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기사는 2019-01-29 런치리포트에 포함된 기사입니다
“유엔 및 국제 제재 하에서 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판단이 필요합니다. 일률적으로 어떤 사업은 되고 안 된다고 나누기 어렵습니다.”
올해 국회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현재 대북제재 하에서 가능한 대북사업의 범위를 설명해 달라’는 의원들의 질의에 대한 조명균 통일부장관의 답이다. ‘명쾌한 답변’이 어려운 건 북한과 수출입과 금융거래를 막은 국제 제재, 미국 국내법 십 수 개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기 때문이다.
큰 틀에서 대북제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 △미국 법 △한국 정부의 행정조치 등으로 나뉜다. 이 중 남북 경제협력이 멈춘 계기는 2010년 천안함 피격에 대응해 우리 정부가 내린 5.24 조치(행정조치)다.
그러나 현재는 유엔 안보리와 미국의 제재가 경협 착수를 막는 결정적 ‘벽’이다. 5.24 조치 후 채택된 안보리 추가 결의안과 미국의 독자 제재가 우리 정부 제재를 포함하고 있어서다.
최근 남북이 합의한 대부분의 남북협력 사업에 단서로 붙는 '여건이 되면' 역시 '유엔과 미국 제재가 해제되면'을 의미한다. 대북제재가 어떻게 이뤄져 있고 경협이 시동을 걸기 위해선 이 제재들이 어느 수준으로 완화해야 하는 지를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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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도 반입 못하는’ 초강력 안보리 제재
경협을 가로막는 첫 벽은 안보리 제재다. 안보리 제재는 2006년 북한 1차 핵실험 후 채택된 1718호로 본격화했다. 초반엔 주로 핵·미사일 등 무기 개발을 막기 위한 물자를 통제했다. 그러다 2016년 4차 핵실험에 대응해 채택한 2270호 이후 지난해 12월 만들어진 2397호까지의 결의안은 북한 경제 전반을 봉쇄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북한에 숟가락이나 라이터를 들고 가는 것도 안 될 만큼 물샐틈 없다. 일례로 가장 최근 결의안 2397호는 철강·동·알루미늄 등 대부분의 금속을 북으로 '이전(transfer)' 하는 걸 금했다. '이전'을 상거래가 아닌 단순 반입·반출로 해석하면 제재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 대상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정부가 올해 8월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치르기 위해 유엔 대북제재위원회로부터 포괄적 면제를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현 제재 하에서도 인도적 사업은 가능하지만 행사 준비에 필요한 시설 개·보수나 지원인력이 이동할 때 반입·반출되는 물자 등을 국제사회가 제재 위반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부가 철도조사에 대한 제재를 유엔에서 면제 받는 방식으로 극복한 것도 보수적 해석을 적용한 예다. 제재 대상 품목들은 우리가 쓰고 돌아오는 물품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철도조사가 제재 대상이 아니라던 입장을 바꿔 제재 면제 신청을 했다. 제재를 더 엄격하게 적용하려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조치로 파악된다.
◇한국전쟁부터 시작된 십수겹 美 제재…대북 수출입, 北 IMF 가입 法으로 차단
1950년 한국전쟁 때부터 시작된 미국 독자 제재는 안보리 제재보다 더 높은 벽이다. 북한을 명시한 별도의 법에다 △대량살상무기(WMD) 관련국 △안보위협국 △테러지원국 △공산주의 국가 등을 대상으로 한 법을 포함하면 실질적 북한 제재법만 최소 16개 이상으로 파악된다.
2010년 이후 미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내려진 대북제재들을 법제화한 대북제재강화법(2016년 제정)은 미 대북제재법의 정점이다. 이 법은 북한 관련 대부분의 물품 거래, 자금이전, 기술지원에 연루된 제3국인까지 제재하는 근거를 갖고 있다. 금융 세컨더리보이콧(제3국 제재) 근거도 이 법에 있다.
