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고쳐쓰자" 진보 학자, 청와대 역사도 다시쓴다

[the300][런치리포트-파워피플 사용설명서]장하성 靑정책실장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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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3월 7일 제일은행 주주총회. 40대 초반 패기 넘치는 시민운동가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신생 시민단체를 이끌던 소장파 학자, 변호사 등이다. 제일은행은 부실했던 한보그룹에 거액 대출, 회수가 불가능한 악성채권으로 휘청이고 있었다. 주총서 발언권도 얻지 못했던 이들은 사실상 국내 첫 주주대표소송에 착수했다. 소액주주들이 호응했다. 1998년 1심은 원고 승소 즉 소액주주들의 손을 들었다.

당시 혜성처럼 등장했던 소장 학자가 20년 뒤인 올해 5월 21일, 청와대 기자회견장에 섰다. 장하성 정책실장이다. 청와대는 "한국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지속적으로 연구해 온 유능한 경제학자"라며 "해박한 이론을 바탕으로 경제력 집중 완화와 기업지배구조 개선 운동을 해 온 경험과 경륜을 높이 평가"한다며 인선 이유를 밝혔다.

"자본주의에 대안이 없다면 고쳐 쓰자." 최근 그의 지론이다. 장 실장은 어딜 가든 역사를 다시 쓰는 발자취를 남겼다. 사상 첫 소액주주 소송부터 '장하성펀드'를 통한 투자 실험까지 그랬다. 요즘 청와대 역사도 다시 쓰고 있다. 문재인정부서 부활한 정책실장 체제의 성패가 그에게 달렸다. 진보적 학자에서 실제 정책을 다룰 위치에 올라 어떤 변화를 이룰지도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파워분석'/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최경민 기자
소액주주, 장하성펀드 그리고…= 장 실장은 6.25 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9월 광주에서 태어났다. 1974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뉴욕주립대 얼바니대학원에서 경제학으로 석사를,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를 땄다. 1986년~1990년에는 미 휴스턴대 재무학과 교수, 1990년 귀국해서는 모교인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가 된다.

1994년 창설한 참여연대가 장 실장을 적극 영입했다. 장하성이란 이름을 알린 건 이때부터다. 장 실장은 1996년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를 만들고 1997년 제일은행 소송을 진행했다. 제일은행 주총장에 그와 함께 등장한 이가 참여연대 사무처장이던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1997년 이후 삼성그룹의 내부거래와 지배구조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장 실장은 1998년, 1999년 삼성 주총에서 내부 부당거래를 지적하거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관개정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각각 13시간, 8시간씩이 넘는 마라톤 주총이 벌어졌다. 이건희 삼성 회장을 상대로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인수를 포기하게 해 제일모직에 손해를 입혔다'며 소송을 제기, 130억여원 배상 판결을 이끌어 냈다. 시장은 장하성이란 이름을 다시 기억했다.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가 독립, 경제개혁연대·경제개혁연구소 등으로 이어진 2000년대 후반엔 활동양상이 달라졌다. 소액주주들이 최대주주에 문제제기를 하는 방식이었다면 직접 주요지분을 확보, 지배구조 개선을 관철하는 방식으로 변화다. 2006년 선보인 라자드운용의 한국지배구조펀드, 즉 장하성펀드다.

장하성펀드는 태광 계열 대한화섬에 투자해 지배구조 개선을 이끌어내는 등 가시적 성과를 거뒀다. 투자금도 몰려 장하성펀드가 가는 곳이 곧 '대박'으로 이어진 적도 있다. 그러나 수차례 수익률에 부침을 겪고 2011년에는 큰 폭 마이너스를 보였다. 결국 2012년 청산했다. 이런 전력 덕에 기업과 재계에선 '저승사자'격으로 통했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세계 5대 기업개혁가 중 한 명으로 꼽은 적도 있다. 고려대 경영대 학장을 세 번 연임했다.

