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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의 미래정치]질문하는 시민, 질문않는 정치

[the300]

편집자주  |  미래가 정치를 이끌고, 정치가 미래를 만듭니다. 그렇다면 그건 어떤 미래이며, 어떤 정치일까요. 한국 정치와 대한민국 국회가 더 이상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고, 경쟁하는 장이 되길 바라며 연재합니다.
↑홍일표 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
뜨거웠다. 서울의 낮 기온도 연일 34도를 웃돌아 땅은 달궈질 대로 달궈졌다. 지난 토요일 오후 홍대거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더위에 지친 표정을 숨기지 못했고, 가게의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가던 길을 멈췄다. 예정된 시간에 겨우 맞춰 도착했기에 다른 곳은 기웃거릴 틈도 없이 행사장을 찾았다. 

지하 공간은 다행히 시원했고 30∼40명 정도의 젊은이들이 이미 앉거나 서 있었다. 아는 사람들도 보였다. 청년단체 더넥스트가 진행하는 'NEXT QUESTION 2016' 이라는 강연프로그램 연사들이었다. 필자 역시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와 함께 '정치의 미래'를 논하기로 돼 있었다. 

낯설었다. 공간도, 사람도, 분위기도 익숙치 않았다. 청년들과 어울려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다행히 주최 측은 익숙했고, 능숙했다. 수십 가지의 '키워드'들을 미리 뽑아 뒀고 각자 3가지씩 고르도록 유도했다. '평범한 자들의 용기', '타인의 고통', '메갈리아 논쟁', '기본소득', '정치의 미래', '사회혁신', '트럼프 현상', '2017년 대선', '페미니즘과 진보의 간극', '4차 산업혁명' 등 하나하나 만만치 않은 것들이었다.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했다. 연사들에게 각 주제에 대해 얘기해 보라고 하지 않을까 걱정이 괜히 앞섰다. 잘 모르는 주제도 많을 뿐만 아니라 쉽게 얘기할 수 없는 주제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우였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자리가 아니었다. 자신이 고른 주제어에 대한 의견과 해석을 각자 자유롭게 밝혔다. 필자와 함께 얘기 나눈 청년들은 페미니즘에 관한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대화는 페미니즘에 관해 얼마나 아는지, 찬성 또는 반대하는지 확인하는 게 아니었다. '페미니즘'은 다른 주제어들과 연결됐다. '타인의 고통',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 '트럼프 현상', 그리고 '정치의 미래'와 '새로운 정치플랫폼'까지 논의는 확장됐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보다 자기 고통의 원인을 타인에게서만 찾으려는 게 트럼프 현상인 듯하다. 페미니즘이야말로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에서 시작하며, 그것을 말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야말로 변화의 출발이다. 미래정치는 이를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정치플랫폼을 필요로 한다."

진지했다. 청년들의 고민은 깊었고 토론에 주저함이 없었다. 조금 늦게 행사장에 도착한 한 청중은 "질문이 멈춘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직장인으로서 질문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는 생활이 아쉬워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고 자기를 소개했다. 다른 참가자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는데 질문을 맘껏 못하며 자라왔다. 여기 와서 궁금한 것들에 대해 실컷 질문해보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자신의 삶과 사회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가 다들 강했다. 당연히 프로그램 강연자들에게 부여된 역할도 '답변'하는 것이 아니었다. 같이 질문하면 됐다. 같은 주제어라도 말하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됐고, 서로 연결되는 순간 다시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았다. '질문의 힘'이었다.

거꾸로다. 지난달 21일 국가안전보장회의 석상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사드 말고 북한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보호할 방법이 있느냐"고 반대하는 국민들을 향해 질문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도 지난 6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드에 반대한다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대안을 내야 한다"며 사드결정에 관한 당내의 부정적 기류와 선을 그었다. 최근 성주시위 현장을 방문한 개그맨 김제동씨는 "그런 것에 답하라고 공무원에게 월급을 주는 것이다. 대안은 외교다"라고 꼬집었다. 질문해야 하는 사람과 답변해야 하는 사람이 뒤바뀌었고, 질문으로 다른 질문을 막으려 했다. 청년들이 질문에 질문을 더함으로써 새로운 의미와 해답을 찾으려 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의도고, 결과다.

쉽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 '질문한다는 것'은 만만치 않다. 몰라도 문제고, 의견이 달라도 문제다. 때로는 질문행위 자체가 더 큰 문제다. 더욱이 "왜?"라는 질문을 하기는 정말 어렵다. 하지만 개인이건 사회건 제대로 된 질문 없이 제대로 된 변화나 성장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질문할 수 있는 권한을 기자나 국회의원에게 줬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해 질문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부여받았고, 기자는 국민을 대신해 질문할 수 있는 사회적 권한을 부여받았다. 질문하지 못하는 기자가 비난받고, 질의하지 못하는 국회의원이 욕을 먹는 이유다. 

막지마라. 시민들은 계속해서 묻고 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해 하고, 불안해한다. 자신들의 물음이 위정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길 바라며 집회나 시위를 벌이고, 인터넷에 댓글을 단다. 그리고 국회의원을 뽑는다. 대신 크게 소리쳐 주고, 대신 제대로 물어 주길 바라면서. "대안 없이 비판 말라"거나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는 얘기를 국민이 들을 이유가 없다. 그런 얘기를 듣는다고 국회의원이 기죽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모르는데 묻지 않는 게 문제지, 모르기에 묻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국민의 의문, 국회의원의 질문을 막고 있다. 이들이 진정 걱정해야 할 것은 질문하지 않는 정치, 대답하지 못하는 정부이다.

질문하자. 정치인의 질문은 그 자체로 응답이다. 응답(response)은 책임(responsibility)의 시작이자 본령이다. 질문하지 않는다는 것은 응답하지 않는 것이요, 그것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박제화된 지식이나 굳어버린 신념만 반복하며 질문을 가로 막는 정치인은 위험하다. 그래서 질문이 멈춘 사회는 불우하고, 질문이 사라진 정치는 위태롭다. 

우리 청년들은 질문을 멈추지 않고 있다. 성주군민들 또한 마찬가지다. "한반도에 과연 사드가 필요한가?"라며 묻고, 또 묻는다. 질문이 다른 질문을 낳고, 여러 질문이 모여 새로운 질문이 된다. 하나의 정답이란 애초부터 어렵다. 모범답변을 지레 걱정했던 토요일 행사 연사들에게 그것은 결국 기우에 불과했다. 정치인들 또한 다르지 않다. 질문이 곧 응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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