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300]선거구 '무법'·선관위 '편법'·국회의장 '불법'

[the300]현 상황 초래한 정치권 자성 필요

선거구 획정안을 놓고 여야의 물밑협상이 뜨거운 가운데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가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올해 마지막 본회의에서 굳은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5.12.31/뉴스1

"선거구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우리 앞에 현실로 왔습니다. 선관위는 예비후보자들에게 보장된 일부 선거운동을 편법적으로나마 묵인해 주겠다는 입장입니다. 합법적인 선거운동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고 단속을 하지 않을 뿐이라는 겁니다. 


법을 만들고 다루는 것을 주된 임무로 하는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예비후보로써 저는 며칠간 복잡한 모순적인 현실에 빠져 아직도 어찌해야 할지 결론을 못 내고 있습니다.

편법적인 방법에 편승해서 어깨띠 두르고 명함 돌리는 선거운동을 계속해야 하는지? 아니면 이런 사태를 야기한 무능하고 무책임한 기존 정치권을 규탄하는데 앞장서야 할지? 오늘밤도 저는 깊은 잠을 자지 못할 것 같습니다."

강원도 원주에 출사표를 던진 예비후보 박정하 전 청와대 대변인이 SNS에 올린 선거구 공백 상황에 대한 소회다. 그나마도 선거운동을 할 수 있으니 다행으로 생각해야할지, 입법권자가 되고자하는 이가 편법을 편승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스럽다는 얘기다.


선거구 획정과 관련한 정치권의 논의 과정에서 여야 정치권은 물론, 선거관리위원회, 국회의장까지 법의 엄중함은 없고 편법, 무법, 불법이 난무하고 있다. '고육지책'이라는 말이 어느때보다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

국민들의 비판은 선거구가 없는 초유의 사태를 만든 국회로 쏠린다. 국회는 입법권을 스스로 외면하면서 '무법 천지'를 만들었다. 선거구 조정 대상 중, 통폐합 대상이 될 10여개의 지역구를 제외하고 대다수 현역 국회의원들에게 선거구 획정은 크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보니 지도간 협상이 속도가 나지 않아도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국회가 무법 상황을 만들자 이번에는 선관위가 '편법'으로 응수했다. 선거구 공백상황이 도래하자 선거관리위원회는 작년 연말 '선거운동 단속 유예'라는 대책을 내놨다. 기존 법에 따라 등록한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도 있으니 여야를 포함해 정치권에서는 대체로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평가했다.

공직선거법상의 선거구가 무효이면 이를 토대로 예비후보자 등록을 한 이의 법적 권한도 당연히 사라진다. 그러나 입법기관이 아닌 선관위로서는 예비후보 자격 박탈보다는 국회 논의를 좀 더 기다려보자는 취지일 것이다.

선거구 공백이라는 '무법' 상태에서 관련자들이 택할 수 있는 '고육지책'의 '화룡점정'은 정의화 의장이 제안한 선거구 획정 기준이었다. 정 의장은 지난 연말부터 여야간 선거구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연초에 '특단의 조치'를 내놓겠다고 했다.

논란이 여지는 정 의장의 중재안이 선거구 획정위에 불법을 요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정의장이 제안한 자치시군구 분할 금지 예외는 현행법에서 금지하고 있다. 다만 선거법 부칙에서 일부를 허용하고 있지만 이 역시 19대 국회에 한정해서다.

선거법 상의 부칙 조항은 입법권자의 재량에 의한 것이지 선거구 획정위가 가질수 있는 권한은 아니다. 비록 선거구 획정의 중재에 오랜기간 노력해온 국회의장의 '고육지책'이지만 입법부의 수장이 '불법적인 상황'을 국회 외부 기관에 요청하는 것은 아무래도 바람직한 모습으로 보긴 어렵다.


정치의 현실이 냉엄하지만 국회의장에게 불법을 요구하게 하고 선관위가 편법을 자행하게 되는 상황, 입법권자가 되고자 하는 예비후보자들까지 이를 고뇌하게 만드는 현실에 대해 정치권의 깊은 자성이 필요해 보인다.


관련기사

 
  • 법안
  • 팩트체크
  • 데스크&기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