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천'하는 대통령[광화문]

이명박(MB) 전 대통령을 대선 후보 시절 만났다는 한 정치인은 "MB가 청와대 조직을 어떻게 운영하면 좋겠냐"고 자문을 구하자, "청와대는 내각을 지휘하는 곳이다. 우선 행정부를 어떻게 구성할지 정하고 청와대를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 "작은 정부를 약속했는데, 노무현 정부보다 숫자 하나라도 적어야 한다"

작은 정부와 큰 정부의 차이를 숫자 하나로 치환하는 것에 다소 어처구니가 없었다는 그는 "그런 인식 조차 없이 대통령 됐으니 애초에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종종 정치학자나 행정학 교수들을 만나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대통령이 되려는 이들로부터 국정운영 체계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곤 하는데 공통점이 있다는 것. 내각이나 당정 관계, 의회와의 관계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 보다 온통 청와대를 어떻게 꾸릴지에 관심이 쏠려 있더라는 거다.

권력의 속성은 집중과 연장에 있다. 대통령제는 이 같은 요소가 깊숙하게 내재 돼 있다. 연장은 쉽지 않지만, 집중은 제도를 악용하면 얼마든 가능하다. 헌법 취지에 맞게 책임총리제가 구현되지 못하는 게 단적이다.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 회의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공개된다. 국정운영의 의사결정은 국무회의에서 이뤄져야 한다. 장관들은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신경을 곤두세운다. 일부 장관들은 공개되지 않은 말씀 자료가 없는지 청와대 출입기자에게 '취재'를 하는 촌극도 벌어진다.

모든 권력을 독점하려는 제왕적 대통령과 청와대. 민주화의 상징으로 인식됐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도 제왕적 대통령이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은 아니러니다. 민주화의 상징적 존재들이 대통령이 됐으니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를 이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권력의 분산, 즉 민주주의 '제도화'에 대한 인식 부재는 대통령들의 반의회주의적 발언으로 드러난다. 국회의원을 거친 대통령들조차 수시로 일삼는다. 5년 단임제, 시간이 없다는 조급함의 발로인지, 야당의 비판과 토론을 도무지 참지 못한다. 그러면서 한마디 한다. "국정의 발목잡기".

이는 곧 국민들에게 반정치 인식을 촉진 시키고, 분열로 이어진다. 여당은 대통령 집권 초기 대통령의 거수기 역할을, 말기에는 대통령 후보의 캠프 역할을 자처한다. 이렇게 야당과의 합리적 토론과 협치는 사라진다. 5년 단임제를 핑계 되면 안 된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다. 민주주의 제도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촛불 혁명을 통해 탄생한 정부.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광화문 대통령을 자처했다. 여느 대통령들처럼 책임총리와 내각 중심의 국정운영을 얘기했다. 통합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키지 못했다. 어느 정권보다 청와대 권력은 막강했다. 권한을 절제하지 못했다. 끊임 없이 야당과 충돌했고, 임기 내 제대로 된 영수회담 한번 갖지 않았다.

누구나 후보 시절 일과 후 시민들과 소주 한 잔 기울이는 대통령을 꿈꾼다. 하지만 당선되고 나면 과도한 의전을 받으며 승천한다. 대통령도 참모들도 권력의 맛에 취해 구름 위를 떠다닌다. 권력이 영원할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재임 중 가장 중요한 1, 2년을 그렇게 흘려보낸다.

대선이 7개월 여 앞으로 다가왔다. 대통령의 사고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 지금 시간은 후보들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을 보여주는 시간이다. 그것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여야 대권 후보들의 레이스를 보고 있으면 우려가 앞선다. 운동장을 넓게 쓰지 못한다. 좁은 한 구석에서 사생 결단식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국민들의 귀에도 미래가 들어올 틈이 없다. 지금은 누가 당선 되도 정부 운영이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통합을 얘기하는 후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상황이 이럴진대 '권력 분산'을 얘기하는 후보를 기대하는 것. 언감생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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