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쉼터, 전기료 30만원…'할인' 있어도 못받았던 사연

[the300-국회사용 꿀팁(1)]위치 노출 우려, 신청 못해...국회 '민원' 끝에 한전 움직여 감면 현실화

편집자주나’로 시작해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나의 억울함만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나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다른 이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맨날 싸우기만 한다는 비난을 받는 국회가 어떤 일을 하고 우리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사례를 통해 소개합니다. 현직 배테랑 보좌관이 국회를 어떻게 활용해야하는지 '팁'을 알려드립니다. 윤재관 보좌관은 17년전 국회의원 인턴 생활을 시작으로 박병석 의원 비서관, 김영주 의원 보좌관을 거쳐 현재 장병완 의원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윤재관 보좌관
 
내가 가정폭력 쉼터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딸아이 덕분이었다. 2년 전, 동네 YWCA로 공부를 다니던 딸아이가 길에서 1만원 짜리 지폐를 주웠다. 그것을 선생님께 내밀며 좋은 일에 쓰고 싶다고 말했고 기특하게 여긴 선생님은 ‘쉼터’이야기를 들려주시며 그곳 아이들에게 빵을 사주자고 하셨다. 공개되면 안 되는 곳이라 아이는 자기가 고른 빵을 선생님을 통해 그곳에 전달했다. 이 모든 사실을 한참 뒤에 알게 된 나는 아빠로서 뭔가 보탬이 되고 싶어 후원을 시작했다. 

그렇게 쉼터와 인연을 맺은 후 종종 담당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가정폭력 문제와 피해자 쉼터에 대한 여러 사정을 알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박현숙 가정폭력 쉼터(꿈이있는집) 센터장님이 내게 이런 얘기를 털어놨다.

 “저희 쉼터는 사회복지시설이라 법적으로 전기세를 감면받을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감면 못 받아요. 법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이용을 할 수 없다고요. 왜 그런줄 아세요? 정말 답답해서 제가 속이 터집니다.”

사연은 이렇다. 쉼터로 쓰고 있는 아파트에 부과되는 전기료는 한 달에 30만원이 넘는다. 어른과 아이 9명이 살고 있고, 외부 침입에 대비해 상근 실무자 2명이 교대로 24시간 함께 지낸다. 그러니 11명. 그 인원이 한여름을 나느라 에어컨과 선풍기를 사용하다 보면 그 정도의 전기료가 나온다. 에어컨을 사용해야 하는 여름과 온열기를 사용하는 겨울이 전기가 가장 필요한 계절이다. 특히 가정은 누진제를 적용받기 때문에 이렇게 여러 명이 생활하는 가구에는 부담이 더 크다.

사회복지시설에서 운영하는 가정폭력 쉼터는 관련 법에 따라 전기료 20%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데는 안타까운 속사정이 있었다. 한전은 아파트 전기료 부과·징수 계약을 세대별로 하지 않고 아파트 전체와 한다. 그래서 쉼터가 아파트에 입주해 있을 경우 전기료 감면신청을 관리사무소를 통해서만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쉼터의 위치가 노출되고 같은 아파트 거주자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 위치가 드러나면 남편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쉼터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일부 이웃들과 갈등도 생긴다. 

실제로 경기도의 한 쉼터는 전기료 감면신청을 했다가 피해 여성 단기 쉼터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이웃 주민들의 항의 아닌 항의를 받아야만 했다. 그래서 많은 쉼터들이 전기료 감면신청을 하지 못한 채 눈물을 머금고 전기료 감면신청을 하지 못하고 비싼 전기료를 낼 수 밖에 없었다. 실질적 전기료 감면을 위한 제도 개선이 절실했다.
 
18일 오전 전남 나주시 한국전력공사에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의 한국전력공사, 한국전력거래소,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등 7개 기관 합동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2015.9.18/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또 상처를 받고 있었다. 그러면 이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까. 

 “한전에 직접 요청해보셨습니까?”
 “수도 없이 요구했죠. 답변은 항상 똑같습니다. 개별 신청은 안 된다는 거예요. 한전 뿐이 아니라 시청도 찾아가고, 여성가족부에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두 어렵다는 얘기만 반복합니다. 방법을 좀 고민해주고 아이디어라도 제시해주면 좋을텐데, 어쩜 그렇게 한결같이 안 된다는 말만 하는지 저희도 지쳤습니다.”
 
