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있습니다. 1987년 6월항쟁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맥을 잇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서-

1987년 광장에서 6월 항쟁과 직선제 개헌을 이끌었던 주역들은 30년 뒤 정치권으로 들어왔다. 학생이던 이들은 국회의원·청와대 수석이 됐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들은 당청의 핵심 요직을 차지했고 국정운영의 최전방을 맡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 주역들을 86그룹으로 부른다.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을 축약한 말이다.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 정치권에 대거 입성한 이들은 현재 정계를 주도하고 있다. 당장 문재인 대통령부터 87년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 부산 상임집행위원을 맡으면서 86그룹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80년 5·18 민주화운동, 87년 6월 항쟁 등 86그룹의 민주화 운동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한때 86그룹은 한때 민주당의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었다. 빛나던 학생운동 시대와 달리 정치권에선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하면서 무능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구태 기득권으로 변질됐다는 비판도 있었다. 일부 보수세력은 86그룹의 운동권 경력을 '새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꼬리표'로 취급했다.

분위기는 2016년 4·13총선 이후로 급반전됐다. 86그룹이 줄줄이 원내 재진입에 성공했다. 여기에 대표적 운동권 출신인 우상호 전 원내대표(연세대 81)와 박완주 전 원내수석부대표가 원내 사령탑 자리를 차지하면서 86그룹이 정치권의 전면으로 나왔다.

우상호 전 원내대표는 87년 전대협 초대부의장과 연세대학교 학생회장을 맡아 서울지역 대학생들의 집회·시위를 주도했다. 그해 6월 사망했던 이한열 열사의 절친한 대학 선배로, 서울시청 앞 장례식 집행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와 함께하던 기동민 전 대변인은 성균관대 총학생회장, 박완주 전 원내수석은 부총학생회장 출신이다.

우상호 체제 이후로도 86그룹의 약진은 계속됐다. 후임의 우원식 원내지도부에서는 김태년 정책위의장이 대표적 86그룹이다. 김 의장은 경희대 총학생회장과 전대협 1기 상임운영위원을 맡아 경기 성남 지역의 6월 항쟁을 이끌었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86그룹은 청와대로도 약진했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개헌 이후인 1989년 전대협 의장을 맡았다. 직선제 개헌에도 군부가 정권을 이어간 데 대한 반발로 발생하던 후기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조국 민정수석과 하승창 사회혁신수석도 대표적 86그룹으로 분류된다. 조 수석은 80년대 학생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던 서울사회과학연구소의 주축이었다. 고문치사사건의 박종철 열사 선배기도 했다. 하 수석은 87년 6월 항쟁에 이어 7월부터 시작된 '노동자 대투쟁'을 이끌었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김수현 사회수석도 80년대 운동권 출신이다.

◇목소리를 내던 86그룹...30년 뒤 듣는 입장으로 = 87년 6월 항쟁과 직선제 개헌의 경험은 정치권의 큰 밑거름이기도 하다. 국본 상임공동대표단이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도 국본 집행부 출신이다. 모두 87년의 경험을 공유한다. 

86그룹 등 87년을 경험한 정치인들은 2016년 광화문 광장에서 30년 전과 같은 목소리가 나오는 걸 지켜봤다. 자신들이 내던 민주주의에 대한 외침을 시민들이 재현했다. 목소리는 또다시 권력자의 전횡을 막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라고 했다. 목소리를 내던 86그룹은 목소리를 듣는 입장이 됐다. 정치권으로 넘어간 개헌은 86그룹의 몫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