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신화' 원희룡, 시험대에 서다

[the300][광역단체장 사용설명서]④원희룡 제주도지사



#2004년 3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과도한 선거 개입을 이유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했다. 당시 초선 의원이던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탄핵안을 발의에 참여하지 않았고, 표결에도 끝까지 반대했다. 하지만 유일한 반대자였던 그도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옳지 못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혼자 가야한다는 두려움이 그를 압도했다. 그는 그의 저서에서 "데드포인트"를 넘지 못했다고 표현했다. 

#2011년 4월 이명박 대통령이 당시 3선 의원이던 원희룡 지사를 불러 두 시간 정도 독대했다. 이명박 정부의 대중적인 인기는 땅에 떨어졌고 새누리당의 모든 권력은 이미 박근혜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박계로 몰리고 있었을 때다. 이런 가운데 '친이(이명박)계'를 대표해 당 대표에 출마해달라는 요청이었으니, 누구봐도 잃을 게 많은 제안이었다. 그러나 "지난 12년간 난 무엇을 했는가? 당내 소장파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외쳤지만 무엇을바꾸었는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이 권유를 받아들였고 고난의 길을 가야했다. 

'대입 전국 수석' '사시 수석' '새누리당의 개혁의 아이콘'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을 것 같은 원희룡 제주도지사에게도 지난 15년 정치인생은 굴곡의 연속이었다. 초선 개혁파의 기수로 당의 혁신을 주도하고, 재선 땐 최고위원 2위, 여세를 몰아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기도 했다. 한편으론 두려움에 정치적 소신을 접기도 했고, 주류가 되기 위한 도전은 “초심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1년 전당대회에서는 당 대표에 낙마하고 약속대로 19대 총선에는 불출마 ‘정치 낭인’의 시기도 겪었다.

현실 정치를 떠나 재충전의 시간을 갖던 그를 당이 오래 내버려 두지는 못했다. 야당과 피말리는 승부를 벌였던 지난해 6.4지방선거에 제주도지사 후보로 그의 출마를 요청했다. 원 지사는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60%의 득표율로 압승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원 지사의 꿈은 여전히 크다. 차기 대선 주자로도 여전히 이름이 오르내린다. 하지만 제주도가 우선이다. 원 지사는 머니투데이 the300(더300)과의 인터뷰에서 “제주도 운영도 제대로 못하면서 다른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면서 “그런 면에서 저는 시험대에 있다”고 말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 제주도의 신화]
 원 지사는 1964년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내내 운동화는 커녕 구멍난 타이어표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고, 쌀밥 구경도 힘들었다. 고구마를 썰어 말린 일명 ‘빼대기’로 도시락을 싸는 일이 예사였다. 빚 독촉에 시달리는 부모를 보면서 함께 떨었던 적도 있다.

가난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은 오직 공부라고 믿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눈에 띄게 성적이 올랐다. 전교 1등을 한번도 놓친적이 없다. 결국 1982년 학력고사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하며 '제주도 신화'가 됐다. 

제주특별자치도 홈페이지

[노동운동 투신->사시 수석 합격]
1982년 서울대 법대에 수석 입학한 그는 몇달간 집과 도서관을 왕복하며 공부에 열중했다. 하지만 그해 5월 서울대 도서관 앞 광장에서 열린 집회를 보고 80년대 대학가를 지배했던 학생운동에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숱한 시련을 이겨내던 그는 1987년 민주화와 1989년 동구권의 몰락을 본 뒤 허탈감을 느꼈다. 결국 이데올로기와 혁명을 놓고 현실의 세계에 뛰어 들기로 했다. 사법 시험 준비 2년만인 92년에 수석으로 사시에 합격해 다시한번 '원희룡'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서울지검과수원지검 여수지청, 부산지검 등에서의 4년여 검사로 재직하고, 이후에는 2년여간 변호사 생활을 거쳤다.

[개혁의 아이콘 "남원정 시절이 그립다"]
박근혜 정부 초기 새누리당 내에서 많이 나왔던 얘기 중 하나가 '초선'의 존재감이 없다는 거였다. 19대 국회 새누리당 초선 의원들은 박근혜 비대위원장 시절 협회장이나 교수, 의사 등 학계나 전문직 출신들을 중심으로 비대대표 의원 후보들을 꾸렸다. 전문성은 탁월했지만 정치적으로 전혀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야당은 초선만 보이고 여당은 초선만 안 보인다"는 비아냥도 나왔다.

