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의 '봉추선생' 김재원…"협상 한 두번 해봅니까"

[the300][국회의원 사용설명서] 새누리당 협상맨 김재원 의원

편집자주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과 관심사, 경력을 입체적으로 분석해 드립니다 . 의원의 경쟁력과 정치적 미래,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심부름꾼'을 어떻게 '사용'해야 우리 사회가 한걸음 나아가고 우리의 삶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지, 분야별 '파워분석'을 통해 보여드립니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협상 한두 번 해봅니까?"


20일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인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같은 당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쏘아 붙였다.


김 의원은 황 장관이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야 간사와 합의한 '누리과정 예산 5600억원 국고 지원' 내용을 전면 부인하고 "정부에서 결정한 이가 있다면 이는 월권"이라며 황 장관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선수(選數)'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국회에서, 5선에 집권여당 대표를 지낸 황 장관이 재선의 원내수석인 김 의원에게 '망신'을 당한 셈이다. 나이로 따져도 김 의원은 17살 아래인 데다, 서울대 법대 후배다. "간이 부었다" "부총리위에 부대표있다"는 말이 나왔다. 야당은 "새누리당이 김재원당이냐"며 반발했다. 

 

새누리당은 김재원당이 맞다. 적어도 협상 부문에선 그렇다. 법률지식으로 무장한 김의원은 같은 당 의원들조차 혀를 내두르는 '전략 브레인'이다. 외모는 보잘것 없지만 비상한 머리를 가진, 삼국지의 '봉추(鳳雛, 봉황의 새끼)'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야당은 김 수석의 배후로 청와대를 지목하고 있으나, 특유의 전략가적 기질에 '친박 핵심'라는 자신감이 더해진 결과로 보는 게 더 적절하다. 김 의원은 원내수석이 된 뒤 주요 쟁점사안에서 협상을 진두지휘하며 야당을 공략했다. 그렇게 세월호특별법의 파고도 넘었다.

김 의원은 세월호특별법 협상 당시엔 김무성 대표가 특검추천권과 관련 야당에 비공식적으로 제안한 내용을 부인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안도 단칼에 거절했다. 야당은 물론 부총리, 당대표, 국회의장까지 불편하게 했지만, 새누리당은 김 의원이 원내수석으로 부임한 5월 이후 야당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끌어나가고 있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사진출처=김재원 의원 홈페이지


[키워드→법률전문가, 전략기획통]
'직책 프로필'을 들여다보면 전략기획통의 면모가 더 드러난다. 그는 국회에 들어와 △한나라당 전략기획위원회 위원(2004) △한나라당 기획위원회 위원장(2005년) △한나라당 박근혜 대통령경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기획단장(2007) △새누리당 전략기획본부 본부장(2013) △새누리당 지방선거 기획위원회 부위원장(2014)을 맡았다.

김 의원은 '협상' 때문에 행정고시 합격 뒤 7년 간 해오던 중앙부처 공무원 생활을 그만뒀다. 그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미국 변호사들에게 번번이 지는 걸 보고 '법 전문가'가 되기 위해 사법고시에 도전했다.

짧은 기간 검사로 재직한 뒤엔 다시 변호사로 직업을 바꿨다. 서열의식이 강한 검사조직에서 '늦깎이 말석검사'로 지내는 것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 변호사 일로도 무력감을 느끼던 2003년 정치권을 뒤흔든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됐고, 국회의원을 꿈꾼다. 

김재원 의원의 대학시절/사진출처=김재원 의원 홈페이지

[키워드→박근혜, 공천학살]
김 의원은 2004년 총선에서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의 '젊은 피' 수혈로 영입돼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는 박근혜 후보를 지지, 자연스럽게 친박으로 분류됐다.

그는 후보 캠프에서 이명박 후보 검증 대리인 등을 맡아 친이계에겐 눈엣가시로 낙인 찍혔다. 그리고 2008년 공천학살 당시 친박의 핵심인물로 지목돼 공천에서 탈락한다.

김 의원은 당시 쓴 글에서 "공천에서 탈락한다는, 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현실로 발생했다"면서도 "어차피 5년 후엔 제가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탈당을 하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할 것"이라며 훗날을 기약했다.

예고대로 그는 4년간 절치부심 끝에 19대 국회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우리(친박계)는 대통령 만드는 것으로 소임을 다했다"며 "이제는 정치를 잘하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사진출처=김재원 의원 홈페이지

[키워드→협상의 기술]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에게도 협상과 관련한 아픈 기억이 있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의 일이다.

