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노동개혁, 미래와의 상생 :노동시장 이중구조

[the300](종합)

추락한 통근버스엔 비정규직만이…韓 노동시장 자화상

31일 오후 6시께 경남 거제시 사등면 사곡리의 한 도로를 달리던 통근버스가 굴다리에서 5m 아래로 추락했다. 당시 통근버스에는 거제 대우조선해양 근로자들이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다.(경남소방본부 제공) 2015.7.3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노동유연성' '임금피크' 강조, 노동계 공감 못 얻어

-기업-가계 소득 선순환 진정성 인식시켜야

-'직무기반 임금체계'등 비정규직 배려 중요 

 

지난달 31일 퇴근길, 거제시 한 국도에서 추락·전복된 대우조선해양 통근버스 탑승자는 2명을 제외한 59명이 비정규직 사내하청 근로자였다. 사고로 숨진 2명과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한 인력 대부분도 비정규직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마침 정규직 노동자 상당수는 2주간의 휴가를 받고 출근을 안한 경우가 많아 큰 사고를 모면할 수 있었다.

박점규 장그래살리기 운동본부 대변인은 "연봉 7000만원을 받는 정규직이 휴가를 떠난 사이, 이들 급여의 절반만 받는 비정규직은 휴가없이 일을 하다가 변을 당했다"며 "대한민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정부와 청와대는 '정규직 대 비정규직', '원청 대 하청', '대기업 대 중소기업'으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강한 의욕을 내비쳤지만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노총을 포함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정년연장,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범위확대 등에 기본적인 합의를 도출해낼 때만 해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해고요건 완화와 취업규칙 변경에 노동계가 반발하면서 기본 합의도 무용지물이 됐다.

노사정이 해법을 찾지 못하는 사이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더욱 공고해졌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정규직 시간당 임금인상률은 5.1% 인상된 반면 비정규직은1.8% 상승하는데 그쳐 격차를 넓혔다.

특히 비정규직 중 단기간근로자를 제외한 파견, 용역, 기간제, 일일근로자의 임금이 모두 낮아져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를 늘리는 데 영향을 끼쳤다.

대기업들은 '하청기업'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노동비용을 줄여나갔다. 고용노동부 '고용형태공시'에 따르면 10대 대기업의 하청업체 비정규직 비율은 30.7%를 기록, 전년대비 1%포인트 늘어났다. 전체기업이 평균 0.1%포인트 오른 것에 비하면 10배나 많은 수치다.

하청 노동자는 직접고용에 비해 52%의 임금만을 지급한다. 임금 부담을 낮추려는 기업 입장에선 최선의 선택인 셈이다. 하청은 재하청, 재재하청으로 이어져 원·하청의 불평등 문제를 증폭시키고 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롯데호텔의 청소노동자는 정규직이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내쫓기고, 지금은 빈 자리를 아웃소싱 업체가 대신하고 있다"며 "예전에 호텔 룸메이드에게 100만원을 줬다면 지금은 45만~50만원만 주고 고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와 정부의 인식은 여전히 현실과 거리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6일 대국민 담화에서 고용유연성을 앞세워 일반해고와 임금피크제 추진을 강조했다. 손쉬운 해고와 기득권 양보를 통해 미래세대에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것을 '선순위'로 내세운 셈인데 노동계가 반발하는 지점도 이곳이다.


강훈중 한국노총 대변인은 "노동계는 이미 임금피크제를 자율적으로 시행 중이다. 반면 기재부나 노동부는 이런 고통분담을 한 적이 있느냐"며 "제도가 조직의 성과를 향상시킨다고 주장하려면 공무원은 연금제나 휴무만 챙길 게 아니라 이런 제도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항변했다.

