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지지자인 68세 은퇴 노동자 대니얼 존 쇼비스키는 트위터 계정이 두 개다. 하나는 직접 운영, 다른 하나는 자동으로 글을 올리는 이른바 '봇'이다. 그가 직접 쓰거나 트럼프를 리트윗하는 글은 오전 100개, 오후 100개 수준이다. 봇은 하루 1000건, 미리 작성된 트럼프 지지 트윗과 힐러리 비방 트윗을 주기적으로 트윗한다.…"

지난해 미국 대선 직후 '워싱턴 포스트'가 트럼프 지지자의 하루를 보도한 기사의 한 대목이다. ‘정치 팬덤’은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여론조사상 힐러리 클린턴에게 밀렸다. 그러나 실제 투표에선 승리했다. 숨은 표심, 이른바 '샤이 트럼프'의 존재 덕을 봤다.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8년, 2012년 대선에서 연거푸 정치팬덤의 존재를 세계에 각인시켰다. 머니투데이 더300(the300) 분석 결과 세계적 지도자들의 팬덤에는 후보 개인의 매력, 지지층의 특성, 트위터와 같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이용하는 '강력한 개인'의 등장이 공통요소였다. 이 요소들이 성공적으로 결합했을 때 팬덤은 폭발적인 힘을 발휘했다.

◇미국판 '손가혁'… ‘분노의 지지’ 끌어낸 트럼프 = 2016년 트럼프 팬덤에 대한 연구는 진행형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팬덤'이라 할 수조차 없다고 한다. '샤이 트럼프'는 정당(공화당)을 특별히 지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후보에 대한 열광도 겉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원금만 봐도 트럼프는 4억달러(약 4600억원)를 간신히 넘겼다. 힐러리 클린턴(7억달러‧약 8000억원)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왜 '샤이'할까. 트럼프를 좋아했다기보다 그의 현실 지적에 공감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일자리 부족, 소득 감소에 분노한 백인 노동자들은 '앵그리 화이트'가 됐고 자신과 일체화할 대상으로 트럼프를 골랐다. 트럼프의 '매력'은 결국 팍팍한 현실에서 나왔다. 정치팬덤 연구자인 송경재 경희대 교수는 "트럼프는 블루칼라 백인 노동자들의 소외를 파고들었다. 결국 현실에 대한 ‘반작용’이 트럼프 지지로 드러났다"고 했다.

일자리나 소득이 변변치 않은 이들은 후원금이 아닌 지지를 표할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트럼프의 팬들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워싱턴포스트가 소개한 존 쇼비스키도 그랬다. '자동 트윗 프로그램'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트윗봇도 막강했다. 지난해 10월 CNN머니 보도에 따르면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AmericaGreatAgain)와 같은 트럼프 지지 해시태그(#)를 분석한 결과 전체 트윗의 33% 가량은 봇이 쓴 걸로 추정됐다.

트럼프는 이걸 간파했다. 끊임없이 트위터에 앵그리 화이트의 분노를 자극할 메시지를 올리고, '교황이 트럼프 지지선언을 했다"와 같은 가짜뉴스(fake news)를 공급했다. 이런 소식은 자발적 트위터와 봇을 타고 빠르게 확산했다. 유권자의 현실 불만, SNS라는 '저비용' 신무기를 장착한 강력한 개인이 결합해 트럼프 팬덤을 만들었다. 정당의 힘은 예전만 못했다.

◇치밀한 팬덤 조직 오바마-'뇌섹남' 트뤼도 = 팬덤이 자발적이기만 해선 성공하기 어렵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온라인 팬덤을 적극적이고 치밀하게 조직했다. 오바마는 2007년 대선 출마 선언과 동시에 ‘마이오바마닷컴’(mybarackobama.com·마이보)을 열었다. 일방적 공지, 지지 호소의 글 일색이던 전통적 후보 웹사이트와 달랐다. ‘마이보’는 지지자들에게 놀잇감을 던져주고 이를 재가공, 확산시키는 ‘놀이터’를 지향했다. 이게 폭발적 흥행을 몰고 왔다. 오바마는 당시 매케인의 두 배가 넘는 7억8000만달러(약 9000억원)에 달하는 후원금을 모금했다. 백악관에도 입성했다. 미 정치평론가들은 "선거운동의 혁신"으로 이를 평가했다.

2012년 대선에서도 오바마 캠프는 온라인 팬덤을 앞장서 만들었다. "근거없는 소문과 공격에 대해 진실로 대응하고, (유권자들이) 이를 확산할 수 있도록 돕는다"며 '트루스팀'(Truth Team)을 모집했다. 여기에 무려 200만명이 가입했다. 이런 호응에는 물론 오바마가 매력적인 정치인이란 토대가 깔려 있다.

'캐나다의 오바마'로 불리는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팬덤도 개인의 매력이 핵심요소다. 트뤼도는 배우경력과 외모, 지적 능력, 스포츠맨, 특유의 친화력까지 갖춘 '엄친아'이자 '뇌섹남'이다.

◇‘좌표 찍고 폭격’ 난무…'위대한 개인' 되려면 = 한국의 정치 팬덤은 아직 초보단계다. 오바마의 ‘트루스팀’과 같은 조직에 비하면 조직 구성부터 외부로의 수평적 연계, 활동 내용 등이 미진하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는 ‘서울동부’, ‘서울남부’ 등 권역·지역별로 하위 조직을 만들어 ‘동원’하는 것에 집중했다는 평가다.

후보의 매력에 기반하는 팬덤의 열광적 지지도 부작용이 제기된다. 트럼프 팬덤도 그랬지만 한국 정치팬덤은 다른 후보에 대한 공격성, 사실이 아닌 페이크뉴스 확산이 부각되고 있다. 이런 상태면 정치발전도 먼 일이다. 송경재 교수는 "팬덤의 기능 중 하나가 후보에 대한 감시이지만, 한국의 경우 무작정 지지만 하는 경향이 관찰된다"고 지적했다.

바람직한 정치팬덤이라면 내부에서 후보의 공약과 실현가능성, 재원 마련 방안까지 공유하며 이걸 바탕으로 후보의 정책을 점검하는 토론이 벌어져야 한다. 그래야 지지자들에 의한 검증 효과라는 순기능이 발생한다. 바로 그 때 정치팬덤의 주역인 '강력한 개인'은 비로소 '위대한 개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