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시(野視視)]2019년 12월31일 황교안의 마지막 하루

[the300]

편집자주야(野)의 시각에서 봅니다. 생산적인 비판,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고민하면서 정치권 안팎의 소식을 담겠습니다. 가능한 재미있게 좀더 의미있게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31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우리시장 내 전통과자집에서 강정 등을 구입하고 있다. 2019.12.31/뉴스1

2019년 12월31일. 기해년 (己亥年)이 떠나간다. 60년 뒤에나 다시 만날 수 있다. 한해의 마지막 혹은 처음은 의도하든 안 하든 의미가 부여되기 마련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신년사'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의 마지막 날 주요 원내 정당 대표들의 공식일정은 특별한 게 없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는 별다른 일정이 없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도 마찬가지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선거법과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통과를 자축하며 오전에 국회 농성장 해단식을 하고 방송출연을 하는 일정을 소화하지만 오후에는 공식 일정이 없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이날 밤 전주시 제야 축제에 참여하는 등 지역일정을 챙기는 정도다.

창당 준비에 바쁜 새로운보수당은 이날 오후 충남도당 창당대회를 열며 2019년 마지막까지 분주하다. 하지만 창당대회 이외에 유승민, 오신환, 하태경 의원 등 주요 인사들의 공식 일정은 없다.

전날인 30일까지 공수처법을 강행 처리하며 볼썽 사나운 국회를 연출한 터라 31일은 유달리 더 조용하게 느껴진다.

다만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달랐다. 이날 오후 3시부터 서울 대림동 우리시장을 방문하는 '민생현장' 일정을 잡았다. 연말연시 재래시장을 방문하는 정치인, 일단 올드(old, 옛날식)하다. 2020년 황 대표의 신년사를 보도자료 형태의 문서가 아닌 유튜브로 먼저 내보냈던 한국당이기에 이 같은 일정이 의아스럽기도 하다.

사전에 계획되지도 않았다. 이날 오전에 추가된 일정이다. 한국당 당직자들이 황급히 황 대표의 동선을 미리 점검하느라 시장에 달려갔다는 후문이다.

전략이 없다는 비판이 또 나온다. 세밑 대표의 일정 하나에 해석이 지나치다 할 수도 있지만 한국당의 2019년을 돌아보면 얘기가 다르다. 

4월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상정을 강행할 때부터 장외투쟁, 6월 말 국회 복귀 결정, 조국 사태 대응, 정기국회 보이콧(거부) 논란, 이어진 임시국회 강행 처리 과정까지. 돌이켜 보면 2019년 내내 한국당 안팎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말이 "전략이 없다"였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야당 복은 최고"라는 말을 1년 내내 들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올 초부터 손혜원 의원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상가 투기 논란, 조국 사태, 유재수 감찰 무마-김기현 하명수사 의혹까지 대형 악재가 줄줄이 터졌지만 여권을 공략했다고 보기 힘들다. 

마침내 성탄절 민주당에서는 "우리도 '야당 복 있다'는 소리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박찬대 원내대변인)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물론 12월31일에 재래시장을 찾은 게 잘못한 건 아니다. 황 대표는 이날 시장을 돌아본 뒤 기자들에게 "국회 농성 이후에 첫번째 일정으로 가장 우리 서민들이 일선에서 접하는 전통시장을 들러서 현황을 살펴보고 구체적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날 밤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하는 등 아수라장 국회 속에 제1야당으로서는 절체절명의 시기다. 난데없는 시장 방문에 담긴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별한 메시지를 내놓은 것도 아니다. 상점 이곳저곳을 들러 "장사 잘 되나"를 묻고 물건을 샀을 뿐이다.

한국당에 2019년은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미한' 한해다. 연초 황 대표의 입당, 전당대회를 거치며 당이 정상화됐다.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황 대표는 1위에 올랐고 당 지지율(리얼미터 기준)은 한때 민주당과 오차범위 이내로 좁혀지기도 했다.

거기까지였다. 2020년을 맞는 지금 남은 건 철저한 패배뿐이다. 얻은 것 하나 없이, 막은 것 하나 없이 선거법 개정과 공수처 설치법을 고스란히 내줬다. 대화와 타협, 정치의 기술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지지율도 박스권에 갇힌 지 오래다.

총선까지 106일 남았다. 전략이 없으면 절박함이라도 있어야 한다. 새해는 달라지길 빌어본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