극대의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경기 상황에 따라 인력구성을 재편하는 것이 잘못된 얘기는 아니지만, 이를 비정규직 노동자로 채워 입맛에 맞게 쓰고 해고하는 것이 우리 기업을 건강하게 만드는 지는 의문스럽다는 평가도 나온다. 때문에 정부와 대기업이 노동자들을 향해 보다 적극적인 배려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제기된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는 기업 소득 증대가 가계 소득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의 만들겠다는 의도의 진정성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며 "먼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거나 최저임금인상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한지붕 이중구조'부터 해결하는 것이 노동시장의 구조개혁의 시작이라고 꼬집었다.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동일한 근무를 하는 직원이 원청과 하청에 따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따라 임금격차가 과도하게 나서는 안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유럽은 동일 노동에 따른 임금격차를 20% 이내로 노사단협이나 법률에서 정하고 있다"며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데 있는게 아니라 직무에 기반한 임금체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韓 노동시장, 이미 '계급화' 단계…상·하위 소득격차 4.5배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10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기자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임금피크제 등 노동시장 개혁 현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2015.08.10/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의 노동시장 이중구조(양극화)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다. 2000년대 들어 줄어들던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는 2009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커졌다. 하지만 양극화의 독버섯은 이미 경제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그 씨앗을 은밀히 키워 왔다.

10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국내 근로자들 중 임금 기준 상위 10분위와 하위 10분위의 소득 격차는 무려 4.5배까지 벌어졌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중에서도 격차 면에서 최상위권이다. '노동귀족' 소리를 듣는 국내 완성차업체 근로자들의 임금은 1인당 GNI(국민총소득)의 3.4배다. 이웃 일본의 경우 2배 수준에 그친다. 선진국과 비교해도 소득의 양극화가 상대적으로 극심한 수준에 다다랐다는 의미다. 


양극화는 결국 노동시장의 계급화를 불러온다.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들은 직접고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하도급을 최대한 활용해왔다. 그나마 직접고용을 하더라도 비정규직 채용을 선호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고용노동부 집계 결과 2013~2014년 기준 대기업 정규직 임금을 100으로 볼 때 중소기업 비정규직 임금은 36.7%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비정규직 숫자는 지난 2008년 544만5000명에서 매년 꾸준히 늘어나 지난해 처음으로 600만명을 돌파, 607만7000명을 기록했다. 정부가 앞장서서 줄이겠다고 하지만 비정규직 비율도 30%선 위에서 요지부동이다. OECD 가입국의 평균 비정규직 비율이 11.8%(2013년 기준)에 불과하다는 점은 한국 고용시장의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잘 보여준다.

문제는 이 추세가 지속적으로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대기업의 고착화된 연공서열이 일등공신이다. 여전히 호봉제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대기업 근로자들의 임금은 중견중소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파르게 올라간다. 대기업에서 1억원의 연봉을 받으면 5%만 올려도 500만원이 오르지만 중소기업 연봉 2500만원에서 500만원을 올리기 위해서는 20%나 연봉을 올려야 하는 식이다.

어느 정도의 격차는 동기부여가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이중구조는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섰다. 동기부여의 구간이 지나면 좌절의 구간이 온다. 그 다음에는 생계가 어려워지는 구간이 온다. 결말은 노동시장의 붕괴다. 이지만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임금격차 문제는 이미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시점에 접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격차가 커지면서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갈 수 있는 사다리도, 디딤돌도 사라진 상태라는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는 노동시장 계급화가 사실은 세대 간 갈등의 뇌관이라는 점에서 우려는 더 커진다. 안정된 일자리를 갖고 있으며, 자녀양육을 위해 이를 포기할 수 없는 기성세대와 인턴을 전전하는 청년세대의 가치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기대수명이 60대인 시절에 만든 연금제도 때문에 100살 노인까지 부양해야 하는 것이 지금의 청년층"이라며 "양극화는 심각한 세대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던 정부는 청년고용 절벽이 가시권에 들어오자 부랴부랴 고용유연성 확보를 핵심으로 한 노동시장 개혁안을 내놨다. 우선 업무능력과 성과를 기준으로 해고규정을 정비하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확보된 재원으로 청년인력을 고용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논의는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한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반보를 내딛기도 힘든 상황이다. "정규직 고용을 불안하게 하는 개혁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노동계의 입장인데, 이는 정규직들의 입장에 다름 아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임금 격차는 앞으로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며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이는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 및 공기업의 임금체계를 바꾸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국회가 해법 찾으려면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박근혜 대통령이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국회의 역할이 주목된다. '공무원연금 개혁' 숙제를 끝낸 정부여당이 여세를 '노동개혁'까지 이어가려 하고 있지만 정부 바람대로 개혁이 성공할지에는 의문부호가 뒤따른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새누리당은 노동부 장관을 지낸 이인제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당내 '노동시장선진화 특별위원회'를 꾸리며 정부와 노동개혁 공조에 나섰고, 새정치민주연합은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출신의 추미애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청년 일자리 창출 및 노동·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특별위원회(가칭)'를 꾸려 맞불을 놨다.

