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 순간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겠다."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같이 밝히고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개헌은 국가적 중요한 과제"라며 "(개헌을 위해) 반드시 정기국회에 경제 관련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개헌 추진의 절박성을 강조했다.

김 최고위원은 아직 복귀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퇴 철회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수차례에 걸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사퇴 만류를 외면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김 대표는 김 최고위원이 사퇴선언을 한 23일 당일 저녁 여의도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나 사퇴 철회를 요청했고, 다음날인 24일 오전에는 김 최고위원의 의원회관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사퇴를 만류했다. 24일 저녁에는 대전의 한 상가에서 마주 앉아 1시간30분 이상 대화를 나눴다. 이인제 최고위원까지 '특사'로 동원됐다.
김 최고는 "좀 더 깊이 생각해보겠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쉽사리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사퇴선언이 있던날 김 대표는 그의 표정에서 뭔가 이상한 표정을 감지했다. 회의 직전 "오늘은 (개헌 이야기는 하지 말고) 넘어가자"고 쐐기를 박으려 했다. 하지만 김 최고위원은 "아입니더, 오늘은 한마디 해야겠심더"라며 회의장에서 결국 그 한마디를 했다.
'하고 싶은 말'은 하는 김 최고, 새누리당 내에서도 그는 '사용설명서'를 만들기 힘든 의원일지 모른다.

그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지난 5월 출범하면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현역 국회의원들이 선정한 '차세대 리더'로 꼽혔다. 김무성 대표와 함께 6표를 얻었다.
'다음 세대'에 대한 그의 고민은 개헌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쳐야 한다는 지론으로 이어진다. 진영논리를 부추기는 낡은 권력구조와 국민 다수의 의사를 반영할 수 없는 소선거구제를 손봐야 한다는 것. 국회의원 임기를 2년으로 줄이자는 파격 제안도 해왔다. 2년마다 물갈이를 하면 국회의원들이 싸울 여유가 없다. 바로 평가받아야 하기 때문에 2년 동안 일만 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면이? → '차도남' 아닌 소장수의 아들>

훤칠한 키와 호감형 외모에 그를 '차도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김 최고위원은 스스로를 '시골 촌놈'이라고 한다. 경남 거창군 가조면 부산마을에서 자랐다. 어렸을 적엔 놀다가 소죽 주는 시간을 놓치기가 다반사. "너같은 놈이 공무원하면 백성 굶겨 죽인다"는 아버지의 꾸중도 들었다 한다.

중학교 때까지는 형제들 중 가장 공부를 못해 아버지는 일찍부터 농사일을 거들 자식으로 그를 점찍었다. 농사일을 도우면 나중에 친구들과 함께 일할 방앗간을 차려주겠다고 약속을 했을 정도. 이때 어린 태호는 '이제 공부 안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고 했다. 가지고 있던 참고서도 친구들에게 다 나눠줬다.

그러나 "농약병에 적힌 영어 정도는 읽을 줄 알아야 된다"며 아버지는 고등학교 진학을 권했다. 거창농고에 진학했다. 인문계 친구들이 수열 등을 배울 때 농경·퇴비·축산 등 농상일에 필요한 과목을 익혔다.

그러던 고등학교 1학년의 어느 날. 형과 누나 동생이 한 상에 모여 앉아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도 껴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성적을 올려 서울대 농업교육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지금, '제2의 김태호 스펙'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키워드 → '개헌'>

그의 개헌론은 하루 아침에 나온 얘기는 아니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도 김 최고위원은 5년 단임제의 한계를 지적, 4년 중임 정·부통령제를 외치는 등 개헌론을 주장했다.

지난 23일 돌연 사퇴를 할 땐 "시대 변화를 담아낼 새로운 옷이 필요하다. 그것이 개헌이라고 얘기해 왔다"면서 "그러나 한국경제가 너무나 위중해 불씨를 살리지 않으면 모두 불행해진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정기국회만은 여야가 총력을 다해서 경제를 살리는 데 올인하자, 서비스산업발전법 등 여야가 쿨하게 통과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자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하면, 국민들도 국가 미래와 직결된 개헌론에 대해 신뢰를 보내고 적극 지지를 보낼 것이라고 말해 왔다"고 했다.

<연관 검색어 → '최연소'>

1998년 제6대 경남도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그의 나이 36세였다. 이후 2002년 기초단체장으로는 최연소인 40세의 나이로 거창군수가 된 후 승승장구했다. 2004년 경남지사 보궐선거에 도전, 최연소 민선 광역단체장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2006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다.

39년 만에 40대 총리가 될 뻔했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0년 국무총리로 지명됐다가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하는 시련을 겪었지만 이후 재보선으로 국회에 입성, 재선까지 하면서 여권의 잠룡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사람들>

*금태 모임 : 18대 재보선으로 여의도에 입성한지 3년째. '촌놈'인 그는 여의도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의원들과의 스킨십이 필수라는 걸 깨달았다. 고민하던 와중에 펼친 의원명단. 이름이 '김태ㅡ'로 시작하는 의원들 5명이 눈에 들어왔다. 김태년, 김태원, 김태환, 김태흠 의원. 이것이 '금태 모임'의 시작이었다.

훗날 '김태ㅡ'만이 아닌 이름에 '김, 태'가 들어가는 사람도 넣자고 해서 김용태, 김성태, 김종태 의원이 함께 해 8인회 모임이 됐다. 김 최고위원은 최고직 사퇴 발언 당일 저녁에도 이 금태 모임에 참석해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군수 출신 국회의원 모임과 도의원 출신 모임 등 100여명과 함께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이 한장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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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