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이원욱…'최경환 저격수' 된 사연은

[the300][국회의원사용설명서] 이원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편집자주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과 관심사, 경력을 입체적으로 분석해 드립니다. 의원의 경쟁력과 정치적 미래,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심부름꾼'을 어떻게 '사용'해야 우리 사회가 한걸음 나아가고 우리의 삶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지, 분야별 '파워분석'을 통해 보여드립니다.

이원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야당의 '수퍼루키'다. 민주화운동과 당직생활을 모두 경험한 초선 의원이다. 정당공채 시스템이 엉성한 민주당에선 찾아보기 힘든 기본기다.

"인지도 0%였던 상황에서 나름으로…."

그는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자신을 이렇게 설명했다. 솔직화법, 자신을 낮추는 겸손화법이 몸에 배어 있다. 국회의원 4년차인 지금도 처음과 같다. "제가 뭘 알아야죠, 제 생각에는요…." 영락없는 당직자의 모습(?)이다. 생글생글 웃는 표정이 또 그렇다.

하지만 불의를 못참는 가슴 속 '끓는 피'는 이번 국감에서 진면목을 드러냈다. 그는 국감장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중소기업진흥공단 인사청탁 의혹을 제기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빽'이 있어야 취직도 하는 부조리한 현실은 당 차원에서 정면으로 맞서야 할 중대한 문제라고 그는 개탄했다.

 

급기야 같은 당 노영민 산업위원장이 말렸던 당시 상황. "우리 이원욱 의원님, 진정하시고요." 
"그냥 넘어갈 문제 아닙니다. 막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냐고요?" ▶동영상 보기 (34분40초 상황) 


법대를 나왔지만 법조(法曹)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는 최근 관심사를 묻는 질문에 △물질만능의 사회와 사람문제 △기후변화 △개미생태원 △신재생에너지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를 말했다. 산업위 소속 의원, 사회복지사, 숲해설가다운 답이다. 이 의원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휴대폰을 공개하고 직접 답한다.  '솔직, 겸손'을 보여주는 또 다른 부분이다.


사진=뉴시스
◇민주화운동
이 의원은 고려대 법학 82학번이다. 그는 "법조인을 희망하며 꿈에 부풀어있던" 1982년5월 교정에서 '인생을 바꾼 장면'을 맞닥뜨렸다. 백골단이 자신의 바로 눈앞에서 여학생의 머리채를 잡아 끌고갔던 것. 학생의 머리에서 "질질 흘렀던" 피가 충격을 더했다.

당시 학생들은 스크럼을 짜고 학생회관 앞으로 몰려나오면서 '광주학살 원흉 전두환 군부정권 타도하자'를 외쳤다. 전투경찰과 백골단이라 불리는 사복경찰들이 학교 안에 깔리고 진압작전이 이어졌다. 최루탄이 터지고 무차별폭행이 자행됐다.

이 의원은 2011년 저서 <그래도 정치가 희망이다>에서 이 장면을 회상하고 "나는 두려움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날 내가 한 일이란 고작 주머니를 뒤져 소주 두 병과 새우깡을 사들고 텅 빈 교정에 다시 들어와 밤새 마시고 토하고 울고 한 것뿐이었다. 그날 이후 내게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는 80년 광주의 참상을 알게 된 뒤 판검사가 되려던 마음을 접었다. 삶의 지향이 완전히 달라져서, 개인보다는 사회를 위해 살아가게 됐다.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고선 인간다운 삶을 살기 어렵다고 생각해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수감생활
85년11월엔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 점거 농성을 벌이다 구속됐다. '군사독재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벌인 농성은 6시간 만에 끝났다. 경찰의 진압으로 끌려나온 학생 191명이 전원 구속됐다.

이 의원은 서울시경에서 이틀간 조사를 받은 뒤 구속, 종로경찰서 유치장에서 보름을 지냈다.

"시위 도중 잡혀 조사를 받고 나온 적은 가끔 있었지만 유치장 생활은 처음이었다. …꽁보리밥에 반찬은 홍당무무침 하나가 전부였다. 그런 생활이 처음이다 보니 앞으로 몇 년간 어찌 지낼까 걱정도 됐다. 누군가가 '교도소도 사람 사는 곳이니 너무 걱정 말라'고 위로해줬다."

3년 실형을 선고받았고, 목포교도소에서 생활했다. 87년 6.29 선언이후 특별사면으로 출소했고 2001년4월 민주화운동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명예회복 대상자로 선정됐다. 이 의원은 출소 이후 인쇄소에서 선반기술자로 일하다 정당 공채를 통해 정치에 발을 들였다.

◇중앙당 당직자 10년
이 의원은 1997년 대선을 겪은 직후 새정치국민회의 당직자 공채시험을 거쳐 정치에 입문했다.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 당직자로 10년 넘게 중앙당에서 일하며 정당 시스템을 익혔다.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정치 이력을 쌓아온 셈이다.

그는 자신의 당직생활에 대해 "10년 넘게 중앙당 당직자로 일하면서 우리나라 국회가 일을 참 많이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국민의 눈높이와 동떨어져 이질감을 느끼게도 하고 때론 욕도 많이 먹지만, 정치를 통하지 않으면 사실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밝혔다. 

