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사진실장의 숨겨둔 '특종'사진 "盧대통령이···"

[the300] '국회 공무원 33년', 퇴임 앞둔 김진혁 국회 사진실장 인터뷰

황보람 기자 | 입력 : 2014.06.22 14:47

김진혁 국회 사진실장./사진=머니투데이 최부석

우리나라 국회의장이 다른 나라 총리를 만나 고개를 푹 숙여 인사한다면? '굴욕외교'로 대서특필 될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사진은 흔치 않다. 공개된 해외순방 사진 대부분은 자로 잰 듯 비슷한 각도로 서로 인사를 나눈다. 연출된 장면일까?

"사진 채택 조건이라면 '대등한 만남'에 주안점을 둡니다. 의장님이 너무 고개를 숙인 사진은 아예 안 싣죠. 저는 사진 기자가 아니라 공무원이니까요."

국회의장을 수행하며 의회외교 사진을 찍어온 김진혁 국회 사진실장(59·방송서기관)이 33년 동안의 국회 기록을 뒤로 하고 오는 30일 퇴임한다. 지난 17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마주앉은 그는 '특종사진'을 노리는 사진 기자들과는 달랐다. '공무원'이란 표현에서 사명감이 묻어났다.

지리 과목을 좋아했던 소년은 중학교 시절 처음 '세계여행'의 꿈을 품었다. 고(故) 김찬삼 교수가 쓴 '세계의 나그네'란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고등학생이 돼서는 사진에 취미를 붙였다. 국회 사진실에서 근무하면서 두가지 꿈을 모두 이룰 줄은 상상도 못했다.

1981년 국회에 들어와 제11대 정래혁 국회의장부터 19대 강창희 의장까지 국회의장 14명을 수행했다. 의회외교의 묵묵한 목격자로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에서부터 브라질 상파울루까지,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뉴질랜드 오클랜드까지 120여개국을 누볐다. 강창희 의장과 함께한 남극 장보고 기지 준공식은 영원히 마음에 남을 추억이다.

정치인 해외순방이 '외유'나 '관광'이라는 시선엔 고개를 저었다.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은 해가 갈수록 높아졌다. 1991년 유엔 가입 전에는 국회의장이 상대국 부의장만 만나도 '외교성과'라고 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실무적인 강행군을 펼쳐온 의회외교가 그 바탕에 있다. 묵묵히 현장을 기록해온 김 서기관은 감회가 남다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연임했을 때는 "뿌듯해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33년. 사진의 시대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격변했다. 한보따리 필름을 싸들고 떠나던 수행길도 이제는 메모리 카드 2장과 노트북 하나면 충분하다. 인화실에서 깜빡 졸다 필름을 태워먹은 아찔한 추억도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편리하지만 아쉬운 추억이다. 선명한 디지털 사진에는 인간적인 맛이 없다. 스크래치 나고 희뿌연 아날로그 사진에서 풍겨오는 그런 향기가 그립다.

김진혁 국회 사진실장./사진=머니투데이 최부석

공식적이고 균형잡힌 사진만을 공개해온 그에게 숨겨놓은 '특종' 사진이 있을까. 그는

고(故)노무현 대통령과 노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인 김원기 제17대 국회의장이 함께한 사진을 꼽았다. 공개가 누가 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출간할 책에 이 사진을 담을 예정이다.

"매년 제헌절 경축식이 끝나면 대통령은 의장단을 청와대로 초청해서 만찬을 베풉니다. 노 전 대통령은 '어떻게 스승을 오시라고 하느냐'며 2년 동안 2번, 직접 의장공관으로 찾아갔어요. 청와대 전속 사진관과 저만 찍고 보도는 안 했지요."

김 서기관은 퇴임 후에도 국회에서의 일상 그대로 아침엔 테니스를 칠 생각이다. 국회 퇴직 공무원 모임인 의정연구회에도 나갈 계획이다. 숙제가 있다면 마음 속에 담아놓은 '특종' 사진들을 한권의 책으로 묶는 것. 키워드는 '휴머니즘'이다.

"눈만 뜨면 국회였는데 7월1일에 일어나면 갈 데가 없잖아요. 처음 당해보는 일이라 어떨까 그런 생각은 드네요. 퇴임하는 선배들 보니까 퇴임식에서 눈물을 훔치시더라고요. 저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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