국민들이 관(官)을 상대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개선을 요구하면서 느끼는 답답함과 분노가 그분들의 목소리에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넘을 수 없을 만큼 높고 뚫을 수 없을 만큼 콘크리트같은 관의 모습에 그분들은 지치고 실망해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내가 직접 한전과 대화를 시도했다. ‘혜택을 볼 수도 없는데 감면제도가 있으면 뭐합니까?’ 이렇게 따지면서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 제도를 함께 바꿔보자고 설득했다. 늦은 봄에 시작한 나의 설득은 여름이 다 지나가는 데도 통하지 않았다. 나에게 돌아오는 답변도 늘 똑같았다. 화가 치밀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두터운 벽을 느꼈다. 국회에서 일하고 있는 내가 이런 답을 듣고 있는데 일반인들이 관을 상대할 때는 얼마나 막막하고 답답할지 새삼 실감하게 됐다.

협공을 해야겠다는 판단을 했다. 가정폭력 문제를 담당하는 여성가족부에도 더 깊은 관심을 촉구했다. 여가부에서 먼저 한전에 제도개선을 강력히 요청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국회에 있는 산업위 보좌관들, 여성가족위 보좌관들을 모두 만나서 자료를 전달하며 문제를 알렸다. 그렇게 국회 내에서 여러 동지들과 함께 한전을 설득해 나갔다. 국회에서는 법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정부기관에 대한 관리 감독의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기관이 운영하고 있는 제도를 바꾸라고 할 수 있다. 

국정감사를 앞두고는 관련 상임위의 여러 의원실에서 이 문제를 다루겠다고 했다. 특히 여성의원실에서 단단히 문제제기를 하려고 준비했고 이 사실을 한전도 알게 됐다. 한전을 담당하는 산업자원위원회 위원장실에도 이 문제를 알렸다. 위원장실에서도 공감하고 직접 한전 측에 제도개선을 요구해 줬다. 

그 해 11월, 드디어 한전이 움직였다. 한전은 쉼터에서 일단 전기료를 정상적으로 납부한 다음, 관리사무소를 통하지 않고 다시 돌려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쉼터를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제도의 혜택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5월에 문제제기를 해서 무더운 여름을 다시 힘들게 보낸 뒤 11월이 돼서야 상황이 끝났다. 수십 명의 사람들을 만나며 5개월 동안 노력해서 해결된 일이다. 안양YWCA 쉼터는 1년에 수백만 원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게 됐다. 후원금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엄청난 부담을 덜게 된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제도가 개선되면서 전국의 모든 쉼터가 혜택을 받게 됐다. 안양YWCA 담당자분들은 자신들로 인해서 다른 60여개 쉼터가 모두 혜택을 받았다는 데에서 더 큰 기쁨을 느꼈다. 

오랫동안 꿈쩍도 않던 철벽같던 한전이 태도를 바꾸고 문제가 해결된 것을 보면서 쉼터 관계자들이 나에게 한 말이 있다. 

 “정치가 중요하다는 생각, 이번에 처음 해봤어요. 정치하는 분이 가까이 있으니 좋네요. 이제 투표 꼭 해야겠어요, 일 잘할 사람 뽑을게요.”
 
<국회활용 꿀팁 1 >  관(官)에서 말이 통하지 않을 때 국회를 두드리자! 

지역의 문제는 대부분 지역자치단체나 관련 기관에 먼저 호소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그럴 때면 좌절하지 말고 국회의 문을 두드려 보라.

법과 제도는 현실을 뒤쫓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실행에 있어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허점을 보일 때도 있다. 또한 관은 현재의 법과 규정을 집행해야 할 기관이기 때문에 융통성 있는 집행을 주저할 수 있다.

반면 국회는 현실을 반영해 법을 바꾸고 필요하면 새로 만드는 곳이다. 또한 정부기관에 대한 관리 감독의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기관이 운영하고 있는 제도를 바꿀 수 있다. 

다른 정부기관들에 민원을 넣었을 때와 다른 점이라면, 다른 기관들이‘규정’을 먼저 따진다면 국회는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사람이 얼마나 억울한지, 이 사회가 얼마나 억울한지를 따져서, 필요하면 법을 바꿔서라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곳이다. 

국회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법을 개선해가는 곳이고, 그 법을 집행하는 곳이 정부부처다. 그러니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정해진 테두리를 지키는 것이 우선인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정부기관과 기존 제도의 불합리한 점을 찾아내 변경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국회가 본질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관에 호소했더니 법이나 규정상 어렵다고 한다’고 해서 그들만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면 억울함을 꾹꾹 눌러 참고만 있어야 할까? 아니다. 그럴 때는 국회를 찾아오라. 관에서 말이 안 통한다고 억울함을 쌓아두지 말고 국회 문을 두드려보라. 그런 국민들을 위해 국회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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