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앵커, 낙선, 재도전..홍지만, 그가 친박인 이유

[the300][국회의원사용설명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리내지 않고 우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깨달았다. 그 시절 나는 아내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소리내지 않고 많이도 울었다. 밖에서 배부르게 먹은 척 하며 들어와 몰래 냉장고를 뒤지던 나를 보고도 모른척해주던 아내와 날마다 아빠를 위해 기도하던 딸의 목소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홍지만 의원 저, '폴리널리스트' 중)


SBS 앵커로 방송 뉴스를 주름잡던 홍지만 새누리당 의원(대구 달서갑). 그의 정치 입문 과정은 혹독했다. 앵커 자리를 박차고 나와 새누리당 텃밭 중 텃밭이라는 대구에서 공천을 받았지만 낙선했다.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낙선하리라곤 상상을 못했다. 멍했다. 갈 곳이 없어 사우나를 전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19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됐다. 그리고 4년 후. 다시 재선 고지에 도전한다. 10년차 사회부 현장 기자에서 앵커 발탁, 두 번의 공천, 한 번의 낙선, 그리고 새 도전. 홍지만의 '정치 2막'이 시작된다.  


[키워드1-폴리널리스트]"들어 와, 앵커 됐어"

2002년 1월 어느 날. SBS 사건 담당 기자로 있던 홍 의원은 그날도 서울 미근동 경찰청에서 밤을 샌 뒤 국밥 한 그릇을 먹고 소파에 꼬꾸라져 있었다. 회사에서 급한 전화가 왔다. "들어 와, 빨리! 너 앵커 됐어" "앵커?" "그것도 주말 8시 뉴스 메인앵커야!" 그렇게 그는 예상치 못하게 앵커가 됐다. 홍 의원은 이전까지 1993년 입사 후 줄곧 사회부 사건 기자로 있었다. 3,4년 이면 힘들어서 보직이동을 해주는 사건 기자 생활을 10년 가까이 한 것이다. 사건 기자 시절 1996년 동해안 무장공비 침투사건, 1997년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 등 큰 사건들의 현장에 있었다. 윤세영 SBS 회장이 홍 의원의 현장 취재 뉴스들을 유심히 봐 왔고, 직접 앵커로 낙점했다는 얘기를 그 뒤에 들을 수 있었다.

7년 동안의 앵커 생활은 사회부 기자보다 더 고달팠다. 방송은 3초 동안 소리가 나지 않으면 사고다. 피곤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아침 뉴스를 맡았을 때는 더했다. 매일 새벽 3시30분이면 집에서 나와야 했다. 눈병이 나서 한 쪽 눈을 심하게 찡그리며 뉴스를 진행한 적도 있다. 새벽 5시에 시작해서 오후 5시 47분까지 12시간 47분이라는 뉴스 진행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기자와 앵커로서의 경험은 그에게 큰 자산이다. 홍 의원은 "언론인은 사실 중심의 사고, 언제나 국민과 국가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한데는 대의가 있다"며 "나는 과거에 저널리스트였던 사람이고 지금은 정치인"이라고 말한다. 홍 의원이 국회의원이 된 후 유일하게 발간한 저서의 제목도 '폴리널리스트(polinalist)'다. 폴리티션(politician, 정치인)과 저널리스트(journalist, 언론인)의 합성어다.


▷[동영상]앵커 시절 모습


[키워드2-친박]
홍 의원의 이름 '지만(志晩)'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와 한자까지 같다. 군인이던 아버지께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해 같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출생 때부터 '친박(친 박근혜)'으로 인연이 시작된 셈이다. 정치 입문은 친박이 아니었다. MB 정부에서 18대 총선에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다. 그러나 친박 연대 바람이 불면서 낙마했다. 낙선 뒤 MB 정부의 무관심에 가슴앓이를 하기도 했다. 방황하던 홍 의원을 일으켜 세워준 것은 최경환, 유승민 등 원조 친박 중진들이다. 이들과 교류하면서 '친박 정서'를 깊이 이해하게 됐다. TK(대구·경북)에서의 인적 네트워크도 더욱 탄탄해졌다. 기회는 다시왔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 하에서 치열한 경쟁 끝에 친박 '4선' 현역인 박종근 의원을 제치고 다시 공천을 받았다. 확실한 친박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한 순간이다. 친박 TK 후보로 본선은 거칠 것이 없었다. 56.75%의 득표율로 압승했다.