여야 모두 노동개혁에 당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치권을 바라보는 노동계와 재계의 기대는 높지 않다. 정치권의 논의가 성과 없이 '말의 성찬'으로 그치는 것 아니냔 우려 때문이다.

여야는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본격적으로 들고 나온 지난해 말 이후에도 노동개혁에 그리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노동문제를 담당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을 제외하면 여야 지도부와 정책위원회의 우선 순위에 노동개혁은 빠져있었다.

여당으로선 김무성 대표의 말대로 '표 떨어지는' 논의에 앞장서는 게 껄끄러웠고, 야당으로선 정부 정책 기조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굳이 '논의 테이블'에 앉아 정부에 힘을 실어줄 이유가 없었다. 여야 모두 국회 밖의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 논의를 지켜보자며 노동개혁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결국 노사정위 합의는 결렬됐다. 노동계가 지난 4월8일 노사정위 최종 합의 결렬을 선언한 것이다. 노사정위는 당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과 관련 △협력업체 근로자 근로조건 향상 지원시 정부 세제 지원 △상시·지속 업무 종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인건비 절감만을 이유로 한 비정규직 남용 제한 등에 대해 공감대를 확인했지만 합의가 최종 결렬되면서 이들 논의도 물거품이 됐다.

당시 노동계는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및 파견대상 업무 확대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단계적 시행 및 특별추가 연장 △정년 연장 및 임금피크제 의무화 △임금체계 개편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를 '5대 수용불가' 사항으로 천명했다.

5대 수용불가 사항 중에서도 최대 쟁점은 '일반해고 가이드라인'이었다.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의 핵심으로 꼽고 있는 부분이다. 정부는 정규직의 과보호로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다고 보고, 행정지침(가이드라인)을 통해 업무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 요건을 명확하게 해 기업의 고용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노동계와 야당은 '쉬운 해고'를 조장하고, 사측의 해고 권한만 강화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한다. 또 정부가 추진 중인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2년→4년) 역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맞선다.

이와 관련,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를 금지하는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행정독재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일반해고는 법리적 해석으로 그 정당성이 판단돼 왔는데, 행정지침으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라며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에서 행정지침으로 (일반해고에) 접근하는 방식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은 노동개혁을 논의할 기구를 두고 기싸움을 하고 있다. 정치권이 의미없는 정쟁만 반복하고 있단 비판이 나온다. 여당이 주장하는 노사정위원회뿐 아니라 야당이 주장하는 국회 대타협기구 역시 이미 '실패'를 경험한 안이기 때문이다.


앞서 환노위는 19대 국회 전반기 당시 통상임금·근로시간 단축·정리해고 요건 강화를 놓고 국회 차원의 대타협을 모색한 바 있다. 당시 국회는 이해관계자인 노동계와 재계, 정부가 한 자리에 모인 '노사정 사회적 논의 촉진을 위한 소위원회'를 구성해 두 달여간 논의를 이어갔지만 합의물은 없었고, 이후 국회 차원의 노동문제 해결 논의는 자취를 감췄다.

국회 관계자는 "노동개혁 문제가 돌고 돌아 정치권으로 다시 왔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며 "논의테이블을 어디로 하느냐가 아니라, 여야를 비롯한 정부와 노동계, 재계가 노동개혁을 이루겠단 의지가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의 논의는 일부 전문가와 노사정 상층부 위주로 전개됐다"며 "비정규직과 청년 층 등의 의사를 반영하는 사회적 공론화를 통한 대타협이 이뤄질 수 있도록 충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600만 비정규직 뿌리는…문재인 "부끄러운 심정" 왜?


우리사회 비정규직 근로자는 지난해 처음으로 60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노동력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비율이 고용불안을 겪고 있는 것인데, 비정규직 중에서도 시간제·파견근로 등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고용형태는 확대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씨앗을 뿌리고 키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김대중·노무현 정권이었다. 야권 입장에서 보는 '민주정부' 10년 최대의 패착이자 뼈아픈 대목이다. 그 배경이 된 IMF 외환위기는 김영삼 정권이 초래했고, 대-중소기업 차별성장의 토대는 박정희 정권이 제공했으니 비정규직은 역대 정권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하는 셈이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YS - 정리해고 요건 완화
비정규직은 90년대 중반 '세계화 물결'을 타고 태동했다. 문민정부가 당시 내놓은 '신경제 및 신노사관계구상'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매뉴얼과도 같았다.