김 의원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경선후보 선거대책위 기획단장으로서 경선판도를 좌우하는 '경선 규칙' 협상에서 전화 여론조사 가중치를 1:6으로 하는 안에 덜컥 합의했다. 이는 당원투표에서 승리한 박근혜 후보를 이명박 후보가 누르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는 경선이 끝난 뒤 쓴 글에서 "아침 먼동이 터올 때까지 어두운 방구석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며 "경선룰 협상의 최전선에서 여론조사가 투표에 끼어드는 것을 막지 못한 어리석음과, 역량부족으로 여론조사 결과가 뒤진 것이 아닌지를 탄식했다"고 밝혔다.

[대표 법안]
김 의원은 의정활동 면에선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야심차게 발의한 법안들이 국회 계류 중인데, 그 중 하나가 담뱃값 인상을 골자로 한 '지방세법 개정안'이다.

그가 지난해 3월6일 발의한 지방세법 개정안은 담뱃값 2000원 인상을 골자로 한다. 최근 여야가 논의 중인 담뱃값 인상안을 이미 1년 전 발의한 셈인데, 여론의 포화로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했다.

또 다른 제정법안은 지난해 7월16일 발의한 '크루즈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다. 크루즈산업 육성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 추진사업이지만, 근거가 되는 제정법은 여야의 극심한 이견으로 현재 국회법제사법위원회에 묶여있다.

[라이프→'아버님은 자장면이 싫다고하셨어']
김 의원이 쓴 신문 칼럼 등에는 어린 시절 가난을 추억하는 대목이 유난히 많다. 그는 경북 의성의 오지, 가장 산골인 안평면에서 자랐다.

"면사무소옆 공터에서 추곡수매를 마치고 나면 아버지는 중국집에 가서 거금 110원이나 하는 자장면을 사주셨다. 자장면 한 그릇만 시켜 내게 먹이고, 아버지는 단무지를 안주로 소주 한 병을 마셨다. 속이 불편하다며 자장면을 나에게만 먹으라고 하는 이유를 몰랐었다. 그런 날이면 우리는 면사무소에서 한 시간이나 걸리는 집까지 걸어갔고, 아버지는 '나처럼 힘들게 농사 짓지 말고 대처로 나가 공부하라'고 하셨다."

김 의원은 4남매 중 막내인데, 형은 김원규 우리투자증권 사장이다. 김 사장은 증권사 신입사원 시절 카드 돌려막기를 하면서 김 의원의 대학 학비를 댔다. 

김재원 의원의 어린시절 / 사진출처=김재원 의원 홈페이지

[라이프→ '열하일기']
김 의원은 18대 공천에서 탈락하고 중국으로 가서 북경대 국제관계학원 객원교수로 활동했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빠져든 게 이 무렵이다.

그는 지난해까지 5년간 연암이 밟은 연행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답사한 뒤 그 기록을 홈페이지와 이메일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사람들→친박계 의원들과 친분, 김무성과는]
김 의원은 친박 핵심 멤버로 당내 친박계 의원들과 두루 친하다.

당 대표인 김무성 의원과의 친분(?)은 김재원 의원이 지난해 6월27일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알려졌다. 김재원 의원이 김무성 의원의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대선 이전 입수' 발언을 유출한 사람으로 지목돼 이를 해명한 것.

"저는 요즘 어떻게든 형님 잘 모셔서 마음에 들어볼까 노심초사 중이었는데 이런 소문을 들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형님께서 무엇이든 시키시는 대로 할 생각이오니 혹시 오해가 있으시면 꼭 풀어주시고 저를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김 의원의 지역구는 경북 군위군·의성군·청송군이다. 지난달 30일 헌법재판소가 선거구 간 인구 편차를 2대 1까지 허용한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김 의원의 지역구도 하한선 미달 선거구에 들어갔다. 원칙대로 인접 지역구와 통합된다면 본인 또는 옆 지역 국회의원의 '자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

[요주의!]
김 의원은 2012년 '취중 막말' 논란으로 진땀을 뺐다. 당 대변인에 내정된 날 기자들과 인사하는 자리에서 '박근혜 후보의 정치는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한 것'이란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기자들이 이를 다른 곳으로 전하자 욕설을 한 것.

김 의원은 새누리당 관계자들에게 "그런 얘기를 한 것이 맞느냐"는 확인전화를 받고 기자들에게 "식사도중 사적인 얘기를 보고하느냐. 야 이 ****들아. 너희가 기자맞냐. 너희가 대학나온 **들 맞냐"고 말해 하루 만에 대변인직에서 사퇴했다. 김 의원은 사건 이후 "부끄럽다, 당시에 이성을 잃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프로필]
△경북 의성(50) △대구 심인고-서울대 법대-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행정고시 31회 △국무총리실 사무관 △사법고시 36회 △부산지검·대구지검포항지청·서울지검 검사 △김재원 법률사무소 변호사 △17대·19대 국회의원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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