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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승현 기자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나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두 사람 모두 솔직, 파격 스타일로 ‘돌발 발언’을 즐긴다.

트럼프 대통령은 '럭비공'의 아이콘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상대는 시간과 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나올 ‘돌발 발언’에 대비해야 한다. 상대방의 면전에서 직설적 발언을 하는 것은 기본이다. 순식간에 트위터에 멘트를 날린다. 논리보다 즉흥적인 감정에 솔직한 '트럼프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6월 문재인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첫 정상회담을 할 때는 무난하게 만남이 잘 이뤄지는 듯 싶었다. 그런데 만찬 회동 직후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에는 "새로운 무역협정에 대해 논의했다"는 내용의 짧은 글이 올라왔다. 당초 북핵 등 안보 이슈를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다루려 했던 우리측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기습적으로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 의제를 끄집어내며 무역 문제 역시 회담의 한 축으로 자리잡게 했다.

지난달 백악관에서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선 더 직설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 앞에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상관이 없다"며 "6월12일이 아니더라도 협상은 언제든 가능하다"고 밝혔다. 북미대화를 중재해온 문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기습으로 느낄만한 발언이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한 차례 취소하며 자신의 돌발 발언이 '말'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 위원장도 국제무대에서 떠오르는 '럭비공'이다. 4·27 남북 정상회담 당시 군사분계선 위에서 만난 문 대통령의 손을 잡고 북쪽으로 넘어오게끔 유도하는 모습은 회담의 압권이었다. 회담에선 "문 대통령이 (북한에) 오시면 솔직히 걱정스러운 게 우리 교통이 불비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다"고 깜짝 고백을 하며 놀라움을 줬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이같은 돌발 발언을 즐겨 하는 것은 일종의 '협상의 기술'이라는 평가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의 기습적인 북미 정상회담 취소는 김 위원장이 오히려 협상을 위해 저자세를 취하는 모양새를 연출했고 북한의 배후에 있는 듯 했던 중국까지 협상판에서 물러나게끔 했다. 돌발 발언으로 협상의 주도권을 잃지 않는 것은 북한 정치인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돌발'은 유머감각으로도 이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문 대통령의 중재 외교에 높은 점수를 주면서 문 대통령을 쳐다보며 "내가 잘했나. 이 이상 잘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해 좌중을 웃게 만들었다. 김 위원장도 냉면을 평양에서 판문점까지 가져왔음을 언급하며 "멀리서 가져왔다면 안 되갔구나"라며 여유를 보였다. 다만 양 정상의 유머감각은 협상의 '도구' 격이어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같은 달변에서 나오는 친근함은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호불호’가 강할 수 있다는 의미다.

돌발적이고 즉흥적인 발언은 오히려 적대적인 분위기를 만들 가능성도 있다. 실제 몇개월 전만 해도 양 정상은 서로를 "늙다리 미치광이", "로켓맨"이라고 원색적 비난을 했던 사이다. 향후 비핵화를 향한 긴 여정의 시작과도 같은 만남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돌발 발언이 오갈 경우 분위기가 냉랭해질 수도 있다.

양 정상의 '진정성'이라는 부분을 측정하기 어려운 것도 이같은 우려에 힘을 보탠다. 트럼프 대통령은 72세 평생 동안 진정성 보다는 철저히 이해타산에 맞게 말하고 움직여온 인물이다. 김 위원장의 경우 체제보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비핵화에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는 아직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이 최근 대화 국면에서 친근감을 다소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진정성은 핵협상이 완전히 타결된 이후에나 평가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