19대 국회에서 원내대변인 등을 맡으며 승승장구 하던 홍 의원에게 새로운 시련이 닥쳤다. TK 리더 중 한 명으로 친분이 남달랐던 유승민 의원의 원내대표 당선에 앞장 선 게 계기가 됐다. 유 의원이 청와대와의 갈등으로 원내대표직을 중도에 사임하면서 유 의원을 도왔던 의원들이 상당수 '친유승민'계으로 분류됐다. 그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홍 의원은 과거에도 현재도 '홍지만 정치'의 중심엔 박 대통령이 있다고 단언한다. 그는 "당시 주요 당직자에 TK가 없었기 때문에 TK 원내대표를 만들자는 의미에서 유 의원을 도왔다"면서 "나를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준 사람은 박 대통령이다. 반드시 '결초보은'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지만 새누리당 의원이 1일 아침 예비후보 자격으로 유권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키워드3-친화력]"사랑합니데이~" 
홍 의원의 장점 중 하나는 친화력이다. 사투리 섞인 특유의 유머로 만나는 이들을 매료시킨다. 술자리에서도 깨알 같은 건배사로 서먹한 분위기를 순식간에 허문다. '사이다!(사랑합니다. 이 마음 다 바쳐서)' '언니!(언제나 나는 니 편이다)' 등 그가 주로 쓰는 건배사들은 하나같이 애정이 철철 넘친다. "사랑합니데이~"라는 '원초적인' 인삿말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정치인들에게 이런 친화력은 상당한 경쟁력이다. 동료 의원이나 선후배 정치인들과의 교류 때도 강점이 된다. 홍 의원은 박근혜 정부 들어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출 과정에서 두 번이나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박근혜 정부 첫해 원내대표 경선에서는 최경환 의원을 돕는 핵심 5인 중 한 명이었다. 지난해 초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에 당선될 때도 승부처가 됐던 '원유철 정책위의장' 카드가 성사되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 의원을 오랫동안 봐온 사람들은 단지 '재밌는 사람'으로만 기억하지는 않는다. 격의없고 한결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언론인 시절 현장에서 만났던 후배들을 10여년만에 만나도 그 때랑 똑같이'000야' 하고 반긴다. 의원실 운영에서도 이런 면모가 드러난다. 홍 의원은 19대 국회 들어 함께한 보좌진이 한 명도 바뀌지 않았다. 결혼도 두 명이나 시켰다. 국회엔 '보좌진이 자주 바뀌면 의원이 별로'라는 속설이 있다. 홍 의원은 "바꾸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바뀌지 않은 것이 맞다"면서 "보좌진을 꾸릴 때 초선이어서 정신도 없고 했는데, 자질과 능력도 뛰어나고 자기 일처럼 희생하면서 일하는 보좌진들로 구성된 것이 저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런 면도-영어 달인]
1993년 가을 SBS 입사를 위한 최종 면접장. '영어에 자신이 있다고 썼는데... 미국 대통령과 인터뷰를 하라면 자신이 있나?'라는 돌발 질문이 떨어졌다. 홍 의원은 "예. 자신 있습니다"라는 대답 대신 "예. 지금 이 자리에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위성 생방송으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고 이 자리에서 바로 인터뷰를 해 봐도 되겠습니까?"라고 답했다. 순간 면접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실제로 영어로 인터뷰를 시연해보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몇일 뒤 최종 합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홍 의원은 학창 시절에도 영어에 빠져 지냈다. 중 1 때 친구집에서 처음 본 원어민 녹음 영어테이프가 계기가 됐다. 아버지께 단식투쟁까지 하면서 얻어냈고 놀이처럼 시간이 날때 마다 원어민 발음을 따라했다.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 한 자리에 앉아서 1~3학년 영어교과서를 책을 보지 않고 원어민 발음으로 외울 수 있게 됐다.


