 측이 내도록 돼 있다. 우리는 부지와 기반시설만 제공하면 된다. 따라서 SOFA를 개정하지 않는 한 미국이 우리 측에 사드 비용을 떠넘기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측에 사드 비용 부담을 요구하는 이유는 뭘까?

첫째, 미국내 지지율 관리를 위해서다. 허버트 맥마스터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30일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의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언급은 동맹국들의 비용 분담에 대한 미 국민들의 여망을 염두에 두고 일반적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국내 정치용 발언이라는 뜻이다.

둘째,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은 5년마다 체결된다. 다음 협정 체결 시점은 2019년이다. 협상은 내년부터 시작된다. 올해 우리가 내는 방위비 분담금은 9500억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사드 배치 등을 명분으로 1조원 이상의 대폭적인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집권 공화당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앤서니 킴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드 비용 분담 요구에 대해 "협상 차원의 즉흥적인 발언"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로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이라고 요약했다. '거래의 기술'은 트럼프 대통령이 사업가 시절 지은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상대방에게 강한 요구를 던져 놓고 협상을 시작하는 것을 '앵커링'(Anchoring·정박 또는 닻내림) 전략이라고 한다. 상대방의 무의식 속에 협상의 기준점을 미리 심어 협상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기술이다. 대형마트 등에서 가격표에 기본 가격을 적어 놓고 그 아래 할인 가격을 써붙이는 것도 일종의 '앵커링' 전략이다. 기준점을 높게 잡아놓은 뒤 그보다 낮은 할인 가격을 제시하면 고객 입장에선 상품을 싸게 살 수 있다고 인식해 더 강한 구매 욕구를 느끼게 된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방위비 분담금 협상 과정에서 인상액을 1조원의 절반인 5000억원으로 제시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정부가 원래 우려했던 것보다 유리한 조건이라고 보고 덥석 수용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앵커링 전략에 말려드는 셈이다. 5000억원은 1조원보단 적은 돈이지만 애당초 우리가 부담할 필요는 없었던 돈이다. 

우리는 미국을 동맹으로 대해왔는데 그들은 우리를 거래 상대로 본다면 우리 역시 그렇게 대해줄 수 밖에 없다. 그럼 우린 어떤 전략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전략에 맞서야 할까? 협상에서 상대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협상시 최고의 대안)를 확보하는 것이다. BATNA는 거래가 무산될 경우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대안을 말한다. BATNA가 있어야 협상 결렬의 위험을 감수하고 강한 요구를 할 수 있다.

예컨대 미국에게 사드 대신 이스라엘의 고고도 요격용 미사일 '애로우3'를 도입하겠다고 엄포를 놓을 수 있다. 사드 배치는 한미동맹 차원의 약속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먼저 사드 비용에 대한 약속을 어긴 건 미국이다. 애로우3 미사일의 성능은 사드와 큰 차이가 없지만, 비용은 사드의 절반도 안 된다. 또 X-밴드 레이더 대신 이미 우리 군에 배치된 그린파인 레이더를 활용하면 되기 때문에 중국을 자극할 이유도 없다.

모듀프 아키놀라(Modupe N. Akinola) 미국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교수는 "협상을 하기 전에 BATNA를 확보해두지 않는다면 양보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9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 협상꾼 트럼프를 상대로 배짱 있게 담판을 벌일 수 있는 대통령이 선출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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