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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아내를 살해하는 등 가정폭력 살인 사건들이 해마다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지만 가정폭력처벌법(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논의는 20대 국회에서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1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대 국회 들어 18건의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이 발의돼 이 중 17건이 계류 중이다. 이들 개정안은 법사위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로 회부된 채 논의가 없거나 아예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20대 국회 들어 가장 먼저 발의된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안조차 2016년 8월 발의된 후 2년3개월째 소위 안건에 오르지 못했다.
그나마 본회의를 통과한 1건(이명수 자유한국당 의원 발의안)은 가정폭력 범죄와 관련된 내용이 아닌 자구만 수정하는 내용이었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17건 개정안 중 상당수가 피해자 안전을 위해 가해자를 격리 수용 또는 즉시 체포하는 등을 담고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 피해자를 보호하는 내용이다.
현재도 응급·임시·긴급임시조치명령 등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가 있지만 실효성이 없어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은 가정폭력을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의 문제로 보고 있어 가해자 격리가 소극적이고 그만큼 지속·반복적인 폭력과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위협을 막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지난달 31일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이같은 문제제기가 이뤄졌다. 최근 가정폭력 피해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를 사형해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린 서울 강서구 등촌동 살인사건 유가족은 여가위 국감에서 "가정폭력 피해자 가족의 신변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구체적인 법 제정을 원한다"고 말했다.
김삼화 의원안과 남인순·표창원(이상 민주당)·유재중(자유한국당)·이찬열(바른미래당) 의원안 등이 이같은 방향의 개정안이다. 김 의원 발의안은 가정폭력 피해자 거처에서 가해자를 의무적으로 퇴거시키는 내용이다. 남 의원안은 더 나아가 가해자가 피해자 거처에 들어가 폭력을 저지르면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형법상 주거침입죄·퇴거불응죄 등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의원안도 가정폭력 초동 수사에서 가해자를 의무 체포하도록 했다.
가정폭력 가해자에게 현행보다 강도 높게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들도 있다. 현행 법 체계가 가해자에게 상담·교육·치료 등 성행 교정 조치만 하고 있다는 한계를 보완하자는 취지다. 가정폭력 가해자에게 음주 등을 이유로 한 심신미약 감형을 적용하지 않는 내용(이원욱 의원안)이나 가정폭력도 형사범죄로 인정하는 내용, 부부 간 성폭력(이상 정춘숙 의원안), 경제적 가해(인재근 의원안) 등으로 가정폭력 범위를 넓히는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피해자가 배우자로부터의 폭행이나 살해 위협을 막다 역으로 살인이나 폭행을 저지르게 되는 경우 정당방위를 인정하자는 법 개정안도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법을 발의한 정춘숙 민주당 의원은 제안 이유에서 "지속·위협적인 가정폭력 상황을 피하고 대항하기 위해 발생하는 방위 행위에 대해서는 피해자들의 생존권과 인권이 존중될 수 있도록 정당방위를 보다 폭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근본적으로 가해자의 '성행 교정'에 초점이 맞춰진 현행법의 목적 조항 자체를 '피해자 안전 보호'에 중점을 두도록 바꿔야 한다는 개정안도 있다. 정 의원이 지난해 12월22일 발의한 개정안 등이 이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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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을 미뤄둔 사이 배우자 간 살인 사건은 매년 최소 수십 건씩 이어지고 있다. 여성단체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살인 사건을 모은 결과 최소 64명의 여성이 남편으로부터 살해당했거나 살해당할 뻔한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도 지난달 발생한 '등촌동 살인사건'을 비롯해 지난 7월 인천에서 40대 남성이 이혼 소송 중인 아내를 찾아가 살해한 사건 등 수십건의 가정폭력 살인 사건이 발생해 세상에 알려졌다.
여성계는 현행 법체계는 '폭력 가해자와 꾸린 가정의 보호'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한다. 전날 국회 아동·여성·인권정책포럼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한국여성의전화 등 시민단체들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과 효과는 가정폭력이 개인의 존엄과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임을 분명하게 확립하는 것에 있어야 한다"며 법 개정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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