불평등 해결 집중 "재벌? 두드려패기 아냐"= 그는 경제·경영학자다. 화두는 불평등이다. 그의 책 '한국자본주의'(2014) 첫 장부터 소득재분배 정책 실패와 불평등 심화를 지적했을 정도다. 

장 실장이 보기에 한국 자본주의도 선진국들처럼 소득 양극화 심화, 불평등, 고용없는 성장이란 숙제를 안고 있다. 한국엔 선진국에 없는 문제도 있다. 불공정한 시장질서, 재벌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 비정규직과 자영업자 등 고용불안 등이다. 이걸 해결하는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넘어 정의로운 경제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이 대선기간 '정의'와 '청산' '나라다운 나라'를 주장한 것과 묘하게 겹친다.

지론으로 볼 때 '재벌개혁'에다 소득 불평등 완화 등 경제개혁 정책에 고삐를 죌 수 있어 긴장하는 이들이 적잖다. 학자의 이론, 시민운동가로 보여준 실천력에 청와대라는 행정력까지 쥐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기대를 거는 목소리도 있다. 과거의 개혁성에다 현실성·합리성을 장착했다는 이유다. 장 실장도 취임 일성으로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재벌 개혁이라는 것이 두들겨 팬다 하는 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뇌구조/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최경민 기자
文 대통령의 삼고초려= 장 실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이 있기보다 그 반대다. 장 실장 본인이 밝힌 것만도 세차례, '삼고초려' 끝에 문 대통령의 손을 잡았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때 정책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 ‘DJ노믹스’ 입안에 참여한 실력을 눈여겨봤다. 장 실장은 그러나 안철수 후보를 선택, '안철수의 진심캠프' 본부장을 맡았다. 안철수표 경제정책을 총괄했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이던 2016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장 실장을 염두에 뒀다. 그때도 문 대통령은 직접 전화했지만 장 실장은 거절했다. 장 실장은 올해 대선기간에도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았지만 여전히 안철수 후보를 도왔다. 런 장 실장의 마음을 바꾼 것 역시 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직접 전화를 걸어 정책실장을 제안했다.

자상한 장 교수, 일할 땐 무섭다= 장 실장은 사석에선 자상하고, 농담도 잘 한다. 까칠해(?) 보이는 인상과 다르단 게 지인들의 말이다. 일에는 철저하다.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일을 개선하는 일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일단 맡으면 치밀하게 처리한다. 한 지인은 "삼성이랑 맞장을 몇 번 뜬 사람이다. 그것 보면 (성품을) 알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한성대 교수 시절 "사유에 좌우 경계가 없고 실현 가능한 대안에도 천착한다. 진정한 실천적 지식인"이라고 장 실장을 평가했다.

김 위원장을 포함,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 등에서 함께 활동한 박원순 시장, 김기식 민주당 전 의원,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과 가깝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 전성인 홍익대 교수 등도 있다. 김승현 고려대 언론대학원 교수,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도 '우군'이다. 장 실장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의 대학 은사이기도 하다.

장 실장 가족은 증조부 대에 만석꾼 집안이다가 조부 대엔 독립운동가, 부친대에는 학자와 엘리트 관료를 다수 배출한 호남 명문가가 됐다. 부친인 장충식 전 전남도의원은 장 실장 포함 3남2녀를 뒀다. 장하진 초대 여성가족부 장관이 친누나다. 장하경 광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장하원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가 장 실장의 동생들이다. 장 실장이 8살때 4·19 혁명이 일어났다. 아버지·어머니가 모두 참여했다고 한다.

나란히 케임브리지대 교수인 장하준 장하석 형제는 장 실장의 사촌동생들이다. 이들의 부친이자 장 실장의 삼촌이 장재식 전 국회의원이다. 그래도 장 실장은 '집안'을 말하는 걸 꺼려 한다. "자부심이지, 자랑거리는 아니다"란 생각이다.

△1953년 광주 △경기고, 고려대 경영학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경영학 박사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 원장 △한국재무학회 회장 △한국금융학회 회장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위원장 △안철수대선캠프 국민정책본부장, 정책네트워크 내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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