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째 개점휴업…‘법안’만 찍어내며 ‘썰전’하는 국회
21대 국회가 한달 째 공회전하고 있다. 국회 본관엔 ‘21대 국회 개원’이란 대형 현수막이 걸렸지만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의원들의 4년 임기는 지난달 30일 시작됐다. 하지만 아직 ‘국회의원 선서’조차 하지 못했다.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 달라는 국민의 명령을 받은 300명의 의원들은 금배지를 달고선, ‘일 안하는’ 국회에서 멋쩍은 표정만 짓고 있다. 이들은 경쟁적으로 법안 발의에만 열을 올릴 뿐 ‘어떻게 국민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한 방법은 찾지 않고 있다.

2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5월30일부터 이날까지 약 한달간 의원들이 발의한 법률안 건수는 1014건(정부가 직접 발의한 법안 31건 제외)으로 집계됐다.

의원들이 하루 평균(주말 제외 총 20일 기준) 50건 이상의 법안을 발의한 셈이다. 20대 국회에선 같은 기간 458건, 19대땐 361건, 18대땐 65건 등의 법안이 발의된 것을 고려하면 21대 국회가 국민을 위해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빈수레가 요란할 뿐이다. 법안을 면밀히 살펴보면 20대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해 폐기된 법안을 재발의한 것들이 많다. 국회가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헌법기관임을 감안하면 각 상임위원회는 발의된 법안을 신속하게 심사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한달간 여야가 한 일을 살펴보면 20대 국회의 연장일 뿐이다. 원 구성을 놓고 한달 째 ‘강대강’ 대치다. 서로 법제사법위원장을 차지하겠다는 일념으로 싸우기만 한다. 민생은 뒷전이다. 국민들은 문을 연지 한달밖에 안된 21대 국회에 벌써 피로감을 느낀다.

여야 의원들은 코로나19(COVID19)로 대한민국이 전대미문의 국가적 위기에 놓였다고 입을 모으지만 절박감은 없다. 민생을 위한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 처리 등이 뒷전으로 밀린 게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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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여야 의원들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9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 산회 후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2020.6.8/뉴스1

게다가 ‘일 안 하는’ 국회에서 개별의원들은 ‘참전’ 용사가 되는데 힘을 쏟는다. 국내·외 정치·경제·사회 등에서 이슈가 터질때마다 자신의 페이스북이나 방송 등에서 입장을 표명하는 식으로 참전하며 상대 진영 인사들과 ‘썰전’을 벌이는 데 전력을 다한다. 의원들이 본업을 멀리한 채 존재감만 과시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난지원금, 경색된 남북관계, 인천국제공사 정규직 전환 등 각종 이슈가 국회 밖에서 정쟁거리가 될 뿐 해법에 대한 국회내 논의는 없다. 여야 모두 자기 진영 지지자들에게 어필하는 식의 ‘썰전’에 몰두하는 모양새다. 국민들 기억에 논란만 남을 뿐이다.

물론 원 구성 등 논란으로 국회가 공회전하는 건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4년마다 반복된다. 그렇지만 지금은 포스트코로나 시대 대비를 위해 여야가 국민을 위해 손을 잡을 때다. 국민의 삶과 동떨어진 문제를 놓고 서로 싸우며 국력을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얘기다.

여야가 국민을 위한 공동 목표를 놓고 ‘협상’과 ‘협력’한다는 자세를 갖췄을 때 ‘협치’는 작동한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으면서 국민을 위해 구체적 성과를 내는 것을 우선 목표로 해야한다는 얘기다. 여야 모두 ‘아군 대 적군’ 식의 타락한 진영 의식과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서로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은 남 탓으로 일관하던 20대 국회로 회귀를 부추길 뿐이다.

국회 고위관계자는 “지난 한달 간 여야 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20대 국회와 별반 달라진 게 없다”며 “국민들은 또 일을 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이 수억원의 세비만 받아가고 있다고 비판할 게 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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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21대 국회 법정 개원일을 하루 앞둔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 국회 개원 현수막이 설치돼 있다. 여야는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을 놓고 대립하면서 법정 시한일인 내일(5일) 개원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2020.06.04. yesphoto@newsis.com

국민 혈세 35조, 번갯불에 콩볶듯 하나…추경의 비극
사상 최대인 35조원의 제3차 추경(추가경정예산안)이 결국 졸속처리를 면키 어렵게 됐다. 원 구성을 놓고 여야가 극한 대립을 이어간 탓에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천문학적 규모의 '슈퍼 추경'이 고작 사나흘의 심사밖에 받지 못할 처지다. 형식적 절차만 거치는 셈으로 이럴 거면 국회가 왜 존재하느냐는 지적마저 나온다.

