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옥 청문회…"말단검사였을 뿐" vs "대법관 자격 없어"

[the300] 박상옥 "경찰의 조직적 축소·은폐 파헤치지 못해 안타까워"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 심사를 위한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2015.4.7/사진=뉴스1

7일 열린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여야는 박 후보자의 대법관 적합 여부를 놓고 뜨거운 공방을 벌였다. 여당에서는 박 후보자의 업무능력에 중점을 둔 반면, 야당에서는 박 후보자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축소·은폐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박 후보자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이같은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당시 검찰이 경찰의 치밀한 사건 조작을 사전에 알지 못했던 것은 잘못이지만, 이는 검찰의 사건 축소·은폐와는 별개라는 주장이다. 

그는 당시 검찰의 수사 미진에 대해 "경찰의 조직적인 사건 축소·은폐를 간파하고 파헤쳐서 조기에 진상을 규명했으면 유족을 포함해 많은 국민들이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있었는데 그점에 대해서는 검사로서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 심사를 위한 인사청문회에서 이종걸 인사청문 특위 위원장에게 선서문을 제출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2015.4.7/사진=뉴스1

여당은 박 후보자가 당시 수사팀의 말단 검사로서 실질적으로 수사를 주도할 수 없었다며 수사 미진의 책임이 박 후보자에게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상부의 수사지침 없이 2차 수사 개시를 할 수 있었느냐'는 민병주 새누리당 의원의 질의에 박 후보자는 "상명하복과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검사 직무를 규정하는 기본 원칙"이라며 "제가 주임검사가 아닌 수사검사로 참여하는 입장에서 지휘부의 지시가 없으면 별도의 독립적인 수사를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고 답했다.

같은 당 김회선 의원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최초에 경찰은 단순 쇼크사로 검찰에 보고했으나 검찰은 가혹행위에 의한 사망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2차에 걸친 재수사로 축소·은폐를 적발해 당시 간부들을 구속 기소한 사건"이라며 "인권보호 기관으로서 검찰 임무의 중요성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이 앞서 "검찰이 대체로 진실의 편에 서 있으려고 했다"며 당시 검찰의 수사에 대한 옹호 발언을 했을 때 박 후보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했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은 박 후보자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직접 축소·은폐하지는 않았을지언정 추가 고문경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재수사를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1987년 1월 조한경 강진규 등 2명의 고문경관이 구속된 뒤 검찰은 3개월이 지나서야 고문경관 3명을 추가로 구속했다. 이 과정에서 박 후보자의 소극성을 문제 삼은 것이다.

서기호 정의당 의원은 "대법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재판의 독립"이라며 "후보자는 수사를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상부의 지시가 없었다고 안했다"며 "사직서를 쓸 정도의 의지를 갖고 사건을 밝혀냈어야 하는데 시키는 대로 하셨던 분이 대법관이 되면 소신 있게 재판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박 후보자는 "3월 초 (고문경관이) 1명 더 있다는 것을 알아서 즉시 수사계획서를 작성해 의혹에 대해서 수사할 것을 상부에 보고했다"면서도 "여주에 (발령) 가 있었기 때문에 직접 수사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상부 지시에 따라서 3명에 대한 수사에 참여하라는 파견 명령을 받고 수사에 참여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박완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후보자가 당시) 말단검사에 불구했지만 고문에 의한 살인사건을 국가기관이 은폐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은) 일반 시민들보다 소신과 양심이 없는 비겁한 행동이었다"며 "공범을 알고 있으면서도 기소하지 않은 것은 법관 자격에 미달한다. 어떤 이유에서도 정의가 아니다. 대법관 자격을 논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박 후보자는 해당 사건이 3차 수사까지 가는 등 진상규명이 지연된 것과 관련, "뒤늦게 진상이 규명됐지만 결국 최정점에 있는 경찰의 조직적인 사건에 대한 축소·은폐가 이 사건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며 "이것을 밝히는 과정이 좀 길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역사적 의의와 중요성을 묻는 질문엔 "박종철군이 젊음을 피우지 못하고 생명을 잃은 불행한 사건"이라며 "국민들의 요구와 바람 때문에 결과적으로 민주화를 크게 이루는 데 촉발이 됐다는 생각에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항상 간직하고 있고 한시라고 잊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관련기사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