[이 한 장의 사진-독수리 3형제]



연세대에 입학해 두 형과 함께 자취를 하던 시절 모습. 사진 왼쪽부터 사업을 하는 큰형 홍순일씨, 홍 의원, 작은 형 홍윤오 국회사무처 홍보기획관이다. 홍 의원은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사람들-최경환]
홍 의원의 정치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을 꼽으라면 박 대통령 외에 최경환 의원을 들 수 있다. 친박 핵심 중 핵심이라는 최 의원은 홍 의원이 18대 총선에서 낙마한 후 실의에 빠졌던 시절 그를 일으켜 세워줬다. 19대 총선에서 현역 의원을 누르고 두번째 공천을 받는데 지원사격을 했고, 이번 20대 총선에서도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고 있다. 대구 여러 지역구에서 현역 의원을 표적으로 '진박(진짜 친박)' 후보들이 뛰고 있지만 홍 의원의 지역구에는 그런 후보가 없다. 홍 의원도 최 의원에게 힘이 돼 줬다. 최 의원이 박근혜 정부 첫해 원내대표로 선출되는데 발로 뛰었고, 원내대변인으로 그의 입 역할을 해냈다.


홍 의원은 친박 색채가 강하지만 사람을 사귈때는 계파를 가리지 않는 편이다. 이제는 '비박'계로 분류되는 유승민 의원과도 오랜 교분이 있다. 과거 친이(친 이명박)계이자 역시 비박계인 정두언 의원도 기자시절부터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사이다. 친이계 재선의 조해진 의원과도 친하다. 홍 의원은 본받아야할 점이 많은 선배 의원으로 조 의원을 빼놓지 않고 언급한다. 홍 의원은 "이 분들의 특징이 인간적으로 좋으신 분들"이라며 "인간적으로 친한 정을 나눌 수 있는 분들이 좋다"고 말했다.원내대변인 시절 함께 원내지도부를 구성했던 문정림 의원 등 원내부대변인단과도 친분이 두텁다.


[그의 정치 - 진정성]
홍 의원이 지향하는 정치의 키워드는 '진정성'이다. 국가를 위한 일을 할 때나, 의정활동을 할 때, 지역주민을 대할 때 '진정성'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진정성이 있다면 타협이 되고 합리적으로 양보를 하는 합리적인 정치, 화합의 정치, 원칙이 있는 정치도 가능하다는 지론이다. 홍 의원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러한 틀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정말 합리적으로 국민들이 판단할 수 있는 그런 정책들을 만들어내고, 서로 싸울 땐 싸우더라도 국민들이 볼 때 정말 합리적으로 싸우는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는 정치를 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대표 법안-어린이집 CCTV 설치법]
어린이집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그의 대표법안으로 꼽힌다. 이 법안은 지난 1월28일 개최된 머니투데이 the300 주최 '제 3회 대한민국 최우수법률상' 시상식에서 최우수법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농어민들과 영세서민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서민금융상품 비과세 기한을 연장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도 홍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이다.
지역구에 성서공단이 위치해 있어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입법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성서공단 등 노후화가 심한 일반산업단지 리모델링 비용에 대해 국가가 지원할 수 있게 하는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대표발의했다. 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한 공제부금인 ‘노란우산공제’에 가입한 법인사업자도 소득공제 혜택을 계속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해 본회의까지 통과시켰다. 그는 국회 서민중소기업발전포럼 대표의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 밖에 구글 등 외국인터넷기업들에게 투명한 과세를 할 수 있게 하는 법인세법, 소득세법 개정안, 대학등록금을 신용카드로 분할납부할 수 있게 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 등도 그가 대표발의한 법안들이다.

[요주의-험난한 재선 전선]
이번에도 재선 도전이 만만치가 않다. 전직 구청장 출신의 후보를 포함해 여러 후보들이 그에게 도전하고 있다. 달서구청장을 지낸 곽대훈 예비후보는 여론조사에서 홍 의원을 앞지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장이 총선에 출마할 경우 20%의 감점을 부여한 새누리당 공천룰 등을 감안할 때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게 홍 의원측 판단이다. 홍 의원측은 도전자들의 표가 결집될 수 있는 결선 투표까지 가기 전에 공천을 확정짓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프로필]


△경북 성주 출생(48세) △덕원고·연세대 철학과·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정치학과 △SBS 기자 △SBS 8뉴스, 모닝와이드 메인 앵커 △19대 국회의원 △원내대변인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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