28일 정치권에 따르면 주말 사이 더불어민주당은 6월 임시국회 회기(7월4일) 내에 3차 추경을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미래통합당과 원 구성 협상을 타결짓는 것과 별개로 29일에는 본회의를 열어 예결위(예산결산특별위원회)을 비롯해 추경 처리에 필요한 나머지 상임위 구성을 완료하겠다는 계획이다.

강훈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7일에도 서면 브리핑에서 "3차 추경은 코로나19 국난 극복과 우리나라 경제 회복의 동력"이라며 "민주당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내달 3일(4일은 주말)까지 추경안을 처리하겠다는 얘기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4일 국회에 3차 추경안을 제출했다. 초유의 코로나 사태에 긴급성이 중요한 시점이지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를 놓고 여야가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서 제21대 국회는 공전을 거듭했고 그 결과 24일간 추경 심사를 시작조차 못했다.

여당의 강행 처리 방침에 맞서 통합당은 35조원의 추경을 처리하는데 제대로 된 설명조차 듣지 못했다며 문재인 정권이 졸속처리를 사실상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28일 페이스북에 "‘7월3일까지 3차 추경을 처리하라’ 입법부에 내린 대통령의 행정명령"이라며 "우리 국회가 대통령 한마디에 도장 팍팍 찍는 통법부인가, 우리 국회가 유신 국회로 돌아갔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여당의 기세대로라면 35조원의 예산이 예결위도 구성 안된 국회에서 닷새만에 통과된다"며 "제1야당 원내대표인 저는 오늘까지 행정부로부터 3차 추경에 대해 한번도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 경제부총리 얼굴을 아직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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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의원들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국회 첫 본회의 도중 퇴장하고 있다.

29일 본회의에서 상임위 구성이 완료된다고 해도 7월 3일까지는 시간이 지나치게 촉박하다. 국회의장이 예비심사 기한을 하루 정도로 정할 경우 정부 각 부처를 담당하는 소관 상임위에서의 예비심사는 사실상 생략해야 한다.

예결위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을 상대로 즉각 종합정책질의를 열고 각 상임위에서 예비심사안이 넘어오면 7월 1~2일 예산안조정소위원회를 열어 세부심사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많은 항목을 제대로 심사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예결위에서 세부심사를 마치면 본회의가 열릴 3일 기획재정부의 '시트작업’(예산명세서 작성)을 거쳐 추경안은 최종 처리될 전망이다. 국회가 추경안을 제대로 심사하지 못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이미 국회 예산정책처(예정처)는 최근 보고서에서 3차 추경안에 문제점을 지적했다.

예정처는 정부의 일자리 사업에서 중복성을 지적했고 추경 핵심 사업인 한국판 뉴딜 사업에서 계획이 미흡해 효과를 담보하기 어려운 사업이 상당수 편성됐다고 평가했다. 예정처는 "대규모 국채 발행을 통해 편성된 추경 사업들이 의도하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심도 있는 국회 심의를 통해 면밀히 검토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일련의 심사 과정에 통합당 의원들이 참여할지도 변수다. 참여하지 않는다면 여당 의원들끼리 일사천리로 진행하겠지만 통합당 의원들이 예결위 등에 들어가 항목의 적절성 등을 따지기 시작하면 신속한 합의처리는 어렵다.

이 경우 여당은 표결로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 합의처리가 원칙인 상임위에서 추경안이 일제히 표결로 처리돼 본회의까지 올라가 통과된다면 민주당으로서 정치적 부담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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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불참해 빈자리가 보이고 있다. 이번 전체회의에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더불어민주당의 상임위원장 선출과 상임위 강행에 반발하며 불참했다. 2020.6.17/뉴스1

입법 기능 '마비'된 국회… 시급한 '민생 법안'은?
21대 국회의 원 구성 지연으로 법안 심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회 고유 업무인 '입법' 기능이 마비 상태다. 코로나19 후속, 주택시장 안정화 등 민생 현안과 직결된 법안들이 잠자고 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호 법안으로 발의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대표적인 코로나19 후속 법안이다. 보건복지부 소속 차관급 기관인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를 독립적인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고, 복지부에 복수차관제를 도입하는 내용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고용보험 확대 법안도 발의됐다. 보건복지위원장인 한정애 민주당 의원은 플랫폼노동자와 특수고용직(이하 특고) 노동자에 고용보험을 의무 적용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화두를 던진 '전 국민 고용보험'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법안으로 꼽힌다.

