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끓던 정치청년에서 '서민경제전문가'로…이진복 정무위원장

이미지 크게보기

정치를 해야겠다는 거창한 꿈이 있던 건 아니었다. 한 때는 축구 선수를 꿈꾸기도 했다. 그저 피끓는 마음에 유신시절 야당 인사의 선거운동을 자발적으로 시작한 것이 정치 입문의 계기가 됐다. 그래서일까. 보수 정당 내 진보적 인사라는 평가가 그를 따라다닌다. 국회정무위원장을 맡고 있는 자유한국당 이진복(60)의원의 얘기다.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은 지난 23일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이 위원장을 만났다. 이 위원장은 1981년 신군부의 서슬퍼런 총칼이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있을 당시 야당 의원이던 박관용 전 국회의장을 도우며 정계에 첫 발을 디뎠다. “11대 총선 당시 야당 선거 운동원들이 명함이라도 돌리면 꼭 잡혀갔다. 상대방은 돈봉투를 돌려도 괜찮고 야당후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는 박 전 의장의 회고처럼 당시 야당 국회의원을 돕는다는 것은 단순한 선거운동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이 위원장은 1978년 10대 총선 당시 주위 지인들을 모아 자발적으로 신민당 이기택 후보의 당선을 주장하다 당시 국회 전문위원이었던 박 전 의장을 운명적으로 만났다. 박 전 의장은 그 후 이 위원장을 세 번이나 찾아와 자신을 도와달라고 ‘삼고초려’했다. 이후 박 전 의장이 정계를 은퇴할 때까지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정치를 배웠다. 그래서 박 전 의장은 이 위원장을 이렇게 표현한다.

“내 동생같은, 내 분신같은 친구다. 1981년 야당이란 탄압과 고난을 무릅쓰고 평생 동지의 길을 선택해준 고마운 동지다”(저서 '꿈을 꿀수록 희망은 커진다!'에 실린 박관용 전 국회의장의 격려사)

군부독재 시절 야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때문인지, 이 위원장은 진보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비록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정에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을 탈당했다 대선 막바지 바른정당을 다시 탈당 하면서 ‘철새’정치인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지만 정책에 대한 그의 신념은 확고하다. 당은 그저 신념을 실천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게 그의 견해

다.

그에게 ‘건강한 보수’의 모습에 대해 묻자 “지금보다 훨씬 왼쪽으로 내려와야 한다”며 “중도보수를 끌어안지 못하면 보수는 성공하지 못한다. 극우와 극좌를 제외한 나머지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력하면 정당한 댓가를 얻을 수 있도록 만들고 여러사람에게 노력의 댓가가 돌아가도록 만드는 것이 내 일”이라며 분배를 강조하기도 했고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중소기업보다 소기업 정책에 우선목표를 두고 의정활동을 해야한다”며 동반성장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자신을 따라다니는 여러 수식어 중 ‘서민경제 전문가’라는 별칭을 좋아한다. 그래서 발의한 법안중 가장 자랑스런 법안을 카드수수료 인하를 이끌어낸 ‘여신전문금융업법’으로 꼽았다. 그는 “초선의원 시절 중소자영업자에 대한 카드수수료가 대형가맹점에 비해 높았기 때문에 중소자영업자들의 부담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이 관심을 갖지 않고 있었다”며 “법개정을 통해 4%에 육박하던 중소상공인에 대한 카드수수료를 대형가맹점 수준인 2%이하로 인하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위원장은 자신이 서민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가지게 된 이유를 성장배경에서 찾는 듯했다. 그는 “저는 의회주의자이고 합리적 결정을 중시하는 타입”이라며 “많이 가진 사람도 아니고 많이 배운 사람도 아니라서 그런지 천천히 가더라도 소외될 수 있는 부분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 인생로드맵”이라고 설명했다. 

