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언의 정치상식]기관장 전문성? 조직 장악력이 먼저

[the300][우리가 잘못 아는 정치상식 40가지](18)

편집자주"권력을 잡는 건 언제나 소수파다"? 돌직구, 전략가, 엔터테이너... 수많은 수식어처럼 존재감을 뽐내는 정두언 전 의원이 흔한 정치상식을 깨는 신선한 관점을 머니투데이 the300을 통해 전합니다.
18. 기관의 장은 전문성보다는 조직 장악력이 더 중요하다.

서울시 부시장은 세 명이다. 제1부시장은 일반행정, 제2부시장은 건설행정, 정무부시장은 대외관계를 맡는다. 나의 서울시 경험은 서울시 중구청에서 경험한 행정사무관 시보 생활 6개월이 전부다. 당연히 서울시 행정에 문외한이다. 그런데 내가 시장 다음의 최고위직(정무부시장)이 된 것이다. 막 부임했을 때 나이가 45세였다. 서울시에서 일하고 있는 내 또래의 고시동기들은 거의 다 과장급이었다. 부시장을 하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였다.

(※2002년 이명박 후보의 서울시장 선거를 도운 정두언은 그해 7월 이명박 서울시장 취임 후 정무부시장이 됐고 2003년까지 일했다.=편집자 주) 

그러다 보니 우스운 일도 많이 생겼다. 하루는 외부에서 누가 만나러 오기로 했다. 나도 처음 만나는 사람이었다. 부속실에서 대기 하고 있는 그를 안으로 모시라 했다. 나는 그를 맞이하기 위해 문 앞으로 나갔다. 그런데 그는 인사를 하는 나를 무시하고 더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당연히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뒤를 돌아보자, 할 수 없이 나는 '제가 정두언입니다'라고 얘기했다. 그럼에도 그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도저히 부시장이라고 믿기지 않는 기색이었다. 부시장을 하면서 그런 일을 자주 겪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해프닝에 불과한 것이고,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서울시 업무를 잘 모르다 보니 부시장 일을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았다. 예를 들면, 외부에서 각종 민원이나 제안 등이 많이 들어오는데, 해당 부서에 검토를 시키면 열이면 아홉은 어렵다, 안 된다, 곤란하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괜찮은 제안이고, 억울한 민원인데 다 문제가 있다고만 하니 업무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닌가. 도대체 되는 일은 없고 이러다가는 허수아비 부시장 하다가 나갈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정두언 전 의원(2010년 자료사진)/사진=뉴시스
그러다 고민 끝에 한 가지 꾀를 냈다. 시청에는 감사관실이 있는데, 감사관 밑에 감사과, 조사과, 민원과가 있다. 하루는 평소에 눈여겨 보았던 조사과장을 내 방으로 불렀다. 나는 그에게 그간의 나의 고민을 얘기하면서 부탁을 했다. 각 부서에서 내게 올라오는 보고서 중에 내가 의문을 품는 부분에 대한 진위를 별도로 확인해 달라고. 그는 흔쾌히 그러마고 답했다.

역시 그러고 나니 각 부서에서 올리는 보고중에 엉터리들이 꽤 많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알다시피 공무원들은 가급적 새로운 일을 하기 싫어하고, 복잡한 민원에 시달리기 싫어하는 속성이 있다. 이후부터는 내게 허위보고를 하는 경우 따끔하게 야단을 쳐서 돌려보내는 일이 가능해졌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시청내에서는 자연스레 소문이 났다. 정무부시장에게 엉터리 보고를 했다가는 금방 들통이 난다고. 나아가 그 후로 공무원들이 내게 보고를 할 때는 매우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또 이런 일이 있었다. 하루는 평소 가까운 후배가 내게 인사청탁을 해왔다. 고향 후배가 서기관 승진 대상인데 아주 훌륭한 공직자라며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럴 때 흔히 하는 대답대로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러다 마침 행정국장이 보고차 왔기에 '이런 친구가 있다는데, 평가가 어떤가'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주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그 친구는 근무평정도 1위고, 다면평가도 1위여서 승진 1순위입니다'라고. 

그래서 내가 그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아니, 부탁할 걸 해야지. 승진 1순위 짜리를 부탁하는 사람이 어디있냐. 그건 부탁도 아니다.' 그랬더니 그 후배 왈, '인사란 게 그렇게 공정하게만 이루어지면 왜 걱정을 하겠냐. 불공정한 일이 없도록 잘 챙겨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러고 나는 그 일을 잊었다.

하루는 퇴근을 하는데, 행정국장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부시장님, 죄송하게 됐습니다. 전에 말씀하신 그 친구가 승진에서 탈락했습니다!" 
"아니, 왜요? 1순위라더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담당 부시장께서 다른 사람을 강력히 미는 바람에 그리되었습니다." 
"아니, 무슨 인사를 그렇게 해요?" 

나는 버럭 화를 내고는 퇴근을 했다. 저녁 약속 자리에 가서 밥을 먹으면서도 나는 계속 입맛이 썼다. 그러다 귀가 길에 담당 부시장에게 전화를 해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 서울시 인사가 원래 이렇게 하는 거냐고. 그런 식으로 인사를 하면 누가 열심히 일을 하겠냐고. 

담당 부시장은 시장님 사인까지 끝났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다음 날 나는 부당한 인사에 항의하는 의미로 아침 간부회의에도 참석치 않았다. 그 때 행정국장이 다시 헐레벌떡 뛰어왔다. '담당 부시장과 상의 끝에 그 친구를 승진시키는 걸로 시장님께 다시 사인을 받았습니다.' 

의외로 이 일은 전 서울시청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정무부시장이 이미 다 끝이 난 인사를 뒤집어버렸다고. 본의 아니게 '정무부시장이 파워맨이다'라는 소문이 시청 전역으로 퍼졌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사례에 관한 얘기는 자랑삼아 한 게 아니다. 크든 작든 어느 조직의 리더는 전문성도 필요하지만, 조직 장악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시키고자 함이다. 우리가 보통 정부 인사를 보면 흔히 전문가들을 발탁하여 조직의 장으로 임명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런데 그가 전문성은 높다하더라도 조직 장악력이 거의 없다면? 그는 임기내내 자기 소신 한 번 제대로 못 펴보고 조직과 겉돌다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다행히 운이 좋아 이상과 같은 일을 겪으며 그나마 부시장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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