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현·은비·정인이까지…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the300]대통령 직속 아동학대 진상조사委 설치 특별법 발의한 김상희 의원

아동인권단체, 여성인권단체 회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학대피해로 입양아동이 사망한 사건에 대한 보건복지부, 경찰청장에게 묻는다' 공개 질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전국민을 분노케 했던 이른바 정인이 사건 이후에도 아동학대 사건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최근까지도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이 장애 아동을 상습적으로 학대하는 사건이 발생하는가 하면 10살 아동이 이모와 이모부의 물고문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아동학대를 방지하기 위한 진상조사와 제도개선은 지금껏 꾸준히 요구돼 왔다. 그동안 전부 민간 차원에서 진행된 진상조사는 몇 차례 있었으나 국가 차원에서 진상조사가 이뤄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이에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8일 여야 의원 138명과 함께 대통령 직속 아동학대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의 '양천아동학대사망사건 등 진상조사 및 아동학대 근절대책 마련 등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해 주목받고 있다, 



폭행으로 갈비뼈 14개 부러져...진상조사 요구에도 국가는 묵묵부답


16일 김 의원실에 따르면 해당 법안은 2014년과 2017년에 각각 나온 이서현 보고서와 은비 보고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민간 진상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수십가지의 개선사항이 권고됐으나 제대로 이행되지 못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발의됐다.

이서현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10월 24일 계모로부터 상습적인 학대를 당하던 9살 이모양이 숨졌다. 사망하기 직전 계모 박씨는 이 양이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머리와 가슴 등을 마구 폭행했다. 부검 결과 이 양은 박씨의 폭행으로 양쪽 갈비뼈 16개가 골절된 상태였다.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민간단체 관계자들은 정부의 진상조사 의향을 확인하고 필요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의 요청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고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도 공석인 관계로 민간단체들은 결국 국회와 연계해 진상조사를 벌였다.

민간 차원에서 이뤄진 진상조사는 수많은 한계에 부딪혔다. 조사단은 보고서에 "국내에서 최초로 아동학대 사망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실시하고 그를 바탕으로 개선안을 마련한 것 자체로 유의미하다"면서도 "민간 조직으로서 자료 수집과 조사활동의 범위, 조사 결과의 파급력 등에서 여러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고 적었다.

조사단은 구체적으로 △각각의 조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점 △위원회 활동이 전적으로 개인적 헌신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점 △조사 활동은 각 위원들이 개인 경비와 시간을 내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점 △수시 모임을 소집하기 어려웠던 점 등을 한계점으로 꼽았다.

이서현 보고서의 영향으로 2013년 12월 학대로 아동을 사망케 한 경우 최대 무기징역으로 처벌하도록 하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듬해 관련 예산은 삭감돼 진정성에 의혹이 제기됐다.

정인이 양부모에 대한 첫 재판이 열린 13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양부 안모씨가 탄 차량이 나오자 시민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공동취재사진) 2021.01.13. photo@newsis.com



두 차례 입양 끝에 학대로 사망...고질적인 구조적 허점


이서현 보고서를 통한 제도개선에도 불구하고 2016년 7월 25일에는 4살 여아 은비(가명)가 양부모의 학대 끝에 숨졌다. 2012년 미혼모의 딸로 태어난 은비는 17개월 무렵 보육원에 맡겨졌다. 보육원 생활을 하던 은비는 2015년 경기도 동탄의 한 가정에 입양을 전제로 위탁됐다.

진상조사 결과 첫번째 위탁모는 은비에게 학대를 일삼았다. 위탁모는 분노조절장애 증상이 있었고 은비를 수시로 굶기거나 때렸다. 상담원이 방문해서 양육상담을 진행했으나 그럴 때마다 위탁모는 은비를 키우기 힘들다고 호소했다.

결국 은비는 위탁가정에서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보육원은 은비의 심리적인 상태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약 한달 뒤 또다른 가정으로 예비입양을 보냈다. 두번째 가정에서 은비는 지속적인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숨졌다.

은비와 같은 해 포천에서는 양부모의 학대로 또다른 아이가 숨졌다. 양부모는 아이의 팔, 다리, 몸 등을 투명테이프로 감아 베란다에 눕혀놓은 채 외출했다. 방치는 그 뒤로 계속됐고 아이는 결국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야위다가 사망했다.

특례법 제정 및 관련법 개정으로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을 상당 수준 끌어올렸지만 은비 사건과 포천 아동학대사건이 벌어지자 또한번 아동학대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국가는 움직이지 않았고 민간단체들이 나서 국회와 함게 진상조사단을 꾸렸다.

진상조사단은 민간의 힘으로 최대한 할 수 있는 범위까지 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은비 보고서'에 담았다. 은비 보고서에는 한국 입양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아동보호체계 제도개선 등의 내용이 담겼고 유관기관에도 전파됐다. 하지만 이같은 제도개선 권고에도 2020년 '정인이 사건'을 막지 못했다.

김상희 국회부의장/사진=뉴스1



이서현·은비 보고서에도 '정인이 사건' 발생...전문가들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김상희 의원실 관계자는 "대통령 직속 진상조사단이 필요한 이유는 조사도 중요하지만 권고사항 이행 담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서현 보고서와 은비 보고서를 통해 전문가들이 수많은 개선사항을 권고했지만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정인이 사건같은 경우에도 과거 권고사항들이 제대로 이행됐더라면 막을 수 있었다"면서 "법안이 통과되면 최초로 국가 차원의 아동학대 진상조사가 이뤄지는데 개선사항 이행까지 법안에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전 보고서들보다는 훨씬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2017년 은비 보고서를 작성했던 소라미 변호사도 "조사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결과 이행을 보장 못하고 여론에 많이 좌우된다는 점"이라면서 "은비 보고서 이후 입양 특례법 논의가 이뤄졌으나 결국 무산돼 굉장히 아쉬웠다"고 말했다.

이윤진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지난해 정인이 사건 등을 계기로 각 지자체에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이 생기는 등 기존 민간 차원에 위탁해서 관리하던 아동학대를 이제는 지방정부가 도맡아 하고 있다"면서 "진상조사에 있어 조사도 중요하지만 개선방안에 따른 관련 예산확보나 제대로 된 법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제는 국가가 나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의 법안은 오는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했다. 김 의원실 측은 현재 최대한 빠른 시일 내 법안 통과를 목표로 공청회 일정 등을 조율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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