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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은 국회기록보존소장. /사진=국회기록보존소 제공 |
사람들은 지나간 것에 주목하지 않는다. 새롭고 눈에 띄는 것에 눈길을 보낸다. 하지만 누군가는 지나간 것을 모으고 정리한다.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회에도 ‘실록’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28일 기준 만 2년 넘도록 국회도서관 소속 국회기록보존소(아하 국회기록소)를 이끌고 있는 이향은 소장.
“황무지 같았다”. 이 소장이 국회기록보존소장으로 업무를 시작할 때 느낀 감정이었다. 그는 “과거 이곳은 국회 기록물을 보존하는 곳이었다”며 “지금은 보존 차원을 넘어 수집·이관·정리·평가·폐기와 함께 기록물 콘텐츠도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업무는 다양해졌지만 인지도는 여전히 낮았다. 그러다보니 국회기록소는 기피부서가 됐다. 1년 이상 국회기록소를 지킨 소장이 거의 없었다. 이 소장은 국회기록소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발바닥이 닳도록 다녔다”고 했다. 그는 “국회의원들을 많이 찾아다녔는데 의원들에게 이곳을 아시냐고 물으면 거의 모르셨다”며 “그나마 들어보셨다는 분도 국회도서관 산하에 있는지는 모르시더라”고 말했다.
결국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고 이 소장은 판단했다. 그는 헌법개정을 두고 국회의 논의가 뜨거웠던 지난 4월 현경대 전 국회의원(5선)으로부터 1987년에 진행된 9차 개헌 관련 기록물을 기증받아 국회도서관에 전시했다. 당시 문서, 자필노트, 신문기사 등이었다.
그는 “여러 번 설득을 해 자료를 받았다”며 “행사 때 전·현직 국회의장들이 ‘나도 자료를 갖고 있을 걸 그랬다’고 하시더라”며 웃어보였다. 이밖에 사료적 가치가 높은 제헌국회 회의록,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특별위원회 회의록 등도 그가 꼽는 대표적인 보존 기록물이다.
지난해부턴 국가적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맞춤형 기록물 콘텐츠’를 공개했다. 올해 8월엔 최저임금제와 관련한 국회의 활동을 전부 모은 기록물을 내놓았다. 다음달엔 ‘근로시간 단축’을 주제로 기록물을 준비하고 있다.
북핵 관련 기록물, 남북정상회담, 동계올림픽 등 현안 이슈도 국회기록소가 주목한 것들이다. 이 소장은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회에서 연설했을 때를 맞춰 공개한 역대 미국 대통령의 국회연설 기록물은 나름 인기를 끌었다”며 “기록소 구성원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짜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뀐 것도 많지만 여전히 할 일이 쌓였다고 이 소장은 말한다. 그는 “국회가 입법부로 정말 중요하다지만 조직의 변천사가 아직 없다”며 “그동안 국회사무처 조직과 상임위원회 변천사를 기록소에서 직접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0년에는 사라질 20대 국회 홈페이지를 ‘웹 아카이빙’(웹 자원에 대한 장기적 접근을 보장하기 위한 보존 활동)하는 것도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다. 그는 “국회가 사라지면 그 당시 홈페이지도 사라진다”며 “이런 자료들이 남아야 입법부가 그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 볼 수 있고, 국민들이 세금을 내도 아깝지 않을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국민들에게 기록소의 역할을 제대로 보여줄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그는 “내년 임시의정원 100주년을 앞두고 홍진 임시의정원 의장이 기증한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며 “임시정부를 이끈 백범 김구 선생의 자료는 6.25 전쟁 때 많이 소실됐지만 홍 의장 자료는 남은 것이 많아 이 자료들을 역사적으로 남기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억은 기록으로 남고, 기록은 역사로 남는다”며 “기록들을 방치하지 않고 역사로 남기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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