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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승현 기자

한 시대가 끝나고 새 시대가 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오는 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한다.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핵 해결의 물꼬를 트면 한반도를 둘러싼 질서는 근본부터 뒤집어질 수 있다. 좀처럼 '안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지구상 마지막 냉전 시대가 끝나고 마침내 '경제'를 최우선으로 둘 수 있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면담하고 "오는 1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겠다. 빅딜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미대화 관련 ‘또는(or)’으로 언제나 여지를 뒀던 과거와 달리 "우린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만난다"고 못박았다. 사전 실무협의에서 조율한 의제와 세부사항을 '확인'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이 한 차례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제2, 제3의 북미 정상회담을 시사했다. "종전선언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혀 문재인 대통령의 합류 가능성도 열었다. 연내 종전선언은 남북의 약속이기도 하다.

한반도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러나 반드시 가야 할 새 시대에 가까이 가면서 정부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는 북미 정상회담 이후를 대비해 철도·발전 등 다방면 경제교류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내각에 한반도 신경제지도 실현을 위한 준비를 직접 지시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오는 가을 예정된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주로 경제가 논의될 것"이라며 "경협 관련 참모들이 대거 방문하지 않겠나. 남북이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고 설명했다.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의 큰 틀이 잡히고, 더 나아가서는 남북미 3국간 종전선언의 합의가 이뤄질 것까지 염두에 둔 것이다. 이후 단계적인 비핵화 이행 및 대북제재 해제가 속전속결 진행될 게 유력하기 때문이다.

북한과 경협은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추진·이행한 적이 있지만 북미정상회담 이후는 완전히 다른 판이다. 첫째 화두부터 '대결'에서 '평화'로 바뀐다. 늘 경협에 우선하던 '북핵' 문제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경제'가 대신한다. '안보' 보다 '경제'가 앞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구도다. 국제정치에서 '힘'의 컨셉이 '안보→경제→구조→체제 재생산'으로 이동할 때, 평화체제를 구성할 수 있다고 한다. 북미 정상이 북핵폐기로 '안보' 이슈를 해결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평화로 가는 첫 계단을 밟는 걸 의미한다.

둘째 대한민국이 보다 능동적으로 동북아 국제정세에 대응할 수 있다. 군사안보적 힘이 강할 때 한국과 같은 중진국은 패권적인 힘에 종속된다. 과거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그랬고 냉전 이후엔 G2(미국·중국) 사이에서 그랬다. '한미일'과 '북중러'라는 울타리가 북한의 비핵화를 계기로 헐거워지면, 각 '플레이어'들간 교류가 핵심축이 된다. 실제 남북이 화해무드를 보이며 3각대립이 약화되자 문재인 정부가 북미 정상회담까지 중재를 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이보다 더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게 가능하다.

여기까지는 문재인 정부의 구상대로다. 남북이 선언적인 비핵화를 한 후, 북미가 비핵화 이행에 합의해 남북미가 종전선언에 뜻을 모으는 것까지는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남북미중 4자가 종전선언에 도장을 찍고, 남북미중일러 6자가 경제적 평화체제를 구성한다는 것도 큰 그림에 있다.

갈 길은 여전히 멀다. 4자, 6자 협상까지 거쳐 경제적 평화체제를 하나의 규범으로 만들 때까지 무수한 변수를 극복해야 한다. G2간 세력균형이라는 동북아의 구조가 여전한 상황에서 중국까지 포함한 평화협정을 달성해야 하는 것은 당면한 숙제다. 미중관계를 안보의 영역에서 경제의 영역으로 지속적으로 유인할 수 있는지 여부가 다음 도전이 될 것이다.

북한에 대한 경협을 지렛대로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대한민국의 외교역량도 시험대에 오른다. 북핵이라는 변수가 사라지면 북한에서의 경협을 놓고 한미일중러 5개국이 경쟁하는 구도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이다. 남북관계 뿐만 아니라 한미, 한중, 한일, 한러관계를 다각적으로 구축하며 대응하지 않으면 경협 경쟁에서 오히려 우리가 뒤처지며 주도권을 상실할 수 있다.

외교와 경협을 능동적으로 추진한다는, 새로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은 "북핵을 둘러싼 전체적인 국제환경이 바뀔 것"이라며 "우리는 일종의 경쟁적 환경에서 남북경협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본 적이 없다. 이제 이런 고민을 전략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