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영감'의 배신…국회 보좌진의 세계

[the300]

해당 기사는 2020-05-14 런치리포트에 포함된 기사입니다
제21대 총선을 이틀 앞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사무처가 제21대 국회의원들에게 지급될 배지를 공개하고 있다./사진=홍봉진 기자

국회 보좌진이 '영감'(국회의원을 지칭하는 은어)을 떠난다. 버림 당했거나 스스로 버렸거나 둘 중 하나다.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여야를 막론하고 치열한 '구직난'이 벌어지는 이유와 무관치 않다. 당장의 '밥벌이' 할 일자리가 없어서 혹은 더 나은 일자리를 위해 보좌진은 고군분투 중이다. 


의원 당선 돼도 실직?…'파리목숨' 보좌진


4·15 총선에서 낙선한 의원실 소속 보좌진은 하루아침에 '백수'가 됐다. 특히 미래통합당의 경우 총선 참패로 의석수가 19석 감소하면서 산술적으로 150명이 넘는 보좌진이 일자리를 잃게 됐다. 

독립적인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은 4급 보좌관(2명), 5급 비서관(2명), 6·7·8·9급 비서(각 1명) 등 총 8명의 보좌진을 채용할 수 있다.

당선에 성공한 의원실의 보좌진이라도 고용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이들의 채용 여부는 오로지 의원의 손에 달렸다. 서류 한 장으로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는 '파리목숨'인 셈이다. 

페이스북 커뮤니티 '여의도 옆 대나무숲'은 "A의원이 당선된 지 일주일도 안돼 일괄사표를 요구했다"는 게시글로 들썩인다. 

'별정직' 공무원인 보좌진은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보좌진의 해임이나 징계 절차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 

의원실에서 국회 사무처에 보좌진의 면직요청서를 제출하면 그 즉시 해임이 이뤄진다. 국회 사무처가 부당 인사 등을 검증하는 과정은 없다. 별다른 해임 사유 없이도 면직요청서 제출이 가능하다.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의 제21대 총선에서 낙선한 한 의원실 앞에 사무실에서 내놓은 짐들이 쌓여있다. 21대 국회는 오는 5월 30일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2020.5.4/사진=뉴스1


"의원도 방 분위기도 영"…박차고 나가는 보좌진


'의원갑질'을 참지 못해 다른 의원실로 눈을 돌리는 보좌진도 있다. 의원 가족의 비행기표 구매와 연말정산 등 '사적심부름'에 동원되기 일쑤다. 

'무한야근'도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다. 대정부질문이나 국정감사 기간이 되면 밤을 새고 잠시 눈을 붙이려는 보좌진이 몰려 의원회관 휴게실은 '북새통'을 이룬다.

수직적인 의원실 분위기도 '자발적 퇴사'에 한 몫 한다. 4급부터 9급까지 촘촘한 위계질서 속에 수많은 이가 고통을 삼키며 속으로 곪고 있다. 

특히 의정활동과 지역구활동으로 자주 자리를 비우는 의원을 대신해 보좌관이 갖는 권한이 막강하다. 의원 때문이 아닌 보좌관의 '업무미루기'와 '폭언' 등으로 자리를 옮기는 이들도 많다.

이같은 '보좌진 세계'의 문제점은 수없이 제기됐다. 하지만 제도적 개선은 요원하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 의원실의 부당한 노동제도 등은 국회 사무처를 소관 부처로 둔 국회 운영위원회를 통해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운영위에서 실제 논의된 적은 없다.

보좌진 해고 사실을 미리 통보하도록 하는 '면직예고제' 법안도 역대 국회와 마찬가지로 20대 국회에서도 임기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보좌진은 동료와 함께 당선인과 보좌관에 대한 '세평'을 수집하며 어떻게든 좋은 의원실에 들어가기 위한 개인적 노력을 다하고 있다.

국회 본회의 전경/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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