출처-이원욱 의원 블로그
◇낙선, 당선
이 의원은 당 정책연구소에서 행정실장으로 일하던 2008년 공천을 받았다. 원래는 손학규 전 의원의 종로 선거 총괄을 맡았는데 중앙당 후배 당직자의 전화로 계획이 바뀌었다. "공천이 마무리돼가는데 화성시 갑을 두 곳 선거구에 공천 신청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게 후배의 설명이었다.

2008년 총선 당시 상황은 민주당에 좋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로 패배는 일찌감치 예고됐다. 이 의원은 "어려운 선거지만 경기도에서 후보를 공천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손 의원과 정세균 의원을 설득했다. 그는 처음 도전한 총선에서 비록 패했지만, 연고 없는 지역 화성을에서 36.06%라는 의미있는 득표율을 올렸다. 노 전 대통령은 총선 다다음날 찾아온 이 의원에게 "낙담하지 말고 다음에는 꼭 승리해서 웃는 얼굴로 찾아오라"는 격려를 남겼다.

2012년 총선에서 이 의원은 같은 지역에 도전해 55.62%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수도권 후보 중 2위 후보와의 격차(2만6000표)가 가장 컸다.

◇운동권 아내
이 의원은 어린 시절 대부분을 "서울 길음동 변두리 막다른 골목집"에서 보냈다. 이 의원의 아버지는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 하역 노동자로 일한 뒤 귀국해선 은행 수위 일을 했다. 베트남에서 번 돈을 동료에서 몽땅 떼여 살림이 빠듯했고 어머니가 삯바느질을 했다. 아버지는 은행 일을 할 때 다른 직원의 숙직을 도맡다시피 했는데, 이 의원은 주말마다 아버지를 따라간 숙직실 구석에서 잠들곤 했다.

아내는 출소 후 만났다. 점거 농성 현장에서 만난 여학생을 우연히 종각거리에서 다시 마주쳤다. 87년 말 보증금 50만원 월세 5만원 반지하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고 이 의원의 수배가 풀린 89년 봄에야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이 의원은 96년까지 인쇄소에서 일했다.

사진=뉴시스
◇법안

이 의원은 국회에 입성한 후 2013년 '중견기업 성장촉진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해 통과시켰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체계를 만든 게 핵심이다.

같은 해 발의한 '변리사'법은 지난 7월까지 6차례 상임위 법안소위에 상정됐으나 이해관계 대립으로 계류중이다. 변호사가 변리사 연수 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변리사는 변호사와 공동으로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도록 한 게 골자다.

한편 지난 9월24일 이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일본 아베 정부의 11개 안보관련법 제·개정안 강행처리에 대한 규탄 결의안'은 계류중이다. 앞서 4월9일 발의한 '일본 정부의 조선인 강제 징용 시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규탄 결의안'은 5월12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 의원은 2010년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 실행위원회 위원으로, 2013년부터는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마디
"그래도 정치가 희망이다"
"패배, 남탓이 아니고 내탓입니다"
"정치인은 순간이고, 정당은 영원하다"

◇정세균계
이 의원은 18대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정세균 캠프의 대변인을 지냈다. 이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정세균과 함께'라는 코너를 둘 정도로 야당 내 대표적인 '정세균계'로 통한다. 정 의원은 고대 법대 71학번으로 '직속 선배'다.

이 의원은 정 의원에 대해 "단순히 능력이 좋아 그 분을 저의 롤모델로 꼽는 것은 아니다"며 "결단할 때 결단할 수 있는 의지, 또 자신의 위치를 빌어 자신을 홍보하지 않는 겸손함이 있다"고 말했다.

◇요주의!
○…철회 법안이 많다. 이 의원은 19대 국회에서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 저탄소 녹색성장 기존법 개정안,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스스로 철회했다.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교사가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학교에 교무행정을 전담하는 직원을 배치하도록 한 게 주 내용이다. 그는 해당 개정안 철회와 관련 "교육계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논의를 거쳐 사회적 대타협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철회 이유를 설명했다. 제출한 법안을 철회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자주 반복되면 신뢰도에 흠집이 날 수도 있다.

○…이 의원은 기자가 꼽는 '패션 테러리스트'다. 국회에서 본 패션 테러자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한쪽은 신경을 쓰고 꾸며도 결국은 그렇게 되는 경우다. 다른 한쪽은 신경을 덜 쓰는 것인데 이 의원은 후자에 가깝다. 손에 잡히는 대로 입는 것은 아닌지. 
 두 유형으로 나눠봤지만 양쪽 모두 결국은 패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사태'다. 이 의원에게 남성잡지 일독을 권한다.

 

[프로필]
△충남 보령(52) △고려대 사범대 부속고-고려대 법대 △민주화운동 실형(1985.11~1987.7) △민주당 중앙당 공채 2기(1997) △민주통합당 화성시을 지역위원장 △19대 국회의원(경기 화성을) △새정치민주연합 화성시을 지역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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