미래통합당이 1호 법안으로 발의한 '코로나19 위기탈출 민생 지원 패키지법'도 있다. 패키지법은 △코로나 방역 관련 일시적 사업중단 등으로 손실이 생긴 의료기관과 소상공인·중소기업의 피해 지원 △대학교 등록금 환불 △무상급식 지원 중단 시 취약계층에게 푸드쿠폰 지원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휴원, 학교의 휴교 등으로 아이돌봄이 필요한 근로자를 위한 제도 활성화 등 내용을 담았다.

이를 위해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8개 법안을 발의했다.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를 뜻하는 '리쇼어링' 지원 법안들도 심사를 기다린다. 리쇼어링 확대는 정부의 올해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포함된 내용이기도 하다. 통합당 구자근·강기윤·김도읍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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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뉴스1) 박하림 기자 = 23일 오전 10시15분께 강원 홍천군 서면 일원에서 탈북단체가 보낸 대북전단 살포 풍선이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홍천 경찰은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해 경위를 파악 중이다. (독자 제공) 2020.6.23/뉴스1

최근 남북관계 악화의 단초를 제공한 대북전단 금지 법안 역시 민주당의 최우선 입법 과제다. 민주당 김승남·김홍걸·박상혁 의원이 각각 발의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 개정안'은 통일부 장관 승인이 있어야 대북전단 살포가 가능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최근 통일부가 대북전단 살포 단체 2곳을 고발한 상황을 고려하면 사실상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려는 취지다.

설훈 의원은 '접경지역 지원 특별법'에 주민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대북전단 살포를 대북적대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드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부동산 규제 법안들 역시 민생 법안으로 꼽힌다. 20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12·16 대책 관련 5개 법안이다. 종부세법, 소득세법, 주택법, 지방세특례제한법, 민간임대주택 특별법 등 개정안이다. 민주당은 추가 규제를 담은 6·17 대책이 발표된 만큼, 이들 법안의 처리를 서두르겠단 입장이다.

민주당 차원에서 1호 법안으로 추진하는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한 '국회법 개정안'은 조만간 발의된다. 앞서 민주당 일하는국회추진단은 △법사위 체계자구심사권 폐지 △상시 국회 실현 △법사위, 윤리사법위원회로 변경 △문체위와 여가위 통합 △예산소위 복수화 등 내용을 담은 개정안 초안을 발표한 바 있다. 개정안은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대표발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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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장세영 기자 = 의원들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78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산회 선포 이후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2020.05.20. photothink@newsis.com

21대 국회 원구성 언제 될까?…반복된 '개점휴업' 역사
법정시한에 맞춰 지난 5일 개원한 21대 국회. 하지만 이후 20일 넘게 원구성을 마치지 못하고 있다. 개원 이후 3일 안에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을 만든 국회가 정작 법을 지키지 못하는 모습이다.

여야가 '샅바싸움'을 하며 민생법안을 등한시한 것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원구성 협상은 정치적 쟁점과 맞물려 진통을 겪는 게 관례였다. '개점휴업'의 역사는 반복됐다. 원구성 협상은 민주화 이후 13대 국회에서 시작됐다.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다. 이때부터 상임위원장은 교섭단체 의석 비율에 따라 배분되는 관행이 생겼다.

헌정사상 개원 이후 '국회 공백'이 가장 길었던 때는 14대 국회다.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과반의석을 갖지 못하고 제1야당인 민주당이 전체의 32%를 차지하면서 원구성에 125일이나 걸렸다. 당시 여야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두고 대치했다. 민주자유당은 총선과 대선, 지자체장 선거를 한 해에 치르는 것은 무리라며 선거 연기를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불가 방침을 고수했다.

결국 여야가 지자체장 선거를 연기하기로 합의한 뒤에야 원구성 협의가 시작될 수 있었다. 늑장 개원한 14대 국회는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고 국회법에 원구성 시기를 명시했다. 국회법 개정으로 임기개시 이후 7일 째 임시국회를 열어 국회의장을 선출하고, 이어 3일 안에 상임위를 구성토록 했지만 '지각' 국회는 이어졌다. 정쟁이 벌어지며 국회는 짧게 2주부터 길게 3개월 가까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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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구성에 79일이 걸렸던 15대 국회 후반기, 여야는 국회의장 자리를 두고 대립했다. 의장은 여당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한나라당은 원내1당의 권리를 주장했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자유투표를 통해 선출하기로 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있었던 18대 국회는 원구성까지 88일이 걸렸다. 야당인 민주당은 원구성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가축법 개정안'을 내걸었고 모든 논의는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갔다. 극한 대치 끝에 당시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협상이 타결됐다. 그러나 법정시한을 한 달이나 넘겨 국회의장을 선출하는 등 부끄러운 역사를 남겼다.

19대 국회 역시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 쟁점은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관련 국정조사 추진이었다. 결국 여야는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와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관련 특검 등을 약속하며 개원에 합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