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칩4' 막던 中, 달라진 분위기…왕이 "적절한 판단 기대" 속내는

[the300]

박진 외교부 장관이 9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 있는 지모 고성 쥔란 호텔에서 만나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외교부 제공 영상 캡처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9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에게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 칩(Chip)4 예비회의 참여 계획을 통보하면서 한국의 칩4 가입 행보를 사실상 공식화했다. 이와 관련, 왕 부장은 한국의 '적절한 판단'을 기대하겠다고 응답했다. 중국 측이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로 불려 왔던 기존 공세적 외교 스타일을 누그러뜨린 것인지, 아니면 '제2 한한령'(한류 제한령)의 복선격인 응답을 한 것인지 눈길을 끈다.

중국 측은 칩4에 반대해 왔지만 한국을 칩4 안에서 일종의 균형추로 활용하는 방안도 내심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박 장관은 이번 회담 중에 양국 간 해묵은 현안인 '한한령 해제'도 요구했다. 왕 부장은 노력하겠다는 뜻은 밝히면서도 즉답을 피했다.



韓 '칩4 예비회의 참여' 통보…中 '적절한 판단' 당부


10일 외교부에 따르면 박 장관은 전날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왕 부장에게 칩4 예비회의에 참석한다는 계획을 알렸다. 이 자리에서 박 장관은 그간 우리 정부의 칩4가 특정 국가를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정부의 기본 입장을 재확인했다. 칩4 문제는 물론 유사한 상황에도 국익에 기초해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점도 알렸다.

왕 부장은 우리 측 설명을 경청한 뒤에 한국이 적절하게 판단해 나갈 것을 기대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중국 측이 "과학기술과 경제무역 문제를 정치화, 도구화, 무기화하고 협박 외교를 일삼고 있다"(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며 칩4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던 것과 비교하면 완만한 반응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9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 있는 지모 고성 쥔란 호텔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외교부 제공 영상 캡처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제안한 칩4의 협력 대상국은 우리나라와 일본·대만이다. 반도체 산업과 관련한 참여국 간 △인력 양성 △연구개발(R&D) 협력 △공급망 다변화 등을 추진하자며 미국이 3국에 제안한 것이다.



中, 韓 반도체로는 못 때린다?…회담 분위기 보니


미국과 협력 대상국 간 논의가 구체화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칩4는 바이든 정부가 주요 반도체 생산국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일종의 배타적 공동체라는 관측이 존재한다. 중국 매체에서도 칩4 비판 발언이 잇따라 나왔지만 한중 외교장관 회담 당일에는 중국 관영 환추스바오(環球時報)의 영문판 글로벌타임스가 "한국이 부득이하게 '칩4'에 합류해야 한다면 한국이 균형을 잡고 시정하는 역할을 하기를 국제사회는 기대한다"며 한발짝 물러서는 듯한 기조의 사설을 냈다.

학계나 외교가에서는 중국이 칩4가 다루는 분야인 반도체 분야에 대한 보복을 감행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도 제기돼 왔다. 중국이 자국 산업을 한국이나 대만산 반도체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한국 대만 반도체 산업에 보복을 가하는 것은 제살 깎아먹기 같은 문제가 된다는 논리다. 2016년 시작된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사태 때도 중국 측이 보복을 가한 분야는 관광, 한류 분야였지 반도체까지 확전되지 않았다는 점이 근거로 거론된다.

다만 중국 측이 반도체가 아닌 다른 분야를 상대로 제2 한한령(한류수출 제한)식 보복에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도 제기돼 왔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9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 있는 지모 고성 쥔란 호텔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외교부 제공 영상 캡처
외교 소식통은 "중국은 자신들의 제품 생산을 위한 중간재로 (한국, 대만산) 반도체를 귀중하게 쓰고 있어 칩4와 관련해 반도체 산업을 타깃으로한 보복을 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다른 분야에 대한 제재설의 경우 조금 더 지켜봐야 되겠지만 한중 외교장관 회담의 알려진 분위기만 보면 그렇지(중국의 보복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박진, 한한령 해제 요청…왕이 '노력' 언급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박진 외교부 장관이 9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외교부 제공) 2022.08.09. *재판매 및 DB 금지

한중간 공급망 협력도 논의됐다. 박 장관은 "그간 밀접한 경제 관계를 발전시켜온 한중 양국은 한중 FTA 서비스 투자 협상 타결, 디지털 경제의 동반자 협정 가입,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관세 및 원산지 이점 활용, 공급망의 안정적 관리 등을 통해서 새로운 도전들을 함께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번에 양측이 가속화 협력 심화에 나서기로 한 분야는 △한중 FTA 서비스·투자 후속협상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PA) 등 역내 다자 협의체 △21세기 중반까지의 탄소중립 실현 및 미세먼지·기후변화 관련 협력 등이다.

왕 부장은 "윈윈을 견지해 안정적이고 원활한 공급망과 산업망을 수호해야 하고, 평등과 존중을 견지해 서로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공급망·산업망 수호'는 윤석열 정부의 칩4 가입 행보 등 한미 밀착 행보, '내정 간섭 금지'는 낸시 펠로시 미 하원 의장의 대만 방문 등 최근 정세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 장관은 이날 "문화콘텐츠 교류가 양 국민, 특히 젊은 세대 간의 마음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영화와 방송, 게임, 음악 등 분야 교류를 대폭 확대해 나가자"며 한한령 해제를 요구했다.

왕 부장은 한중관계의 중요한 일부분인 인적·문화적 교류 강화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 노력해 나가자고 했다고 우리 외교부 측은 설명했다. 사드와 관련해서는 한중 양측이 각각 서로의 의견을 명확하게 개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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