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참사였다. 지난 22일 전국서 진행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현장투표 가운데 일부 지역 결과로 거론되는 '숫자'들이 당일 오후 확산됐다. 당 안팎을 종합하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태였다. 개표는 당일하되 결과 발표는 미루는 방식 때문이다. 투표는 전국 시·군·구에 총 250개 투표소를 마련,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했다. 투표의 전 과정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했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다.

민주당은 오후 7시경 투표소별 개표를 진행했다. 이때 캠프별로 참관인을 보냈다. 개표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보게 한 것이다. 4명의 주자가 모든 투표소에 1명씩 보낸다고 하면 최대 1000명이 개표를 지켜봤다. 이들은 완벽하지 않아도 투표소별 득표결과를 점검할 수 있다. 캠프별로 전국의 자료를 합산하면 결과를 대략 맞출 수 있다.

그런데 결과는 당일 공개되지 않았고 투표결과는 투표지와 함께 당 선관위가 보관토록 했다. 민주당은 투표관리를 중앙선관위에 위탁했지만 투표지 보관까지는 맡기지 못했다. 중앙선관위로선 대선 관리가 목전에 닥쳐 힘들다는 이유를 댔다. 결과유출이나 봉인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소재도 복잡해진다는 판단도 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에 따르면 당 선관위는 합산조차 미리 하지 않기로 했다. 호남 충청 등 각 권역별 순회투표 때 해당 권역 투표 결과를 합산해 발표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런 방식은 당과 각 캠프가 합의한 것이다. 즉각 공개든, 지금처럼 사후 합산 발표든 장단점이 있다. 즉각 공개시 숫자가 많지 않은 투표소 투표가 나중에 있을 ARS 투표에 영향을 줄 소지가 있다. 반대로 개표는 하되 발표는 하지 않는 현재 방식은 결과나 추정치가 유출될 우려가 있다. 때문에 정답이 있기보다 선택의 문제다. 어쨌든 민주당과 각 후보 측이 합의한 '선택'은 투표 결과 유출이란 최악의 결과를 맞았다.

권역별 순회투표가 가장 빠른 호남(27일)이라면 보관기간 5일이 필요하다. 이 기간 실제결과 유출이나 각종 추측치가 퍼질 것은 예견됐다. 당 관계자는 "한 지역에 다른 수치도 있고 선관위는 집계한 적도, 집계할 계획도 없었다"며 "자료 자체는 확인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당 일각에선 지난 22일 밤 확산된 수치 대부분이 투표결과가 맞다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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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실에서 열린 경선 현장 투표 결과 유출 논란 관련 중앙당선관위 긴급회의를 마친 홍재형 중앙당 선거관리위원장과 위원들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2017.3.23/뉴스1

당 선관위는 현정투표 결과로 추정되는 파일이 유출된 데 대해 사과하면서 "근거없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면서 즉각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진상을 철저하게 조사해 고발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해당 사안을 철저하게 조사할 방침이다. 민주당 경선이 흔들리기 전 조기 진화에 나서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읽힌다. 양 부위원장이 진상조사위원장으로 나선다. 조사위원으로는 조응천, 송옥주, 안호영, 송기헌, 김영호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네거티브 공방 등으로 갈등의 골이 패인 캠프는 선거 공정성을 문제삼으며 불신을 키우고 있어 불씨는 잠재우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캠프간 공방도 벌어졌다. 안희정 후보측 박영선 의원멘토단장은 이날 CBS라디오에서 문 전 대표 측이 '정확한 수치도 아니고 확인된 것도 아니다'라고 발언한 데 대해 "문 전 대표 측에서는 이것이 가짜뉴스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 부분에 대해 당의 분명한 입장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측 정성호 의원도 "조직적으로, 의지적으로 노력하지 않고 어떻게 결과를 취합할 수 있겠느냐"며 "자연스럽게 유출됐다고 보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확전에 대한 경계감은 존재한다. 경선이 진흙탕 싸움으로 비쳐질 경우 정권 교체 흐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또 세월호 인양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싸움’보다 ‘세월호’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는 현실론도 작용한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