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개헌하고 있나요?" = A씨는 30대 공익법무관이다. 그는 "인터뷰를 하기 전까지는 개헌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A씨는 "내가 모른다면 홍보와 정보공유가 원활하지 않다고 판단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30대 여성 대학원생 B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신문기사를 잘 챙겨보는 편인데도 개헌이라는게 언론을 통해 비중있게 다뤄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40대들의 지적은 더 구체적이었다. 벤처기업 대표 F씨는 "정치인들이 자기들끼리만 논의하고 토론하는데다, 참여한다는 시민단체들도 도대체 누굴 위한 단체들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의 개헌논의를 보고 있자면 그 옛날 조선시대에 '백성이 글을 알면 참혹한 세상이 올까 두렵다'고 주장하는 무리들을 보는 느낌"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투표권을 가진 세대별로 맞춤형으로 개헌에 대한 진정한 계몽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30대 교육사업 종사자 E씨의 해석도 같았다. 그는 "국민들의 신뢰조차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국회가 '개헌'을 논의한다는 얘기를 듣는다면 '또 자기들 밥그릇 챙길 궁리를 하고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때 보여줬던 '광화문1번가'처럼 모바일을 통해 국민들이 개헌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하면 소통의 길이 열리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무역회사에서 일하는 40대 G씨 역시 "그들만의 리그 같다"고 비판했다.

20대 청춘들도 개헌 정보에 갈증을 느낀다. 정치동아리 활동을 하는 대학생 장성진(서울대 외교학)씨는 "대통령과 국회의 권력구조 분산, 중앙과 지역 권력 분산에 대한 대략적인 방향만 잡은 것으로 보일 뿐 아직 하나의 통일된 안은 나오지 않은 것 같다"며 "대부분 국민들이 개헌 논의 진행 과정이나 방향에 대해 정보를 잘 얻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역시 정치동아리에 몸담고 있는 조성연(연세대 경영학)씨는 "각계각층의 논의가 골고루 반영되지 않는다면 개헌은 시민들의 생활을 새로 조형하는 기획이 아니라 엘리트들 간 투쟁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며 "개헌이 시민들의 생활과 동떨어져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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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주최 ‘촛불 승리! 제20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촛불파도타기를 하고 있다. 2017.3.1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촛불 거치고 나니 이제 헌법 느낀다" = 개헌논의에 대한 갈증이 큰 이유는 시민들이 한 차례 온 몸으로 헌법을 느꼈기 때문이다. 바로 촛불이다.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B씨는 "국정농단 사태가 있기 전까지는 일상에서 헌법의 존재를 체감해 본 적이 없다"며 "촛불시위에 참여하면서 국민의 힘으로 나라를 바꾸고 우리 기본권을 지켰다는 생각에 헌법의 존재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보수성향인 F 대표 역시 "촛불집회를 통해 민심이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고 우리 국민들이 간접적인 헌법 체험을 했다"고 말했다.

20대의 시각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생 장 씨는 "탄핵 절차를 보며 헌법적 가치가 위협받을 때 최고법인 헌법이 어떻게 이를 보호하는지를 목격했다"며 "국민의 헌법정신이 발현된 역사적 사건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조 씨는 "한 나라 인구의 1/3이 시위에 나섰는데 이렇게 평화롭고 순조롭게 정치적 문제가 해결된 사례가 또 있겠느냐"고 말했다.

탄핵 외에 생활에서 헌법을 체감했던 시점을 묻는 질문에는 다양한 답이 쏟아져 나왔다. 30대 광고업 종사자 D씨는 "한때 반려견과 함께했던 사람으로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동물 학대를 자행하는데도 관련 법규가 없어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며 너무나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며 "학대를 당하거나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을 보며 헌법에 기본권을 담아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고 말했다.

G씨는 "2년 전 우리나라 사병 두 명이 북한이 설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목함지뢰에 발목을 절단당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러고도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한 이유가 헌법의 형식을 취한 불법인 '헌법적 불법'(verfassungsrechtliche Unrecht)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군인 등이 직무 수행 과정에서 손해를 입어도 국가에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건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30대 참석자들은 조속한 헌법개정을 강조했다. E씨는 "헌법의 존재가 무시되는 경험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얘깃거리를 찾기가 더 쉬웠을 것"이라며 "일상적으로 그 가치가 훼손되는 헌법이라면 조속한 개정이 빨리 뒤따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A씨는 "미국의 대선을 보며, 특히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연임을 보면서 우리 헌법의 개정 필요성을 느꼈다"며 "5년 단임으로 규정돼 있는 헌법 때문에 대통령이 장기적인 정책을 펼칠수도, 국민으로서는 재신임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새 시대 연다는 생각으로 개헌해야" = 역사로 개헌을 접한 20~40대지만 개헌에 대한 고민은 결코 얕지 않다. 30대 대학원생 B씨는 "개헌이라면 나라의 근간을 다시 세운다는 느낌이 든다"며 "하나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 시대를 연다는 생각으로 개헌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헌에 임하는 정치권과 이를 감시하고 다듬어야 할 국민들이 모두 명심해야 할 요소다.

개헌의 방향이 국민을 향해야 한다는 당부도 재차 나왔다. 30대 협회 직원 C씨는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헌법개정을 통해 대통령의 자격을 수정해 정권을 잡는 등 부정적인 사례가 많았다"며 "지금 정부가 하는 개헌이 정말 국민을 위한 개헌인지 꼼꼼하게 따지는 시간을 갖고 개헌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D씨 역시 "국민의 피부와 생활에 직접적으로 와닿는 개헌안을 국회에서 만들어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중한 접근을 당부하는 목소리는 20대에서도 나왔다. 대학생 장 씨는 "한 번 바꾸면 다시 고치기 어려운 헌법의 특성 상 개헌은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권력자들의 욕구에 따라 이뤄지는 개헌, 개헌을 위한 개헌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조 씨의 당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대통령권력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개헌이 아니라 '다양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시민들의 의견을 대표하는 개헌으로 이어갈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