정리해고 요건 완화를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1996년 12월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국회의원들에 의해 국회를 통과했다.

구체적 정리해고의 사유는 '계속되는 경영 악화와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구조조정 등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을 때"로 규정됐다. 파업 때 외부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는 대체근로제가 도입됐고, 파업기간 중 새로운 하도급 생산도 가능하게 됐다.

◇DJ - 정리해고제 도입 파견근로자 도입
김대중 정부는 '노동개혁'을 내세워 비정규직 법제화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외환위기가 터진 이후 대법원 판례에 따른 마구잡이식 정리해고가 이미 진행 중이었다. 실업자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노동계는 정리해고 법제화에 합의했다.

1998년 2월 법제화된 근로기준법, 일명 '정리해고법'은 이전 정권의 노동 유연화 기조를 구체화했다. 현행 근로기준법 24조1항의 토대도 이 때 만들어졌다. '경영상의 이유에 의한 고용조정'은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으로 변경됐다. 해고사유도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서 '경영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사업의 양도·인수·합병의 경우'로 수정됐다.

문민정부때 노동계의 강력 반발로 유예됐던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파견법)'도 98년 제정됐다. 파견근로는 인력파견업체가 소속 노동자를 다른 회사에 보내 그 회사의 지휘와 명령 아래 근무토록 하는 것이다.

DJ는 당시 비정규직이 겪는 고용불안에 대해 "이것은 한시적인 것이다. 힘든 상황을 벗어나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라며 국민을 독려했다.

◇노무현 - 기간제 2년이면 정규직 전환?
참여정부는 '제자리로 돌리려는' 노력보다 이전 정부의 노동 유연화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힘을 썼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법(기간제)' 제정을 통해 비정규직을 '기간제'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기간제법은 비정규직 근로자가 2년 이상 일하면 사용주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규정했다. 함께 국회를 통과한 파견법 개정은 파견근로자 사용주의 고용의무 명시했다. 파견업종도 늘렸다.

노동계는 기간제법이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파견근로를 확대하는 법이라며 반발했다. 실제로 2년간 일하면 정규직 전환이 가능해진 규정으로 인해, 사용주는 2년 내 언제든지 비정규직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게 됐다.

이 법 제정에 따라 실제로 발생한 비정규직 해고 사태는 영화 '카트'로도 만들어졌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지난해 말 카트를 본 뒤 "정말 미안한 마음으로 봤다. 이 자리에 선 것도 부끄러운 심정"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MB - 기간제 연장 시도
MB는 10년 간 단단하게 굳어진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그대로 승계했다. 기간제법에 따른 해고 문제를 막기 위해 비정규직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개정안을 내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 정책은 '100만 해고설' 논란을 부르며 소득 없이 끝났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꺼내든 '일자리나누기', 이른바 '잡셰어링'은 청년인턴, 시간제 근로자, 희망근로 등 간접고용을 더 늘렸다. 비정규직 내 고용구조는 더 악화하고 있고 비정규직에 대한 임금차별과 사회적 배제는 지속되고 있다.


獨 '하르츠 개혁'…韓 '노동개혁' 모델 될까?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독일은 1990년대 높은 실업률과 낮은 경제성장, 높은 복지비용이라는 삼중고 때문에 유럽의 병자로 불렸지만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유럽의 중심국가로 부활했다."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노동시장개혁의 당위성을 역설하고자 독일의 강력한 정부주도 노동정책인 '하르츠 개혁'을 언급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와 집권 여당 관계자들도 최근 들어 '하르츠 개혁'을 국내 노동시장 개혁의 모델로 언급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유럽의 병자' 獨…'하르츠 개혁'으로 대수술

유럽대표 선진국인 독일의 1990년부터 2000년대를 전후한 시기는 우리가 흔히 아는 과거의 '서독'과도, 유럽 경제 선진국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독일'과도 다른 모습이었다.

