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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으로 막 내린 朴 전 대통령의 19년 정치인생

[the300] 영애→퍼스트레이디→야인→대통령→수감자…21일만에 대통령에서 수감자로

노규환 인턴,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영애→퍼스트레이디→야인→제1야당 대표→대통령→파면된 전직 대통령→수감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거쳐온 길이다. '면도칼 테러'라는 아찔한 사건도 겪었다. 한 사람의 생애일까 싶을 정도로 파란만장한 인생이다. 현직 대통령에서 수감자로 전락하기까진 불과 21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영욕으로 점철됐던 19년간의 정치 인생도 31일 구속영장 발부와 함께 사실상 막을 내렸다. 선거의 여왕, 수첩공주, 1호 여성 대통령, 최초의 부녀 대통령 등 수많은 수식어가 그를 따라다녔다. 이공계 출신, 독신으로 대통령이 된 것도, 직선제에서 과반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그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결국 역사에는 헌정 사상 최초로 파면된 대통령, 세번째로 구속된 대통령으로 남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건 1964년 12살 때 선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따라 청와대에 들어가면서다. 10년간 영애 생활을 누린 박 전 대통령은 22세 때인 1974년 모친 육영수 여사가 흉탄에 쓰러지면서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퍼스트레이디 생활도 1979년 선친이 시해되며 갑작스럽게 끝나고 만다. 양친을 잃은 박 전 대통령은 동생 근령·지만씨와 청와대를 떠나 18년 동안 야인으로 은둔 생활을 하게 된다.

1997년 외환위기는 그가 다시 대중의 앞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 한나라당에 입당한 박 전 대통령은 이회창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고문으로 여의도에 발을 들였다. 이듬해인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며 정치인으로 거듭난 박 전 대통령은 이후 내리 5선에 성공한다. 당 대표를 지낸 2년3개월 동안 박 전 대통령은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상대로 지방선거와 각종 재·보궐선거에서 '40대 0'의 완승을 거뒀다. '선거의 여왕'은 이때 붙여진 별명이다.

위기도 있었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패하며 정치적 궁지에 몰렸다. 이른바 '친박 공천학살'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2009∼2010년 세종시 수정안 파동이 재기의 발판이 됐다. 이명박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부결을 이끌며 대중에게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으로 각인됐다.

대권에 재도전한 박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과반 득표로 당선되며 정치 인생의 정점을 맞는다. 그러나 대통령 박근혜 앞에 놓인 길은 그리 평탄치 않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잇따라 터지며 리더십 위기를 맞았다. 그러다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치명상을 입었다.

최순실 게이트는 검찰과 특별검사의 수사로 이어졌다. 박 전 대통령은 피의자로 지목됐고, 결국 지난해 12월9일 국회의 탄핵소추를 당하기에 이른다. 박 전 대통령은 혐의를 부인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 10일 끝내 파면을 선고했다.

청와대를 떠난 박 전 대통령은 서울 삼성동 자택에서 칩거 생활을 이어오다 지난 21일 스스로 검찰에 출두해 처음으로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이날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전날 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한 뒤 검찰청사에서 대기하던 박 전 대통령은 삼성동 사저 대신 서울구치소로 이송돼 수의를 걸쳐야만 했다.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3월31일 새벽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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