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살입법]회사 문닫을뻔한 '한전KDN' 기사회생 비법은?

[the300]⑤입법을 통한 살아남기

편집자주25년 국회 경력을 가진 서인석 AP입법교육원 원장(전 보좌관)의 연재 기고 '필히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입법'(필살입법)을 시작합니다. 서 전 보좌관은 입법활동 전반에 대한 책을 쓰고 강의를 하며 행정사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서 전 보좌관이 입법 노하우의 정수만 뽑아 총 10회에 걸쳐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서인석 전 보좌관.

입법적 리더십의 네 번째 사례는 입법을 통한 살아남기다. '입법 통한 살아남기'는 두 번째 사례인 '입법 통한 뺏기'의 대응 개념이다. 이는 누군가가 자신의 이익이나 시장 또는 권한이나 기득권을 뺏으려고 할 때 입법을 통해 그 같은 시도를 무산 내지 무력화시키는 걸 의미한다. 다시 말해 사전에 입법을 통해 기존 시장을 보호하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입법을 통해 뒤늦게나마 타인의 공격을 막아내는 의미다.


호시탐탐 '내 것'을 뺏으려는 사람들


살다보면 누군가가 내 것을 뺏으려고 달려드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그건 기득권일 수도 있고 내가 갖고 있는 권한이나 시장일 수도 있다. 이 때 내 것을 뺏기지 않으려면 효과적인 대응책을 강구할 수 있어야 한다.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안과 여기에 대한 한전KDN의 대응은 누군가가 자신의 것을 뺏으려고 하는 것에 대응한 '입법 통한 살아남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18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며칠 남지 않은 2012년 5월 2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국가기관 등이 발주하는 정보시스템 구축사업에 삼성SDS와 LG C&S, SK C&C 등과 같은 대기업 및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포함된 IT서비스 업체들이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IT 대기업의 참여제한은 세계 어디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제도다. 개정안 시행은 당장 삼성SDS 등 대기업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이는 단순히 사기업에게만 그치지 않았다. 공기업인 한전KDN도 개정안에 따른 직접적 피해를 입었다. 한전KDN은 한전의 자(子)회사로서 상호출제제한기업집단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한전KDN은 전력ICT(정보통신기술)기술을 적용해 전력계통 감시, 진단 및 제어, 전력사업 정보관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기업이다. 전력의 송·변전 및 판매는 그 성격상 모(母)기업인 한전을 비롯해 남동·중부·남부·서부·동서발전 등 5개 화력발전소들과 한국수력원자력 그리고 전력거래소 등을 통해 이뤄진다. 따라서 한전KDN의 매출 역시 자연 이들 기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2013년 경우 한전KDN의 고객별 매출현황을 살펴보면 한전 68.7%, 한국수력원자력과 5개 발전사 및 전력거래소 24.4%, 기타 6.9%로 공공분야의 매출이 전체의 90% 이상일 정도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데 만약 이 같은 상황에서 한전KDN으로 하여금 민간 대기업들과 똑같이 국가기관 등이 발주하는 정보시스템 구축사업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건 한전KDN에게 회사 문을 닫으라고 하는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안 시행으로 한전KDN은 이처럼 조만간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렇다고 여야 간 합의에 의해 시행되는 법 개정을 일개 공공기관이 나서서 막거나 거부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한전KDN 입장에서는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다. 국회의 법 개정을 손 놓고 가만히 지켜보면 회사 존립이 위태롭고 반대로 국회가 하는 일에 어깃장을 놓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한전KDN은 '입법을 통한 살아남기'에서 탈출구를 찾았다.


'입법로비'에 휘말린 한전KDN, 그러나…


2013년 2월 14일 지식경제위원회 소속이던 전순옥 의원은 동료 의원 9명의 서명을 받아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개정안의 내용은 간단했다. 대기업 참여를 제한하는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24조의2제2항 및 제3항에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른 공공기관은 제외한다'는 예외조건을 단 것이다. 전순옥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12월 19일 국회 본회를 통과하면서 이듬해인 2014년 3월 3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처럼 개정안은 특별한 걸림돌 없이 해당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논리가 수반됐다. 첫째 전력분야 등 특정 공공서비스는 민간시장의 기술과 경험의 한계, 수익성 부족 등으로 인해 그동안 해당 사업 수행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공기관이 전담하여 수행하던 업무이다. 둘째 이런 상황에서 해당 공공기관이 대기업으로 분류돼 더 이상 사업을 할 수 없게 되면 설립 목적을 상실하게 될 뿐만 아니라 공적 서비스의 전문성과 안정성 훼손으로 국민 후생이 저하된다. 셋째 대규모 공공시스템통합과 같은 사업에는 민간 중·소 소프트웨어 사업자의 참여가 쉽지 않아 오히려 외국계 대기업들이 수주하게 되는 등 중소기업의 참여를 확대하려는 법 취지에 어긋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공공기관은 예외로 한다'는 개정안 통과로 한전KDN은 다시 예전과 같이 한전을 비롯한 국가기관 등에서 안정적으로 사업을 수주, 회사를 운영할 수 있었다. 이런 가운데 2014년 11월 들어 경찰은 한전KDN이 '입법로비'를 했다며 국회의원 4명을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한전KDN이 자사에 불리한 법 개정을 막으려고 새정치민주연합 전순옥 의원 등 국회의원 4명에게 불법 후원금을 제공하며 입법로비를 벌였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여야 의원 4명에게 후원금 5405만 원을 기부하고 법 개정을 요청한 혐의로 한전KDN 임원 2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경찰 수사는 딱 여기까지였다. 한전KDN이 전순옥 의원을 상대로 입법로비를 했다는 2014년 11월 단 한차례의 언론 보도 이후 지금까지 사건은 검찰로 송치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입법로비의 대상으로 거론됐던 4명의 의원이 구속되거나 재판을 받지도 않았다. 특히 4명의 의원 가운데 당시 야당의 한 여성 의원은 문재인 정부 들어 국토교통부장관으로 활동하며 역대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또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전순옥 전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소상공인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다만 후원금 기부 등 입법로비를 지시한 한전 KDN의 김모 전 사장만 2019년 6월에 벌금 600만원에 처해졌다.

이렇게 볼 때 경찰의 발표는 그야말로 '태산명동에 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격이 아닐 수 없다. 입법로비라는 소리만 요란했을 뿐 결과물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입법로비라는 경찰 발표 때문에 후원금을 낸 한전KDN 직원들은 줄줄이 경찰에 불려가 조사 받는 곤욕(?)을 치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언론보도만 요란했을 뿐 개정안은 이미 통과돼 실시되고 있던 터라 한전KDN은 조직 보호를 위한 '입법 통한 살아남기'를 충실히 이뤄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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