새누리당에도 초선이 지도부를 흔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원 지사가 초선으로 있던 16대 때다. 2003년 원 지사가 남경필 현 경기도지사, 정병국 의원 등과 함께 결선한 미래연대(미래를 위한 청년연대)는 소장파들의 모임이었지만 당내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쳤다. 남원정(남경필 원희룡 정병국)으로 대변되는 미래연대는 지금도 소장파 개혁 모임의 대표적인 모델로 회자된다.

원 지사는 17대 총선에서 당선된 이후에는 당내 '비주류'에서 '주류'로 이동하기 위한 과감한 시도를 했다. 미래연대 해체 이후 소장파 의원모임인 '새 정치 수요모임'을 결성했고, 2004년 최고위원에 출마해 박근혜 전 대표 다음의 득표율을 올렸다. 40세로 '최연소 최고위원'이었다. 2007년에는 재선 의원으로 대통령 후보 경선에도 출마, 이명박 박근혜 후보에 이은 3위로 경선을 완주했다.

[원희룡에게 마라톤이란]

원희룡 지사의 뒤틀려 있는 발가락.

원 지사는 어린 시절 리어카 바퀴에 발가락이 끼어 거의 잘릴 뻔한 사고를 당했다. 이 때 변변한 치료를 받지 못해 발가락 두 개가 위를 향해 뒤틀리는 장애를 가졌다. 그는 이런 발가락으로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여덟 차례 완주했다. 성한 발로도 엄두를 내기 마라톤 풀코스를 여러차례 뛰었으니 원 지사의 '독기'를 엿볼 수 있다. 

마라톤에 관한 생각을 담은 책을 따로 발간할 정도로 마라톤에 대한 그의 관심은 남다르다. 원 지사는 "인생에서의 성공은 반드시 많은 부를 쌓고 더 높은 지위를 오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면서 "달려가는 동안의 즐거움과 숨쉬는 것의 고마움, 땀 흘리는 것의 기쁨을 알고 있다. 그래서 꿈을 꾸며 다시 길위에서 달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꿈 -> 여야를 뛰어넘는 포용의 정치]
원 지사가 소장 개혁파로 이름을 날릴 때부터, 그리고 지금까지도, 강조하는 정치는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민본 정치'다. 이를 위해 진영을 뛰어넘는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도지사 취임 후 '협치'를 내건 것도 이 때문이다. 협치는 민간의 현장의 경험, 다양한 아이디어를 형식적으로 자문하는 게 아니라 정책결정과 집행 과정에 권한과 책임을 일정 정도 민간에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연정'이 여야간 협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원 지사의 협치는 민관의 협력에 방점이 있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 민간의 역량까지 합쳐 민본정치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원 지사는 "공존과 합의로 발전적 에너지를 이끌어내는 정치, 생각이 달라도 결국은 하나가 되는 정치, 포용의 정치를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대표법안-합동연설회 금지 선거법] 
원 지사는 2004년 개정된 선거법 개정안을 기억에 남는 법안으로 꼽는다. 법안은 청중동원이나 금품살포 등 폐해를 막기 위해 옥외에서 집회 성격의 합동연설회나 정당.후보자 연설회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원 의원은 당시 정개특위에 참여해 법안을 만드는데 참여했다.

[사람들-> 남경필, 이명박]
소장 개혁파 시절 함께 했던 남경필 지사, 정병국 의원 등과 여전히 친분이 두텁다. 특히 남 지사와는 같은 시기에 나란히 광역단체장을 맡아 선의의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 사무총장을 맡는 등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깊다. 하지만 2011년 전당대회 때 당 대표 경선에 나섰다가 낙선한 뒤 관계가 소원하다. 당시 친이계를 대표해 경선에 나섰지만 청와대 등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 못했다.

[요 주의 → 자기 사람 부족]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고 초선 때부터 당 개혁을 주도할 정도로 정치감각도 있지만 자기 사람을 만드는 능력은 부족하다는 평가다. 차기 대선 주자로 확실히 올라서기 위해서는 이런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프로필]
△1964년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 출생 △제주 제일고, 서울대 법학대학△1992년 사시 수석 합격 △1995~1998년 서울, 수원. 여주,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변호사(법무법인 춘추) △16,17,18대 국회의원 △2004년 한나라당 최고위원 △제17대 대통령선거 한나라당 경선 후보 △2010년~2011년 한나라당 사무총장 △제주도지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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