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에서 탈박으로.." '할말하는' 이혜훈의 소신 정치는?

[the300][국회의원사용설명서 2.0]이혜훈 새누리당 의원

편집자주  |  '국회의원 사용설명서'의 2.0 새 버전을 선보입니다.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에 입성한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과 관심사, 경력을 입체적으로 분석해 드립니다. 의원의 경쟁력과 정치적 미래,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심부름꾼'을 어떻게 '사용'해야 우리 사회가 한걸음 나아가고 우리의 삶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지, 분야별 '파워분석'을 통해 보여드립니다.


지난 4·13 총선에서 당당하게 20대 국회의원으로 돌아온 3선의 중진 여성의원이 있다. 바로 이혜훈 새누리당 의원이다. 진박(진실한 친박)·친박(친박근혜) 마케팅에서 ‘탈박(탈박근혜)’으로 통하는 이 의원이 ‘서초의 딸, 진박’으로 불리는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꺾고 공천을 확정지으며 뱃지를 다시 거머쥐었다. 

20대 국회에 들어서자 마자 이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를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 의원은 총선 승리 이후 시종일관 “계파부터 빨리 없애야 당이 살아난다”면서 “당이 사형선고를 받은 심정으로 개혁에 임해야 한다. 저부터 정치 생명을 걸겠다”는 소신발언을 내놓았다. 당내에서 소신정치를 하는 이 의원에 기대가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 의원은 20대 국회 초반에 기획재정위원장에 도전장을 냈지만 경선에서 떨어졌다. 비박계인 이 의원이 기재위원장을 맡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한 친박계가 계파색이 옅은 조경태 의원을 밀어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경제통]

이 의원은 20대 국회 원구성 초반에 기재위원장을 노렸었다. 계파 진영에 밀리지 않았다면 기재위원장 자리도 무리는 없었을 것이란 평가다. 이 의원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개발연구원(KDI), 유엔 정책자문위원 및 정부 부처를 두루 거치면서 금융, 재정, 연금 등 각종 경제 분야에서 실력을 발휘했다. 이 과정을 통해 '경제통'으로 불릴만큼 경제전문가로 성장했다. 17대 총선에서 서울 서초갑에 당선돼 국회에 입성한 후 18대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브레인' 역할을 맡기도 했다. 지난 대선 당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을 골자로 한 경제민주화 공약을 설계한 이도 바로 이 의원이다.

특히 이 의원은 18대 국회에서 조세소위원장을 지내며 활발한 의정활동을 벌였던 여성 경제학자로 19대 총선 실패를 딛고 20대 국회에 화려하게 돌아왔다.  이 의원은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공약을 다듬으며 '친박' 인사로 분류됐지만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경제 민주화' 공약 비판 등으로 박 대통령과 멀어져 '홀박(홀대받는 친박)·탈박'이 됐다.

그는 경제민주화를 놓고 박 대통령에 날을 세우기도 했는데, 20대 국회에서도 경제민주화를 위한 입법 활동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이 의원은 최근 머니투데이 더300과의 인터뷰에서 "경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특별범죄가중처벌법과 기업 지배관련법, 집단소송법을 우선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키워드→워킹맘]

이 의원은 정치권에서 찾아보기 힘든 3선 중진의 여성의원이다. 또 아들 셋을 키운 워킹맘의 고통을 잘 아는 정치인이다. 그는 4선 의원을 지낸 김태호 전 내무부 장관의 며느리이기도 하다. 

이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직장에 다닐 때 셋째아들 임신 사실도 알리지 않은 채 출산 당일까지 일했고 도봉산으로 단체산행을 가던 날 등산로 초입에서 산통을 느껴 병원으로 직행했다. 출산 소식을 전하자 직장에선 축하는커녕 첫 반응이 "뭐야? 출산휴가를 쓰겠다는 거냐"는 거였다. 출산 일주일 만에 팩스로 업무 지시가 날아왔다. 워킹맘으로 산다는 건 가슴에 주홍글씨를 달고 사는 것임을 절절히 느꼈다. 워킹맘에게 야만적인 대한민국을 바꿔야겠다는 다짐은 지금도 굳건하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국민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다. 

이 의원은 또 다른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시아버지가 평소 큰애가 정치를 하면 잘 할 거라고 하셨다. 주변에서 갑자기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뒤를 이어 보궐선거 출마를 권유했지만 고사했다. 당시 국민연금살리기본부를 만들어 한겨울에 국회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던 내게 어떤 분이 말하더라. '그렇게 몇 달을 돌아다녀도 국회의원 도장 하나 못 받았잖아. 그런데 국회의원이 되면 도장 11개쯤 쉽게 받을 수 있어.' 이 말을 들으니 생각이 바뀌더라.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의원이 '왜 정치를 하는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물음을 이어오고 있는 이유다.

[이 한장의 사진]
1993년도 대학원 졸업식 사진. 이 의원은 두 아들을 키우면서 UCLA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의원은 시부모를 모시면서 아들셋을 기르고 학업과 직장생활, 정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해낸 '슈퍼우먼'이다.

[그의 사람들]

여권내 대표적 경제통인 이 의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시절부터 유승민 의원과 가깝게 지냈다. 이후 경제정책 면에서 의견을 같이하며 최측근으로 자리했다.  

[요!주의]

이 의원은 대표적인 '원조친박'이면서 '탈박'으로 불린다. 그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때문에 당내 주류인 친박계로 불이익을 당하는 측면도 있다. 이 의원은 지역구에 대한 고민도 크다. 서초구에서 3번 당선된 만큼 이제는 이 의원이 추진한 정책들이 '추진'이 아닌 '결실'을 맺어야 할 중대 시기다.
[프로필]

△1964년 △부산 △서울대 경제학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캠퍼스 (UCLA) 경제학 박사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제17,18대 국회의원 △새누리당 최고위원 △제20대 서울 서초갑 국회의원 당선 



 
  • 법안
  • 팩트체크
  • 데스크&기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