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이 2010년 여름부터 한 달에 두 차례 열어온 '민원의 날'이 10일로 100회째를 맞았다. 민원과 고충을 듣는 일이야 국회의원들이 늘 하는 일이고 이런 류의 행사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일단 시작한 뒤 빼먹지 않고 만 4년3개월을 이어온 것은 아주 드물다. 당 지도부가 현장을 찾아 전국으로 확대시켜야겠다고 그를 치켜세웠다. 

10일 오전 서울 신월동 농협 사거리.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강서농협 양천지점 3층으로 올라섰다. 저마다 사연을 안고 찾아온 민원인과, 이들을 상대할 김 의원, 의원 보좌진, 양천구의 구의원들, 자원봉사자들이 뒤섞여 북새통이었다.

김 의원이 푸른 와이셔츠 차림으로 7개의 테이블 사이를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한 노인에게는 "어머님, 그게 그런 게 아녀요" 하고 설명이 이어졌다. 익숙한 얼굴이 들어서자 이내 알아보더니 "오랜만에 오셨네. 얼굴 좋아지셨어"하고 인사를 건넸다.

처음 온 민원인은 김 의원 또는 보좌진과 마주앉아 사연을 말한다. 상담자는 내용을 서류에 적고 도와줄 방법을 찾는다. 울먹이는 민원인도 흔하다. 먹고살 방법이 막막한데 병까지 얻었고 월세는 밀렸다. 20년전 행방물명된 남편이 법적으로 남편이어서 수급자 순위에서도 손해다.

이런 경우 시청이나 구청에 민원이 필요하면 김 의원이 직접 펜을 들기도 한다. 법정소송이 필요하면 변호사 자격이 있는 비서관이 관련절차를 돕는다. 이렇게 역할을 나누고 나면 김 의원은 다음 테이블로 옮겨간다. 더 딱한 사정이 펼쳐진다.

이런 일을 아침 8시경부터 짧게는 오후 5시, 길면 6시까지 반복한다. 점심시간은 1시간도 안 된다. '발에 땀 나게'란 상투어는 김 의원 사무실에선 눈앞의 현실이다.

그래도 해야 하는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은 서울에서 크게 졌다. 특히 김 의원 지역구에선 구청장, 시의원(2명)이 모두 낙선했다. 김 의원은 정치적으로 고립됐다. 할 수 있는 일이 없겠다 싶어 좌절했다고 털어놨다.

양천구 신월동·신정동은 예부터 새정치연합(민주당)의 텃밭이다. 예산 따내고 공약을 잘 이행해도 재선이 불확실한데 이런 고립감은 숨막히는 일이었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았다. 주민 100명을 만났다. 여론은 악수하고 인사나 하지 말고 구체적인 삶을 챙겨달라는 것이었다. 주변에서 '괜한 일 벌이는 것 아닌가'하고 주저하는 사이 디데이(7월31일)는 다가왔다. 이렇게 열린 첫 민원의 날에 주민들이 몰리면서 성황을 이룬다.

◇절박감에서 시작…이젠 의원들이 '벤치마킹'

그사이 적잖은 주민들과 만났다. 한 번에 평균 40건 민원이 접수되니 총 4000여건에 이른다. 인원수로는 80~100명씩 100회니 적게 잡아도 8000명이다.

점심시간 짬을 낸 김 의원과 순대국을 함께 먹었다. 그는 현장에 발 붙이지 않는 정책은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민원의 날은 제겐 곧 학교라는 답도 이어졌다. 김 의원이 민원의 날에서 듣고 공감했던 일들은 보이스피싱 처벌, 보험 과장광고 규제, 국가유공자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이른바 '팩트(fact) 정치'다.

행사장에서 사진 찍고, 악수하고, 테이블 돌면서 소주 한 잔씩 받아 마시는 것. 국회의원 다수가 여전히 그런 것을 지역구 관리라고 여긴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데 끄떡 없었다'는 식의 무용담도 쌓인다. 김 의원은 이런 상식을 보기좋게 깼다. 대신 민생 속으로 들어갔다. 불가능한 걸 아는 민원도 우악스럽단 소리를 들으며 부딪쳐 봤다. 소문은 동네 담장을 넘어 국회까지 퍼졌다. 그의 '민원의 날'을 참고하는 의원이 늘고 있다.

이처럼 성과는 분명하지만 숙제도 있다. 이 민원을 들어주면 저 주민이 손해를 보는 상충민원은 어쩔 것인가. 과연 민원해결이 모든 사람에게 혜택으로 돌아오는가. 이런 경우 중심을 잡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 김 의원이 갈 길은 아직 멀다. 그도 이걸 안다.

제 잇속으로 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잇속으로 대들더라도 진심으로 노력하면 그 일에 몸과 마음이 동화됐다. 그러면 놀라운 성과도 나타난다. 민원의 날과 저의 재선이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김용태 의원 에세이 '팩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