1990년 갑작스런 통일 후유증으로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인근 국가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고, 실업률은 매년 두 자릿수에 가까웠다. 급기야 유럽 경제전문매체인 '이코노미스트'는 독일을 '유럽의 병자'로까지 지칭했다.

병자를 고치기 위해 대대적인 수술에 들어간 독일은 2003년 슈뢰더 총리 주도로 노동시장개혁 청사진인 '아젠다2010'을 발표했다. 자동차 제조사인 폭스바겐 노무관리이사 '페터 하르츠'를 위원장으로 하는 노동시장현대화위원회를 통해 단계별로 노동시장을 변화시켰다.

개혁 책임자의 이름을 붙여 명명된 '하르츠 개혁'은 전일제 근로가 당연하게 여겨지던 당시 독일 고용환경에서 '미니잡·미디잡'으로 불리는 시간제 일자리를 대대적으로 허용하는 계기가 됐다. 


실업급여 지급 기간을 32개월에서 12개월로 단축해 장기적으로 실업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는데도 역점을 뒀다.

실업자들은 직업알선센터가 제안하는 취업자리 수락과 고용훈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고 취업제의를 계속 거절하면 실업급여가 전액 삭감되도록 하는 방안도 하르츠 개혁으로 탄생했다.

고용 유연성을 강화하고, 보다 유연해진 노동시장으로 실업자들이 뛰어들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마련한 것이 하르츠 개혁의 핵심이었다.

◇'하르츠 개혁' 오늘날 獨 경쟁력…노동자 삶 현저히 낮췄다는 불만도

하르츠 개혁이 독일에 가져온 가시적 성과는 놀라웠다. 한 때 12%가까이 치솟았던 실업률은 올해 2월 4.8%까지 떨어졌다. 재정부담이 컸던 실업급여는 실업률 감소로 점차 개선됐다.

시간제 일자리가 늘어 단위노동비용이 절감됐고 곧바로 제조업 경쟁력이 강화돼 수출이 증가됐다. 경상수지도 적자에서 대규모 흑자로 전환됐다. 부동산 가격 및 가계 부채의 증가폭도 주변국에 비해 현저히 낮아져 경제 전반이 안정됐다.

이 같은 안정된 경제 상황을 바탕으로 독일은 2007~2009년 금융위기에서 흔들림이 없었다. 현재는 '유로존'의 실질적인 리더 역할이기도 하다. 노동시장을 포함한 광범위한 국가적 구조개혁이 오늘날 독일의 경쟁력이 된 셈.

그러나 '하르츠 개혁'에 의한 시간제 일자리의 증가는 '나쁜 일자리'를 확산시켰고 독일의 실질임금상승률의 증가를 억제한 요인이 됐다는 비판도 받는다. 

소위 '미니잡'이 독일 노동자 삶의 질을 현저하게 떨어트렸다는 불만은 최근 독일 정부가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제 도입, 파견 근로자 규제 강화 등의 법 개정을 진행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하르츠 개혁' 우리아 안 맞는다"VS"개혁 기조는 맞는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독일과 우리의 상황이 다른 만큼 '하르츠 개혁'을 우리 정부의 노동시장개혁 '청사진'에 적용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시장을 유연화 했다고 하지만 독일은 2013년 기준으로 OECD국가 중 고용보호지수가 여전히 가장 높은 나라다. '하르츠 개혁'은 고용 보호가 잘 된 상태에서 부분적으로 그 유연성을 강화한 수준"이라며 "우리는 고용보장 수준이 낮은 상태에서 더 유연화 하려는 움직임이라 전혀 다른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동 전문가는 "하르츠 개혁 당시 독일은 고용과 복지 수준이 너무 탄탄해 혈액을 공급하고자 대놓고 나쁜 일자리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구조"였다며 "우리는 이미 만연해 있는 나쁜 일자리를 노동시장개혁으로 더 도입하자는 것이라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 독일과 현재 우리의 노동시장 환경이 맞지 않다고 해도 노동시장 유연화 등  '하르츠 개혁' 기조 자체를 외면할 수는 없다는 견해도 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하르츠 개혁'은 강력한 정부주도였고 상당히 많은 반발과 국민의 고통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노동시장개혁이 가야할 방향과 상당히 유사하다"며 "일자리 다원화라는 글로벌 흐름을 막을 수 없다면 세부 내용은 달라도 '하르츠 개혁'의 기조는 우리와 동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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