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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중견기업에 입사한 A씨(여)는 사내 성희롱 예방교육에 참석했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잠깐 동안 관련법령과 고충상담 절차 등을 설명하던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가 갑자기 노후보장 얘기를 꺼낸 것. 그러다 갑자기 다른 강사들이 나서더니 본격적으로 은행 저축상품에 대한 설명이 시작됐다. A씨는 "강사들끼리 무슨 상품에 가입하면 수십만원어치 선물을 준다는 식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영업을 하더라"며 "이게 무슨 성희롱 예방교육인지 어리둥절했다"고 말했다.
#자동차부품을 제조하는 중견기업 직원 B씨(여)는 최근 사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고 불쾌감에 몸을 떨었다. 중년 남성인 강사가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면서 "요즘 여자들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서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사실상 언어 성희롱을 일삼았다. B씨는 "강사가 직접적으로 성희롱 사례나 방법을 설명할때는 얼굴이 화끈거려 듣기 힘들었다"며 "대체 강사의 질은 누가 검증하고 자격을 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성희롱 예방교육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사가 사설 교육업체와 제휴해 공짜 교육을 미끼로 영업활동을 벌이거나 무자격, 내지는 자격미달 강사가 교육을 진행하는 경우도 적잖은 상황이다. 아울러 연 1회 교육을 의무화하도록 하는 남녀고용평등법이 시행된지 상당기간이 지난 만큼 법을 다시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개편이 필요하다는 거다.
◇성희롱 문제 여전..예방교육 실효성 있나=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맡은 93개 교육기관을 일제 점검한 결과 25곳에서 부실 교육이 적발됐다. 이 중 운영부실이 심각한 17곳에 대한 지정을 취소했다. 대부분 법정 자격이 없는 강사를 고용했거나 교육실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들 부실 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기업들에까지는 조치가 미치지 못했다. 모두 교육을 수료한 것으로 처리됐다. 예방 교육 효과가 있을리 만무했다.
정부는 고용부 장관이 승인하는 강사양성교육을 받았거나, 고용부 장관이 비용을 지원하는 양성교육을 수료한 강사만을 법정 자격을 갖춘 강사로 본다. 하지만 중견중소기업에는 하루에도 수십통의 성희롱 예방교육 무료 실시 안내 전화가 온다. 대부분 무자격 강사들이 금융상품 영업 등의 목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제안하는 경우다.
정부는 단속에 이어 대안 마련에 고심하다 지난달 교육동영상과 매뉴얼 등을 활용해 각 사업장에서 직접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도록 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대응 매뉴얼과 교육동영상, 표준교육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고 경제5단체와 합동으로 중소사업장을 중심으로 홍보에 나섰다. 강사 관리가 안 되니 셀프로 하라는 거다.
전문가들은 형식적 교육만으로는 직장내 성희롱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고용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1년까지 매년 최소 672개(2001년), 최대 1714개(2006년)의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매년 예방교육을 실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간 161건(2001년)에서 최대 908건(2008년)에 달하는 성희롱 사건이 확인됐다.
연도별 고용평등법상 성희롱 신고 사건수만으로도 2007년 106건에서 2008년 147건, 2009년 177건, 2010년 174건, 2011년 208건으로 증가세가 확인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추상적인 교육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성희롱을 줄이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돼야 한다"며 "사용자에 관념적 책임이 아닌 실질 책임을 부과하고 조치자를 격리하는 등 결과를 확실히 명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성평등 실효성 제고 법개정 필요=이를 위해서는 남녀고용평등법의 실효적 개정이 필요하다. 1987년 마련된 남녀고용평등법은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 사용자 책임을 명시한 의미있는 법이다. 사업주가 피해근로자에게 불이익한 조치를 내리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며 양성평등에 대한 사회 요구가 높아지고, 이른바 '파워 하라스먼트(권력을 이용한 학대)' 예방 등 새로운 양성평등 보장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상태다. 이를 모두 포용할 수 있는 법개정이 필요하다는 거다.
박 교수는 "성희롱의 피해자는 대부분이 여성인 경우가 많은데, 사용자 중심의 사후조치에 대한 정부의 감시가 부실할 경우 2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피해자가 회사를 그만두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피해자에 대한 인사조치가 있을 경우 정말 피해자의 의지가 100% 반영됐는지를 추적해 검증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행법상 책임소재가 복잡하다는 점도 문제다. 일반 직장내 성희롱 예방 및 교육이나 피해자 구제는 고용부 산하 남녀고용평등법 소관이지만 국가기관 등의 성희롱 예방교육 등은 여성가족부의 양성평등법에 따른다. 또 국가기관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피해자 구제는 국가인권법에 따르도록 돼 있다.
정부도 법 개정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고용부는 20대 국회 개원에 따라 하반기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을 통해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의 금융상품 판매 등 행위를 금지하고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시 조사과정에서 보안유지 책임을 명확히 해 2차 피해를 예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관련 개정안이 내주 입법예고될 전망이다.
김종철 고용부 여성고용정책과장은 "법 개정을 통해 예방교육을 빙자한 금융상품 판매는 교육으로 인정하지 않고, 사업주가 피해자에 대한 보안책임을 다하지 않았을 경우 처벌하는 규정을 신설토록 할 것"이라며 "교육 내실화와 더불어 연 1회 예방교육이 남녀차별과 일가정양립 문제 해결 등에 대한 공론화의 장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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