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위이야기]'상원'의 자격…권한보다 국민

[the300]소방시설공사법 등 신속처리…법 시행시기 앞당겨 준 법사위 배려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권성동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법사위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공동주택에 소방자동차 전용 주차구역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의 소방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59건의 법안이 통과됐다. 2018.1.30/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달 새 두 건의 대형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수십명이 사망하는 사고 앞에 정부와 국회의 존재가 무력하게만 느껴집니다. 국회가 관련 법안들을 정비했었더라면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피해가 이렇게 커지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매번 반복되는 질타입니다. 국회는 국민들 앞에서는 죄인입니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하지만 소를 잃은 후라도 외양간을 고치는 일을 안 할 수는 없습니다.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이 국회로 쏠린 가운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뒷통수가 유난히 따가웠던 모양입니다. 국회는 30일 화재 대응 관련 법안을 비롯한 법안 처리를 위해 기민하게 움직였는데 그중 법사위가 가장 빨리 움직이는 모습이었습니다. 하필이면 법사위가 국회 '상원' 노릇을 하면서 법안 처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팽배해있는 때였는데요, 법사위가 어떻게 움직였는 지 한번 살펴봤습니다.

◇법사위 '숙려기간' 패싱 후 본회의 직행

법사위 전체회의는 한달여만에 열렸습니다. 2월 임시국회가 시작되자마자 서둘러 전체회의를 열고 묵은 법안 처리에 나선 셈입니다. 이날 관심이 집중된 법안들은 역시 화재 관련 법안들이었습니다. 제천 화재 사고와 밀양 화재 사고 이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됐던 사항을 중심으로 법안 개정이 추진됐고 이들 법안 중 5건이 막 법사위에 상정된 참이었습니다.

법사위는 이날 소방시설공사법과 소방기본법, 도로교통법 개정안 3건을 상정해 의결했습니다. 법사위 의결을 거친 법안들은 바로 이날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가결 처리됐습니다. 그야말로 속전속결입니다.

그런데 하루 사이에 법사위와 본회의 의결이 한꺼번에 이뤄지는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법사위의 법안 숙려기간을 거치지 않고 본회의로 직행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사위가 타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법안들에 대해 체계·자구심사를 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법사위가 타 상임위 법안에 대해서까지 갑질을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때 법사위는 '5일 간의 숙려기간'을 내세웁니다. 상임위에서 심사한 법률은 5일간의 기간을 거친 뒤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를 거치도록 한 국회법 규정에 따라서입니다. 법안에 대해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 때문이지만 이 규정은 종종 법안 처리를 놓고 법사위가 갈등의 불씨가 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여야 지도부가 시급히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본회의 처리를 합의했는데도 법사위가 숙려기간이 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사위 의결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국회법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는 명분이지만 법사위원장의 권위를 과시하는 일종의 무력시위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권성동 법사위원장은 이날 본회의에서 이 법안들이 처리될 수 있도록 법안 숙려기간 없이 법사위 의결을 결정했습니다. 입법 미비에 따라 참사가 재발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판단으로 보입니다.

권성동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법사위가 소방 관련 법안들을 오래 잡아둔 것처럼 일부 보도되기도 했지만 이 법안들은 지난해 12월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고 1월 중에는 임시국회가 열리지 않아 법사위에서 처리되지 못한 것"이라며 "사안의 중대함을 감안해 법사위가 전체회의를 열어 처리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조종묵 소방청장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날 법사위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공동주택에 소방자동차 전용 주차구역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의 소방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59건의 법안이 통과됐다. 2018.1.30/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바람직한 체계자구 심사란 이런 것

이날 법사위에서는 또다른 배려가 이뤄졌습니다. 일반적으로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더라도 그 법이 시행되려면 6개월, 많게는 1년 간의 시간이 흘러야 합니다. 법 조항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달라진 법률에 따라 하위 법령들을 정비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즉 화재 관련한 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시급하게 처리된다고 해도 이같은 규정으로 인해 조속한 시행이 어렵게 되는 겁니다. 권 위원장이 이 같은 문제를 먼저 꺼냈습니다.

-권성동 : 조속한 법 개정 요구 때문에 법사위에서 의결하는 것인데 이 법의 시행을 위해서 반드시 6개월이 소요돼야 하는 건가. 시행령 정비 등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공포 후 즉시 시행이 가능한가.

▶조종묵 소방청장 : 저희도 관계없다. 즉시 시행하면 좋다.

-권성동 : 공포 후 즉시 시행하는 데 문제가 정말 없는건가? 이 법안들이 통과되지 않아서 화재 피해가 커졌다고 하니 즉시 시행으로 정리할 수 있도록 하자.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과 이춘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나서 시행시기 정리를 거들었습니다.

-주광덕 : 국회에서 법이 통과된 후 정부가 시행령을 만들고 정비하는데 6개월 정도 소요되는데 한달 사이에 대형 화재 참사가 두번 발생했고 국민들도 빨리 법정비를 해야한다고 한다. 정부가 시행령 정비를 앞당겨야 하는거 아니냐. 정부가 밤 새워서라도 시행 시기를 단축하는 방법이 없는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 법안을 통과시켜주면 정부에 이송되는 대로 가능한한 빨리 하겠다. 법이 공포되면 상황 변경에 대한 인지 기간이 필요하지만 국민적으로 참사 관심 높을 때 제도 개선 빨리 하도록 하겠다. 결과적으로 시간 소요가 있겠지만 소방청장이 책임지는게 아니라 법제처장이랑 제가 상의해서 시기를 당기도록 하겠다.

-이춘석 : 법의 효력이 발생하려면 시행령을 만들어야 한다. 법은 즉시 시행으로 하고 시행령을 만들 때부터 효력을 발생하게 하자.


결국 법사위의 이 같은 논의에 따라 화재 관련 법안들은 그 시행일을 '6개월'에서 '공포 후 시행'으로 변경해 국민들의 실생활에 즉시 적용될 수 있도록 변경됐습니다. 국회 본회의에서는 바로 법사위의 이 같은 체계자구 심사에 따라 다듬어진 법안들이 최종 통과됐습니다.


법사위는 그동안 체계자구 심사 기능을 '상원' 노릇에 악용해왔다는 지탄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법사위가 자신의 권한을 내세우기보다는 국민들의 입장에서 바람직한 법사위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법사위의 바람직한 '상원' 노릇이 무엇인지 법사위 스스로도 생각해볼만한 계기가 아닌가 합니다.



 
  • 법안
  • 팩트체크
  • 데스크&기자칼럼