수출관리법도 대표 장벽이다. 이 법은 이중용도품목(군사용으로 전용가능한 민간품목) 수출 제한을 위한 상품통제리스트에 오른 품목 중 미국산 부품·기술 10% 이상을 포함한 제품을 북한에 수출하려면 미국 뿐아니라 제3국도 미 상무부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이중용도품목의 해석이 광범위해 사실상 대북 투자를 막는 장치다.
북한의 국제통화기금(IMF) 가입을 막는 법도 있다. 공산주의 국가에 IMF 원조(사실상 가입)를 금지한 브레튼우즈 협정법, 테러지원국의 국제금융기구 원조를 막는 국제금융기구법이다. 미 정부가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해도 시장화가 진전되지 않으면 브레튼우즈협정법에 의해 IMF 가입이 어렵다.
여기에 무역법에 따라 미국은 전세계에서 유이하게 북한과 쿠바에만 최혜국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공산주의, 비시장경제, 안보위협국가라는 게 이유다. 최혜국 지위를 부여 받지 못하면 미국으로부터 최고 110%의 보복관세율을 적용 받는다. 북한산 제품의 대미 수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핵화 후 금강산·개성까진 열리겠지만…
그렇다면 경협 재개는 어느 수준의 제재 해제 부터 가능해질까. 북미 협상이 일정 수준 타결 돼 북한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치로 미국이 제재 완화에 나선다면 지난해까지 2년간 채택된 안보리 결의안부터 풀릴 가능성이 높다.
2016년 채택된 2270호 이후의 결의안이 해제되고 미 대북제재강화법이 일부 유예되면 대북 반입 물자 규제가 완화되고 단순 합작이 가능해져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는 가능할 걸로 전망된다. 철도와 도로 사업도 단순 연결은 이 수준에서 미국과의 협상으로 착수할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기존 미 제재가 풀리지 않는 한 민간투자가 수반되는 본격 경협은 어렵다. 북한으로 이중용도품목을 반입하는 게 차단돼 대북 투자가 막힌 게 큰 걸림돌이다. 이중용도품목 반입 금지는 원래 무기 개발을 막기 위한 것이나 금속, 기계류 등 대북 투자사업에 필요한 대부분의 물자도 대상이 될 수 있다.
북한 비핵화가 비가역적인 수준으로 인정 받아 이중용도품목 반입 규정이 완화돼도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높다. 미국 법이 공산주의 국가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을 막고 있어서다. 북한의 의지 만으론 IMF 가입도 어려운 것이다.
◇北 인권, 非시장경제까지 근거 삼은 美 제재
핵·미사일만 제재 근거로 둔 유엔 제재와 달리 미국 제재가 북한 인권, 비(非) 시장체제까지 근거로 뒀다는 점도 난제다. 제재를 없애려면 비핵화 뿐 아니라 인권과 비시장경제 문제까지 해소해야 한다. 미 대통령이 제재 유예(waiver)나 폐기 권한을 갖고 있어도 이와 관련한 객관적인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북제재강화법이 명시한 제재를 최대 1년간 중단하려면 '북한 정치범 수용소 생활조건 향상을 위한 검증된 조치'가 있어야 한다. 완전 폐기를 하려면 모든 정치범 석방, 개방적·대의적 사회 건설 등을 달성해야 한다. 사실상 북한 체제를 바꾸는 가시적인 시일 내 불가능한 조건이다.
정치적 변수도 있다. 일례로 빌 클린턴 행정부는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합의에 따라 1995년 큰 폭의 대북제재 완화를 취할 걸로 예상됐다. 형식적으론 대통령의 명령으로 가능했다. 그러나 당시 미 상·하원을 장악한 공화당과 갈등을 우려한 클린턴은 미온적인 제재완화만을 단행했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 비핵화 뿐아니라, 테러지원국 해제, 공산주의 국가 지위 탈피, 미국과 관계 정상화가 이뤄져야 국제기구를 통한 간접 대북 원조 등이 가능해진다"며 "비핵화가 대북 제재 해제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닌만큼 북한의 시장화를 꾀할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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