‘견제’와 ‘균형’도 이 위원장이 정계 입문한 뒤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가치다. 갓 스물을 넘긴 나이에 이기택 후보를 도운 이유에 대해서도 이 위원장은 “유신시절 투표장에 두 번 들어가는 동네 아주머니를 보고 야당의 중요성에 대해 눈을 떴다”고 설명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에도 여야의 거센 ‘공방전’ 속에서 고성 한 번 없이 청문회를 잘 이끌어 누리꾼들 사이에서 큰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 위원장에게 최근 관심사를 묻자 가슴속에서 주섬주섬 수첩하나를 꺼내들었다. 지역구 주민들을 만나거나 지인들을 만나서 대화하다가 생각날 때마다 적어두는 수첩이라고 했다. 그는 통화스와프, 외환거래 수수료, 대부광고업 등 관련 키워드를 중심으로 빽빽하게 메모 돼있었다. 그는 “야당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같은 정치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도 많지만 실생활에서 놓치고 지나치는 부분들, 사각지대가 많다”며 “얼른 정무위원장 내려놓고 민생현안에 몰두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이미지 크게보기

23일 이진복 정무위원장을 국회 의원회관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위원장은 핀테크 산업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 가계부채 문제 해결 대책에 대해 최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사진=이동훈 기자

“4차 산업혁명은 M&A(인수합병)다. 서로 다른 것을 합해 더 좋은 것을 만드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금융이 들어간다. 4 차산업혁명의 성패는 금융에 달렸다”

지난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이진복 정무위원장은 “지금 금융 분야를 보면 고전적 업무 형태에 매몰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과연 4차산업혁명을 준비하고 있는지. 출발선상에서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했다.국회 정무위원회는 '민생 경제'의 맥(脈)을 짚는 상임위다. 서민을 보호하고 재벌 대기업의 경제력 남용을 견제해 공정한 경제 성장의 틀을 만드는 게 주요 임무인만큼 이 위원장의 어깨도 무겁다.

이 위원장은 “올해가 외환위기 이후 꼭 20년이 지나는 해인데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 외환위기 시절만큼이나 쉽지 않아 보인다”며 “대한민국 경제 시스템이 혁신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대대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이상 대한민국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그러면서 그는 핀테크(Fintech) 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개혁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이 위원장은 “중국의 인터넷뱅크인 위뱅크 등의 성장속도를 보면 우리나라가 너무 늦게 가고 있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든다”며 “은산분리에 기업의 사금고화 논란을 적용하는 것은 엉터리”라고 말했다.

그는 “은산분리 원칙의 핵심은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잡아먹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라며 “기업이 돈을 투자해 돈을 벌수는 있지만 기업이 소액대출 중심인 인터넷전문은행을 통해 기업이 소액대출을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은산분리 완화 때 대주주 대상 신용공여를 제한하면 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미 국회에는 대주주 대상 신용공여를 0~10%로 제한하도록 하는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이 발의돼 있다.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 전문은행이 P2P, 크라우딩 펀드 등 좀 더 창의적인 사업에 도전하는 것은 은산분리 완화 없이 현행법으로도 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걷기도 전에 뛰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일축했다. 그는 “카카오뱅크가 해외송금수수료를 1/10로 낮추자 시중은행도 거기에 맞춰 따라가고 있지 않냐”며 “장점을 살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도록 경쟁체제를 갖춰줘야 한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전통적 은행도 사람을 줄일 생각만 하지 말고 직원 재교육에 투자하는 등 스스로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한다”며 “시중은행이 먼저 수수료 장사를 넘어서도록 변화해야한다”고 쓴소리했다.1400조원에 육박한 가계부채 문제 해결도 그의 관심사다.

그는 “대출규제를 높이면 정작 필요한 사람들은 사금융으로 옮겨가 더 높은 금리에 내몰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시장금리를 올릴 경우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채무상환능력이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며 “종합적인 방향에서 접근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단순히 금융거래만 규제해선 답이 나오지 않는다”며 “범정부적 차원에서 가계부채대응 TF(전담팀)를 만들어 관리해야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소액·장기 연체채권 40만개 이상 소각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도덕적 해이를 경계해야 한다”며 “성실한 채무자는 상대적 허탈감에 빠질 수 있다”고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영세·중소가맹점의 신용카드 수수료 추가 인하에 대해선 “수수료의 절대적 수치만 낮추는 것으로는 한계점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 핀테크 산업 활성화로 지금의 신용카드 결제방식에서 벗어나 고객과 가맹점이 일대일로 결제를 하는 등 획기적으로 시장이 변화하고 있는데, 이러한 시장변화에 대응한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이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 정부와 업계, 소상공인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미지 크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