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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 사상 처음으로 범죄 혐의 피의자로 입건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비선실세 문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데는 박 대통령 개인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정권유지와 이를 통한 사익추구에 매몰된 ‘선출되지 않은 권력들’ 청와대 비서실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 중에서도 검찰, 국정원 등 사정기관들을 총괄하는 민정수석실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며 정권의 방패막이 역할에만 충실했던 것이 이번 사태를 키운 요인으로 지목된다.

◆’민심’보단 ‘박심’에 올인한 민정수석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크게 ‘민정’과 ‘사정’ 두 가지로 나뉜다. 민정은 말 그대로 ‘민심을 살핀다’는 뜻이다. 국민들의 형편과 사정을 살펴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올바른 국정운영을 보좌하는 것이다. 또 하나 ‘사정’은 고위공직자의 비리나 검찰, 경찰 등 사정기관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역할이다. 특히 사정기관의 인사권까지 쥐고 있어 그 권한은 막강하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들어 검찰 출신들이 민정수석실의 수장인 민정수석을 독차지하면서 민정보다는 사정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실제 현 정부의 민정수석은 곽상도, 홍경식, 김영한, 우병우에 이어 현 최재경 민정수석까지 모두 검찰 출신이 도맡아 왔다. 특히 가장 오랜 기간 민정수석실에 몸담으며 ‘왕수석’으로 불렸던 우 전 민정수석 시절은 ‘신공안통치 시대’로 불릴 정도다.

검찰 출신들이 민정수석을 담당한 것은 MB정부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현 정부처럼 사정기관의 인사를 좌지우지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도는 아니었다는 게 정치권 설명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을 수사하다 혼외아들 논란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공안검사 출신인 김기춘 전 비서실장 산하의 민정수석실에서 채 전 총장의 혼외아들에 대한 개인정보를 조회한 것이 드러나면서 청와대가 채 전 총장을 찍어낸 것 아니냐는 의혹이 거세게 일었다. 정치권에서도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로부터 박 대통령을 보호하는 동시에 검찰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DJ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에 몸담았던 최경환 국민의당 의원은 “이번 비선실세 사태의 가장 큰 문제는 청와대 시스템의 파괴”라며 “그 중 하나가 과거 권위주의 시절처럼 검찰, 국정원 등 사정라인을 통해 국정이 비정상적으로 운영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권유지에만 '골몰'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 키워
비선실세 국정농단의 예고편이라 불리는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은 민정수석실이 누구를 위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2014년 한 언론에 의해 최씨의 전 남편인 정씨가 비선실세로 활동하고 있다는 내용의 문건이 공개되자 박 대통령은 이를 국기를 문란하게 하는 ‘지라시’로 규정했다. 사실상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

즉시 수사에 나선 검찰이 문건 내용이 아닌 유출 경위에만 초점을 맞춰 조사한 끝에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이었던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관천 전 경정을 기소하자 정치권에선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검찰이 사건을 은폐, 축소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당시 같이 기소된 한일 전 경위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정비서관실에서 문건을 유출했다고 진술하면 책임을 묻지 않을 수도 있다고 회유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민정비서관은 우 전 민정수석이었다. 그는 이 사건을 수습한 후 민정수석이 됐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이달 초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게이트 국민조사위원회에서 “검찰과 우 전 수석이 정윤회라는 비선 꼬리를 자르면서 오늘날 무소불위 최순실을 만들어준 것”이라며 “특검을 통해 검찰의 부실한 정윤회 문건 사건에 대해서도 명명백백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검찰 출신 민정수석 제한··국회 견제기능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정권과 검찰 등 사정기관간의 유착고리를 끊고, 민정수석실이 민심을 전달하는 창구로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검찰 출신 민정수석 선임을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용근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은 “과거에도 검찰 출신들이 민정수석에 있었던 시절에 친인척 비리나 청와대 공무원 부정행위 등을 더 제대로 통제한 것도 아니다”면서 "사정 업무를 위해 이를 잘 아는 검찰 출신을 민정수석으로 앉혀야 한다는 이야기는 잘못된 논리”라고 말했다. 또 “오히려 사정당국의 정보를 빼내고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사례가 많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검찰 출신 민정수석은 근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통령과 민정수석 등 청와대 비서실의 월권과 독주를 감시, 견제하기 하기 위해 국회의 권한을 키우고, 독립적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등을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회 한 관계자는 “국회가 민정수석의 청문회 증인 출석을 요구해도 무시하는 지금과 같은 구조로는 정부에 대한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며 “공수처 같은 자체 정화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국회의 권한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