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추억, 그리고 '윤석열다움'

[the300][우보세]

편집자주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1980년대 후반 어느 날 밤은 너무 무서운 기억이었다. 아파트 4층 창문으로 TV에 옷장, 냉장고 등 그야말로 모든 집안의 세간살이가 다 떨어져 부서졌다. 노동자의 도시에 살면서 피투성이로 백골단에 끌려가는 아저씨들의 모습도 낯설지 않았지만 또 다른 공포였다. 일단의 노동자들은 동료를 배신한 누군가를 거칠게 찾았지만 이미 몸을 피한 뒤였다. 노노갈등 속에 감행된 한밤의 습격은 아낙과 아이들의 처절한 울음으로 끝났다.

1990년대 후반만 해도 대학가에서 폭투(폭력투쟁)는 흔했다. 신입생 환영회처럼 소주 빈 병이 대량 배출되는 행사 때는 '재활용을 해야 하니 담배꽁초 등을 절대 병 안에 버리지 말라'는 학생회의 간절한 당부가 계속됐다. "대학생은 환경 의식이 투철하구나" 새내기들은 감탄했지만 실은 화염병 제작을 위해서였다.

#2009년 평택은 전쟁터였다. 옥쇄파업을 벌이던 쌍용차 노조원들과 사측 직원들, 경찰 특공대 간에는 화염병과 볼트 새총, 쇠파이프가 난무했고 부상자가 쏟아졌다. 현장에서 급한 기사를 마무리하고 공장 정문 앞 식당에서 늦은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고 있었다. 돌연 두꺼운 유리창에 구멍이 뚫렸다. 볼트 새총이 거기까지 날아들었다.

오래도록 폭력의 시대였다. 때로 처절한 생존을 위해서 혹은 대의명분을 위해서 폭력을 동원했다. 여차하면 '남산에 끌고 가는' 식의 국가 폭력이 만연해온 터라 저항의 폭력이 용인되기도 했다.

#"화물연대 사태 해결의 1등 공신이 무엇인 줄 아느냐?" 한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물었다. 이어진 그의 답은 "쇠구슬"이었다. 집단 운송거부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쇠구슬에 맞아 깨진 화물차 유리창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평가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아무리 강력한 법치주의 철학으로 '법과 원칙'을 밀어붙여도 민심이 호응하지 않으면 관철하기가 어렵다. 종종 여론은 탄탄한 이론이나 논리보다 명확히 각인되는 상징에 영향받는다.

쇠구슬이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불법과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메시지에 힘이 실렸다. 국민을 믿고 업무개시명령과 같은 초유의 강경책이 연이어 나왔다. 화물연대의 백기투항은 훗날 관련 기록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적힐 듯하다.

#폭력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 국민이 이제는 용납하지 않는다. 전환의 시대다. 글로벌로는 신냉전과 블록화가 교차하며 기존 국제질서 문법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국내적으로는 산업화와 민주화 세대를 넘어 새로운 가치관이 세워지고 있다.

변혁의 시기, 2023년 노동개혁을 필두로 미래를 준비하는 3대 개혁을 전면에 내세운 윤 대통령의 지향은 옳다.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직접 당부한 대로 "방향과 계획을 잘 세웠다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도출해내야 한다"

개혁의 성공은 우군의 확보에 달렸다. 적폐, 불법세력과 타협은 안 되지만 그게 아니라면 힘을 모아야 한다. 다양한 고민과 목소리도 담아야 한다. 노동의 유연화와 사회적 안전망이 같이 가야하는 것처럼 그래야 균형을 잡는다. 단기전은 불도저가 중요하지만 장기전은 정교하고 세련돼야 한다. '법률가' 윤석열다움에 '정치가' 윤석열다움을 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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