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전 개헌은 쉽지 않다. 물리적 시간도 빠듯하다 못해 부족하다. 그런데도 개헌 논의는 계속된다. 일부 정치권의 논의 속도는 오히려 빨라진다. 개헌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정치 셈법도 깔려있다. 두 가지 노림수다. 먼저 대선을 전후로 '반(反) 문재인' 전선 구축을 통한 정국 주도권 확보다. 또 대선 이후 예상되는 정계개편 속에서 소수당들의 생존 전략도 맞물려 있다.

◇3당 ‘단일 개헌안’으로 민주당 포위 =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3당은 자체 개헌안을 마련한 상태다. ‘분권형 대통령제’란 큰 틀은 같다. 이를 공통분모로 ‘단일 개헌안’을 만드는 데 뜻을 같이 했다. 개헌에 신중한 입장인 더불어민주당을 포위해 압박하는 모양새다.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김무성 바른정당 고문,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 3명도 분권형 개헌 불씨 살리기에 나선다. 이른바 ‘제3지대’를 통한 개헌에 의기투합한 이들이다.

이들이 상정하는 변곡점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다. 지금은 ‘탄핵’ 이외 이슈가 설 자리가 없지만 헌재 판결 후 정국은 달라질 것이란 판단이다. ‘개헌’이 ‘탄핵’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는 기대도 깔려 있다. 탄핵정국 속 민주당에 급속히 쏠렸던 정치지형이 균형점을 찾아 재편될 수 있다는 점을 내다보고 개헌을 매개로 세력 재편을 모색하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반문전선', 대선 후 내다보나 = '개헌전선'은 범여권과 야권의 '비문(비문재인)세력' 간 연대 성격이 강하다. '탄핵정국'을 거치며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대세론'을 굳히고 있고 이를 추격하는 2, 3위 후보마저 민주당 인사들이다. 이런 가운데 개헌 세력들이 뭉쳐 판을 흔들어보자는 게 개헌의 노림수로 풀이된다. 최근 정치권 기류를 보면 오히려 대선 이후 '반문' 지형을 활용한 주도권 확보를 위해 개헌을 동력으로 삼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민주당이 대선 전 개헌에 반대하고 있지만 개헌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있는 만큼 ‘분권형 개헌’을 무기로 압박 수위를 높여가며 대선 후를 대비하는 전략이다. 차기 정권 초부터 개헌을 두고 정치권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 등 여권은 무너진 지지층 복구를 위해, 국민의당은 독자 세력 유지를 위해, 각각 개헌을 앞세워 반문 투쟁에 나서는 그림이다. 한 여권 인사는 "현재 정치권에서 대통령 임기 3년 단축 개헌안을 주요한 내용으로 다루고 있는데 다음 정권에서 야당 세력들이 합심해 선거 주기 일치를 위한 임기 단축을 요구하는 개헌안을 압박할 수도 있는 것"이라며 "개헌은 '문재인정권'을 내다본 전선"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제만 아니면…' = 헌정 사상 보수정당의 분당까지 이뤄지며 성립된 다당 체제가 인물 중심의 '대통령 중심제' 대신 내각제에 가까운 분권형 개헌 논의를 촉진시키는 또다른 원인이다. 우리나라 정당 역사를 살펴보면 주요 대선주자를 중심으로 '헤쳐모여'가 반복돼왔다.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와 함께 '카리스마형 지도자' 시대의 종언으로 인물 중심의 정당 유지가 어려워졌다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이후 강력한 대선주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여권이 더 답답하다. 현재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약 90석과 40석을 나눠 갖고 있지만 대선 결과에 따라 어떤 모양으로 남을 지 예단하기 어렵다.

오히려 의회가 권력을 나눠 갖는 분권형 권력구조에선 영남을 지역기반으로 해 안정적 의석수를 확보하는 당이 생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호남을 지역기반으로 하고 있는 국민의당도 마찬가지다. 국민의당은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민주당에 흡수돼 당 기반을 잃어버리는 상황을 우려한다. 개헌 후 권력구조가 바뀌면 국민의당의 독자 생존 환경이 나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