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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때 공약만 나오면 뭐하나.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 안되면 휴지조각에 불과한데..."
6·13 지방선거에서 쏟아진 여야와 각 지역 후보들의 공약이 대부분 국회에서 계류법안으로 잠자는 정책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지거나 이색공약이 아닌 이상 이미 정치권에서 오래 논의됐던 것들이다. 선거 때마다 단골 공약을 되풀이하거나 후보들마다 차이가 없는 공약들을 남발하지 말고 정치권 전체가 정책 입법에 더 충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우선 순위 공약은 대체로 이미 국회에서 관련 법안들로 다뤄졌다. 민주당이 선관위에 제출한 1순위 공약인 청년 일자리 창출 정책 중 청년고용안전망 강화를 위한 실업급여 지급기간 연령별 차등화 폐지는 이 당 강병원 의원이 20대 국회 개원 직후인 2016년 8월 발의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이다.
30세 미만 청년들에게 차등 적용한 실업급여 지급기간을 다른 연령대와 동등하게 최장 240일로 연장한 이 법안은 그해 11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됐지만 20개월 가까이 계류법안으로 잠자고 있다. 집권여당이면서도 아직까지 처리하지 못한 정책을 선거 공약 1순위로 제시한 셈이다.
자유한국당의 우선순위 공약인 서민·중산층 지원 중 2000cc 미만 승용차 유류세 인하는 이 당 윤한홍 의원이 지난해 말 발의한 개별소비세법 개정안과 교통·에너지·환경세법 개정안에 들어 있다.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수 차례 심사했지만 본회의 상정이나 처리는 깜깜무소식이다.
개별 후보들의 공약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는 △가맹점·대리점·하도급 등 중소상공인 보호행정 강화 △제조업·건설업 불공정거래 근절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등을 공약했는데 모두 입법 사안으로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 △대규모유통업에서의거래공정화법 △하도급거래공정화법 등의 개정이 필요하다. 물론 관련 법안들 수십 건이 계류 중이다.
후보들 스스로도 선거 공약보다 국회 입법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20대 국회 현역의원 출신인 김경수 민주당 경남지사 후보는 2016년 국회에 들어가자마자 초·중·고등학교 무상급식을 위한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는 최근 TV토론에서 "학교급식법을 발의하면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공동발의를 부탁했지만 단 한명도 서명하지 않았다"며 "경남 학부모 약 60만명이 학교급식법 개정을 국회에 청원해 법안을 제출했는데 그대로 잠자고 있다"고 했다.
그의 경쟁자인 김태호 자유한국당 후보도 이번 선거에선 무상급식을 공약했다. 이에 김경수 후보는 그에게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태호 후보는 "반드시 의원들을 설득해 학생 급식 문제를 더이상 우려 없이 하겠다"고 했다.
결국 후보들이 공약을 해도 국회의원들을 설득해야 공약이 실현되는 셈이다. 지방선거 단골 공약인 지방분권도 모두 입법 사안이다. 근본적으로는 헌법을 개정해야 하고 지방분권·지방행정체제개편 특별법, 국가균형발전특별법 등 수 많은 관련법을 국회가 처리해야 한다.
김문수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의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 공약 등 이번 선거에서 야당이 주로 공약한 재건축 규제 완화 역시 입법이 뒷따르지 못하면 공염불에 그칠 공약이다. 여야가 공히 공약한 여성인권 증진도 남녀고용평등·일가정양립지원법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20대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만 88건이지만 원안가결된 것은 단 1건에 불과하다.
한국 정치는 선거에서 당선된 후보의 공약이 국회 입법을 통해 실현되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대통령 선거 공약도 마찬가지다. 정치권의 입법 방향이 국민들의 바람과 반대 방향인 것이다. 신현기 정책학 박사는 "의원들의 의사결정이 여론과 반대방향으로 이뤄지는 것은 의원들의 낮은 반응성 때문"이라며 "대결과 갈등의 정치문화, 의원들의 제한된 자원, 중앙집권적 정당구조, 폐쇄적인 법안심의제도 등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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